조정래 / ‘사람의 탈’ 중에서
< 1 >
"알지야? 호랑이한테 열두 번 물려가도 정신만 채리면 살아난다는 말. 그려, 어디서든 정신 딱 채리고 관세음보살님만 염혀, 그러면 틀림없이 살아날 길이 열릴 것잉게. 꼭, 어쨌그나 꼭 살아와야 혀. 니는 이 집안 장자닝게, 장자!"
어머니가 손등이 으스러져라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한 말이었고,
"총알 피해 댕겨라."
아버지의 무뚝뚝한 한마디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머니 말보다는 아버지 말이 더 뚜렷하게 가슴에 새겨져 있었다. 투박한 것만큼 아버지의 말은 얼른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총알을 피해 다니라니 그러나 사리에 맞지 않는 것 같은 그 말에는 얼마나 많은 말들이 담겨있는 것인가.
김경두는 아이가 둘이라고 했다. 열일곱에 장가를 들어 지금 스물한 살이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애달아 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웠다.
“에그, 장가라도 좀 일찍 보낼걸. 손자라도 하나 있었으면 좀 좋아. 그저 살림살이 궁한 게 다 원수지. 소작 부치고 사는 신세니 뭐가 뜻대로 돼야 말이지, 에이구 내 팔자야.”
어머니의 탄식이었다.
신길만은 스무 살, 자신의 나이를 되짚었다. 보통 열일고여넓에 장가를 드니 스물이면 늙다리 총각이었다. 자신도 남들 하듯이 그 나이쯤에 장가를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싫었다. 일짝 장가가 입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또 아버지와 똑같이 평생 가난 속에서 허덕일 것이 뻔했다. 소작인의 한평생이란 황소의 슬픈 운명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논 한 마지기라도 장만할 때까지 장가를 미루고, 뼈 휘도록 일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 덜컥 지원병 지명을 당하고 말았다.
< 2 >
“지금부터 이름을 부를 테니 순서대로 나와서 이걸 받아가고, 쏘련 이름을 틀리지 않게 빨리 외우도록 하세요”
통역관이 종이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배상국은 배 알렉쎄이, 정우섭은 정 게일리, 이규선은 이스재빤, 천일호는 천 빅토르, 김병도는 김 아나톨리, 신길만은 신 미하일, 이무상은 이 게오르기, 강명수는 강 이바노프 박동민은 박 유리, 문복동은 문 지모피, 김재석은 김 아파나, 이상입니다."
그들이 받아든 종이쪽에는 한글로 쓴 조선 이름, 꼬불꼬불한 소련 글씨, 한글로 쓴 소련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막사로 들어서자마자 누군가가 말했다.
“이거 참 이상하네. 평생 쏘련땅에서 살 것도 아니고 임시로 군인 노릇 하는 것뿐인데, 꼭 이래야 하나?"
"그러게 말이야. 이름을 바꾸니까 부모를 바꾼 것처럼 영 찜찜하고 지랄 같네."
"맞어, 그 말 맞어. 이 요상스럽고 체한 것 같은 기분이 바로 그것이었어."
"아니, 성은 그대로 두고 이름만 바꾼 것은 무슨 초 친 맛이야 갓 쓰고 자전거 타는 꼴도 아니고,"
"다 바꾸기 미안했던 모양이지."
"그나저나 누구는 외우기 좋게 두 자고, 누구는 재수 없이 넉 자야그래. 재수 없는 놈은 대로변에서도 똥 밟고, 겨울에도 뱀에 물린다니까."
"흐흐흐 나 두고 하는 소린가? 그래, 난 원래 넘어졌다 하면 과부 품이고, 빠졌다 하면 술독이지. 유리, 박 유리. 유리창의 유리라는 뜻도 아니고 이게 뭐야?"
그들은 모두 뜨악하고 떨떠름한 기분으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 3 >
저의 이름은 고현태고,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입니다. 그리고 쏘련 이름은 고 바실리입니다. 우리집은 삼일운동이 일어난 다음해 일본놈들을 피해 다른 친척들과 함께 땅이 넓다는 러시아땅 연해주로 떠났습니다. 지금부터 십구 년 전이고, 그때 제 나이 여섯 살이었습니다. 소문대로 연해주는 땅은 넓었지만, 그 땅은 잡초 무성한 황무지였지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은 아니었습니다. 어른들은 남녀 가리지 않고 그 땅 개간에 나섰습니다. 황무지에 물길을 트고,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을 일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쌀밥을 먹어야 사니까요. 어른들이 뼈 휘도록 일하는 동안에 아이들은 전부 학교에 다녔습니다. 배워야 독립을 찾고, 독립만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누구나 믿고 있었으니까요. 우리 고려족이 많이 사는 곳에는, 예, 쏘련에서는 조선족이라고 하지 않고 고려족, 까레이스끼라고 합니다, 꼭 학교가 있었습니다. 그 학교들은 독립 운동가들이 세웠고, 선생님도 독립운동가들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조선말, 러시아말만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일본말도 가르쳤습니다. 적을 알아야 적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고려족들은 연해주의 그 광활한 땅을 쉴새없이 개간해서 논을 일구고, 논에서 생산해낸 쌀로 독립자금을 대고, 자식들을 가르치면서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행이 닥쳤습니다. 그건 이년 전에 실시된 강제이주였습니다. 재작년 11월에 연해주에 사는 고려족은 전부 중앙아시아로 이주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이십만 고려족들은 이삿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며칠 사이에 기차 화물칸에 떠밀려 실렸습니다. 11월에 시베리아 날씨는 벌써 영하 20도까지 내려갔습니다. 기차는 한 달이 걸려 중앙아시아에 도착했고, 우리 동포들은 절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오는 동안에 십만 명이 얼어 죽고, 굶어 죽고, 총 맞아죽은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발설하는 것도 위법이고, 큰 죄가 됩니다. 우리끼리니까 한마디 간단하게 하는 것이고, 더 자세하계는 말할 수 없습니다."
울음기 묻어나는 목소리가 떨리면서 고현태는 말을 멈추었다. 슬픔에 젖은 얼굴로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양쪽 아랫볼에는 어금니 뿌리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중앙아시아땅에 내리기는 했지만 우리 고려족들에게는 몰아닥치는 추위를 막을 집도, 당장 먹을 양식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고려족들은 우선 얼어 죽는 것을 면하기 위해 한 길 넘게 땅을 파고 그 위에 갈대로 지붕을 덮는 깔뚱막이라는 움막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그 황부지에는 나무처럼 대가 굵고 키가 큰 갈대들이 무성했으니까요. 그러는 동안에 노약자들이 또 수없이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추위를 피할 움막을 지은 고려족들은 다시 황무지 개간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는 연해주의 황무지보다 훨씬 나빴습니다. 소금기가 밴 소금땅이었으니까요. 소금기가 밴 땅에서 벼농사를 어떻게 짓겠습니까. 그렇지만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생을 해가며 우리 고려족들은 끝끝내 벼농사를 성공시켰습니다. 터잡고 살아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서쪽에서 독일이 전쟁위협을 가하고, 동쪽에서 일본이 세력을 팽창시켜오자 쏘련도 대대적으로 군대를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바람은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에게도 불어닥쳤습니다. 우리 고려족도 당연히 쏘련에 충성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가족과 고려족을 지키기 위해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을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은 큰 인연입니다. 곧 헤어지면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모르겠는데, 부디 무사하게 고항에 돌아가시기를 빌겠습니다."
그들은 굳은 듯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 침묵은 어둡고 무거웠다.
< 4 >
천일호는 타령하듯 하며 곡팽이질을 시작했다.
"이거 12월 초순에 땅이 이리 돌덩이처럼 꽁꽁 얼어붙어버렀으니 웬일이야. 이 사람들 불알 안 얼어터지고 애들 낳고사는 것 보면 용해."
곡괭이를 내리쳐도 땅에 먹혀들지 않고 불똥만 튀자 강명수가 두덜거렸다.
“흐흐, 강형 또 허연 마누라 엉덩이 생각나는 모양이시네. 왜 안 그렇겠소. 나도 그 아늑한 마누라 품 그리워 미칠 지경이오”
천일호가 곡팽이질에 공끙 힘을 써가면서도 할말은 다 했다.
“하이고, 말해 뭘 해요. 이리 추운 날 뜨뜻한 아랫목에서 한바탕 하던 생각을 하면 이 꼴이 이게 뭐요그래. 크으, 그 기맥힌 맛을 언제 다시 보게 될라는고”'
강명수가 지금 마누라를 품고 있는 듯 실감나게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이거 총각 앞에서 왜들 이러시오. 염치도 양심도 없이."
신길만이 웃으며 한마디 걸쳤다.
“에이, 모르는 소리.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고, 외상술도 마셔본 놈이 배짱 두껍더라고, 장가든 사람들이 여자 맛 그리워할 줄 알지 총각이야 뭐가 뭔 줄 아나. 동년배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니까 신형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본전 찾는 거요.”
음담 맛에 취해 천일호가 키들키들 웃어댔다.
< 5 >
칼바람을 타고 줄기차게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눈보라는 하늘에서 몰아치는 것만이 아니었다. 땅에 두껍게 쌓인 눈은 거센 바람을 타고 회오리치며 다시 하늘로 솟아올랐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보라와 땅에서 솟는 눈보라가 뒤엉킬 때면 그 광경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혼몽스러웠다. 그 어지럽고 숨가쁜 뒤엉킴은 마치 소련군과 독일군의 살기가 뒤엉켜 사생결단 난투극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독일군들은 뿌옇게 두꺼운 눈보라 뒤에 숨어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살기는 살을 에는 추위의 매서움처럼 여실하게 끼쳐왔다. 독일군들은 눈보라를 앞세우고, 눈보라에 실려서 쳐들어와 살기를 불로 토해냈다. 소련군들도 그에 못지않은 시퍼런 살기를 맞뿜어냈다. 눈보라의 드센 기세처럼 양쪽의 살기는 잦아들 기미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전투는 밤도 낮도 없이 처절하게 얽혔다. 덤벼드는 독일군들도 지독했고, 막아내는 소련군들도 지독했다. 죽는 자들이 속출했고, 다치는 자들이 속출했다. 시체 위에 시체가 포개졌고, 부상자들이 눈보라 속에 그대로 버려져 죽어갔다. 하얗게 눈 덮인 대지는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 위에 다시 눈이 내려 덮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눈은 또 붉게 물들었다. 마치 하늘과 인간이 거대한 화폭의 추상화를 그리고 지우는 다툼을 벌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인간들이 이기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날마다 전투가 가열차게 계속되면서 여기저기서 전선이 허물어지고 뚫렸다. 혼전이 이루어지고, 난전이 벌어졌다. 같은 부대끼리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나게 되는가 하면, 보급이 끊어졌다가 가까스로 이어지기도 했다. 병사들은 추위에 지치고, 배고픔에 지치고 있었다.
< 6 >
처음에 만주 벌핀을 보고 너무나 놀랐었다. 기차를 타고 하루 종일 가도 한정도 없는 벌판이었다. 일본에게 농토를 빼앗긴 사람들이 왜 만주를 찾아 떠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만주땅이 넓다는 말은 들어왔지만 그렇게 끝도 한도 없이 넓은 벌판이 있을 줄은 몰랐었다. 작은 섬나라 일본이 탐낼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몽골에 가보니 또 무한정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그 땅을 보고도 이것이 우리나라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그런데 또 독일로 오는 길도 눈길이 닿지 않도록 넓디나 넓은 벌판이었다.
이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배곯은 일 없이 넉넉하게 사니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부러움을 떼치지 못했다. 가난한 소작인 살이 속에서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꿈이, 우리 논을 갖는 것이었다. 우리 논을 가진, 소작인이 아니었더라면 징병으로 꿀려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 7 >
문복동이 이규선에게 눈짓했다. "예 알아요. 꼭꼭 씹어서 천천히 맛있게 먹겠습니다"
이규선이 반장에게 고개를 꾸벅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크게 벌어진 입에 이 빠진 자리가 여러 개 비어 있었다. 신길만은 고기를 잘라 입에 넣었다. 구수한 고기 냄새가 입안에 퍼졌다. 군침이 지르르 흘렀다. 고기의 감촉에 혀가 요동쳤다. 고기를 꿀떡 삼켜버리고 싶도록 목구멍이 크게 열리고, 어서 넘겨달라고 뱃속에서는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대로 삼키고 싶은 욕구를 누르며 고기를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졸깃졸깃한 육질의 탄력에 이들이 일제히 환호한다. 향기로운 고기 냄새가 씹을수록 진하게 퍼진다. 그리고 달치근하면서도 고소한 고깃물이 입 안 곳곳으로 스며든다. 막으려고 했지만 고깃물이 저절로 목구멍으로 넘어가 뱃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아, 이제야 살 것 같다! 아, 이제는 살아났구나! 그는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죽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확인. 그 안도감에 고기를 천천히 오래오래 씹으려고 했다. 그러나 고기는 어느새 목으로 넘어가고는 했다.
< 8 >
노르망디의의 실종자
그는 히틀러의 독일어는 물론, 그가 속해 있던 동방대대 795부대의 웬만한 다른 병사들처럼 러시아어도 할 줄 몰랐다. 영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일본군이었지만 일본어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누구도 모르는 언어, 일찌감치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어 모국어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동북아시아 변방의 조그만 반도 출신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아마 그는 할말이 너무도 많았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의 고향에서 일본군 조선인 지원병으로 입대,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만주로 갔다가 소련, 몽골, 중국 국경에서 몽골군과 소련군의 포로로 붙잡혀 몽골과 소련으로 이송되었는지, 소련의 붉은 군대의 일원이 되어 모스크바 진투에 투입되었다가 이번에는 독일군 포로로 붙잡혀 독일행 기차를 타게 되었는지, 독일군 포로로 수감되어 강제노동을 하다가 어떻게 동방대대 소속 독일군이 되어 프랑스 해변 서대서양 장벽 및 벙커공사 등에 투입되었는지, 숱한 조선인과 까레이스끼(고려족) 포로들이 군인으로 포로로 죽어나가는가운데에서도 얼마나 수많은 생사의 고비를 넘겨 지금까지 기적적으로 살아나왔는지, 자신이 지금 잃어버린 나라의 고향으로부터 얼마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이 낯선 곳까지 왔는지를 그는 말하고 싶었고 또 왜 그랬는지 문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애써 말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말이라면, 이미 소련군의 포로가 되던 때부터 통역관에게 부탁하여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이라고, 그러니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수없이 말해왔던 터였다. 그의 주장은 묵살되었고, 그는 말 대신 침묵을 택했다. 보도사진은 의도와 무관하게도 그 침묵의 짧은 순간을 담았다. 사진 속, 허공을 응시하는 듯 그의 눈은 말없는 웅변으로 이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한 장의 사진을 뒤로 한 채 그는 노르망디의 유타 해빈에서, 그를 담은 한 장의 흑백 보도사진에서, 그리고 공식적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후에 그를 보았다는 사람도 없었으며, 그의 기구한 운명이 가 닿은 종착지에 대해서 그 누구도 더 이상 밝힌 바 없다.
「사람의 탈」은 조정래의 소설적 작업에 친숙한 독자들이라면 감지할 수 있듯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한민족의 일원이 겪는 수난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것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이색적인 측면이 여럿 눈에 띄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선 노르망디에서 포로가 된 조선인의 운명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는 방법도 그러하거니와 민족 이야기를 하나의 국경과 국가 내부에 국한해서 다루지 않고 2차 세계대전이라는 세계사의 한가운데 배치한 시도도 흥미롭게 보인다. 물론 이것들은 소재에서 자연스럽게 취할 만한 특성이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 「사람의 탈」의 독특함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탈」은 작가 종정래가 이미 수없이 선보여온 여러 작가적 장기 중 기록하고자 하는 사관의 열정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소설이다.
그러나 조정래의 경우 잘 알려져 있듯이 기록에 대한 그의 열정은 공식적인 역사에서 탈락되고 배제된 민초들의 삶을 복원하고 숱한 고난의 격랑 속에서도 결코 실종되지 않는 민족공동체의 강인한 근성과 함께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그러한 열정에 상응할 만한 철저한 역사적 고증, 민초들의 삶의 세부에 대한 끈질긴 천착, 그들의 삶이 녹아 있는 방언과 화술을 재현하는 능란한 기예, 순한 문제적 인물들을 창조하고 그들의 심부에 도달하려는 통찰력 있는 인간 해부, 한국 근현대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려는 비범한 역사철학적 해석 등으로 조정래는 역사소설 부분에서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독보적인 업적과 성취를 이루어낸 작가이다. (복도훈/ 문학평론가)
조정래 / ‘사람의 탈’(출판 : 문학동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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