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죽자
해가 기우는가 싶으면 소슬바람이 일었다. 가을이 달음박질쳐오고 있었다. 감골댁은 지친 걸음으로 사립문을 들어섰다. 머릿수건이며 삼베 적삼에 먼지가 부옇게 앉아 있었다. 하루종일 품팔이 밭일을 한 흔적이었다. 집 안에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스산한 바람결에 나뭇잎 몇 개가 토방 아래 구르고 있는 집 안은 썰렁하기만 했다. 좁장한 마루를 가운데 두고 방 둘에 부엌 하나가 딸린 그 흔한 초가삼간은 짙은 회색빛 지붕을 인 채 외롭게 가을추위를 타고 있었다.
'대근아아-:"
감골택은 머릿수건을 벗으며 막내아들을 소리내어 불렀다. 네 아이들 중 그 누구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감골댁은 집이 빈 것을 알면서도 막내아들을 불렀던 것이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런데 큰아들 영근이가 집을 떠난 다음부터는 그 소리가 좀 더 커지고 진하게 변하게 되었다.
"요것덜이 다 워디로 갔능고,"
감골댁은 중얼거리며 머릿수건으로 옷을 털기 시작했다 먼지가 해거름의 햇살 속으로 뽀얗게 피어올랐다. 감골댁은 먼지 털던 손짓을 문득 멈추었다. 그녀의 눈길은 한곳에 박혀 있었다.
"워찌끄나, 가을이 코앞으로 닥쳐부렀네!"
한숨과 함께 감골댁의 어깨가 처져내렸다. 그녀는 누렇게 고스러지고 있는 토담 위의 호박잎을 보고 있었다. 절기가 바뀌고 있음은 진작부터 느껴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감정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치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감골댁이 가슴 서늘하게 느낀 것은 가을이 아니었다. 가을 뒤에 숨어 있는 겨울이었다. 봄이 그렇듯 가을도 오는 듯 가버리는 계절이었다. 건듯 스쳐가는 짧은 가을 다음에는 긴 겨울이 닥쳐오는 것이다. 겨울은 있는 사람들에게나 살 만한 계절이었지 없는 사람들에게는 몸 춥고 마음 아린 시절일 뿐이었다. 감골댁은 겨우살이 걱정으로 가슴이 내려앉고 있었다.
“영근아” 감골댁의 입에서 큰아들의 이름이 신음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들이 떠나버린 다음에 새로 생긴 버릇이었다. 그리울 때도 외로울 때도 답답할 때도 괴로울 때도 감골댁은 무시로 큰아들을 불렀다.
땅뙈기라고는 아예 없는 신세였지만 그래도 큰아들이 집을 지키고 있을 때는 겨울양식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었다. 큰아들과 둘이서 가을품을 팔아대 겨울 날 준비는 어찌어찌 갖추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없고 보니 혼자 힘으로는 다섯 입에 나날이 풀칠하기에도 허덕거릴 지경이었다. 큰딸 보름이가 품팔이를 나선다고는 했지만 장정 힘에 비하면 새다리 놀리기이니 품삯도 하품 나오는 것이었다. 품삯도 품삯이고 다 큰 처녀가 품팔이를 나서는 것도 못할 일이라서 앞을 막았지만 큰딸은 한사코 듣지 않았다.
감골댁은 먼지 내려앉은 툇마루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먼지를 홈칠 마음도 없었고 기운도 없었다.
"감골댁, 와 있소?" 머리 희끗희끗한 여자노인네가 사립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어여 오시게라, 봉산택," 감골댁이 인사했다. 그러나 그녀는 몸을 일으키는 시늉도 하지 않았고, 얼굴도 반기는 기색이라고는 없이 심드렁할 뿐이었다.
"아그덜언 다 위디 갔소?" 봉산댁이 살피듯이 집 안을 둘러보았다. "다 어디럴 싸돌아댕기는지.".감골댁은 마지못한 듯 혼잣말처럼 하며 자리를 권하지도 않았다.
"이, 마침 잘되았소." 봉산댁은 상대방의 표나는 냉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색을 하며 마루에 엉덩이를 걸쳤다.
"감골댁, 오늘 아조 존 소식얼 갖고 왔소 이." 봉산댁은 목을 쑥 늘여 과장되게 침을 삼키며 감골댁 옆으로 다가앉았다. "들으나마나 헌 소리, 또 그 이얘기먼 꺼내지도 마시게라" 감골댁은 팔짱을 끼며 몸을 사렸다. "하이고, 말 들어보도 않고 어찌 이려. 요것이 나 혼자 좋자고 허는 일도 아니것고, 이 늙은것이 왔다리 갔다리 허는 수고럴 생각히서라도 말 듣기 전에 그리허는 것이 아니시."
감골댁이 밖을 손짓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알겄소, 근디 말이요, 김 참봉이 맘을 크게 썼소. 논얼 닷 마지기로 올렸단 말이요, 닷 마지기." 목소리를 낮춘 봉산댁은 감골댁 옆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펴 보였다. 다섯 마지기! 감골댁은 가슴이 꿈틀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큰딸 보름이의 얼굴이 쑥 밀러들었다. 감골댁은 속입술을 깨물었다. 시퍼런 처녀를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닷 마지기 아니라 열 마지기라도 안 되겄소.” 감골댁은 냉정하게 잘랐다. 그건 상대방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무신 소리여, 시방? 논이 닷 마지기나 되는디도?" 봉산댁은 감골댁의 반응에 놀라는 한편으로 어이없어했다. "더 여러 말 허덜 마시랑게라. 처녀럴 첩질로 내놓을 수야 없응게."
“허 참, 영관 배불른 흥정이시. 아 처년께 논얼 닷 마지기나 내놓것다는 것이제 과분디도 그러겠어. 안직도 배가 덜 고푼 모냥이로구만.”
“더 배곯아도 안 되는 일이단 말이오.” 감골댁은 고개를 틀어돌렸다.
“꼭 그리될랑가 몰라? 감골댁은 나날이 늙어가제, 새끼덜언 주렁주렁 딸렸제. 기운 쓰는 장정언 없제 그런 행편에 논 닷 마지기가 뉘집개 이름이여? 셋이나 되는 딸에 눈딱 감고 한나 내고 남치기 식구 배불리 살면 좀 좋을 것이여, 그까진 딸자석 한나가 머시가 아깝다고 그래싸. 허고, 보름이도 해 넘기면 열야닯, 꽃으로 치자면 시들기 시작허는 꽃잉게 논 닷 마지기넌 어림없는 소리여.”
“아, 시끄럽소, 우리 아덜 돈 벌어오면 싹 다 풀리요.”
"집 떠난 자석 일이야 돈 벌어갖고 오면 왔는갑다 헐 일이고, 지끔이야 당장 눈앞에 붙은 불보톰 끄는 것이 이치에 맞덜 안컸소. 그냥 기분으로만 뻗질르지 말고 차근허니 생각혀 봇시요. 딸 한나 치워서 좋고, 논 닷 마지기 생겨서 좋고, 이보담 더 존 일이 요새 시상에 어디가 또 있겠소. 논 닷 마지기면 남은 네 입이 배안 굶고 묵고살고, 두 딸이야 소원대로 총각헌테 시집보낼 수 있덜 않으요. 심청이야 즈그 아부지 한나럴 보고 죽을 길로 나섰는디 보름이야 네 목심얼 위허는 일이고, 또 죽을 길로 가는 것도 아니덜 않으요. 그저 넘 앞살이라는 것이 쬐깨 맘에 씨이기는 혀도, 어쩌것소, 땡전한 닢 없어 시집보낼 처지도 못 되고, 또 어찌혀서 총각헌티 시집간다고 허드라도 쫄쫄이 굶어감서 사느니 부잣집에 들어가서 평생 배불리 묵고 위함 받음서 사는 것이 훨생 낫덜 안컸난 말이오."
품팔이에서 돌아온 보름이는 부엌 쪽 벽에 몸을 반쯤 숨기고 서서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다 듣고 있었다. 그녀의 곱상한 얼굴은 수심이 차서 핼쑥했고, 두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모르겠소, 몰라. 다 듣기 싫은게 인자 가랑게라, 가!"
감골댁의 눈물 머금은 소리였다. 어머니의 그 목소리에 보름이는 속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이 목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보름이는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 속에서 아버지를 생각하고 오빠를 불렀다. 그러나 아버지는 딴 세상 사람이었고, 오빠는 그 어딘지 모를 곳에 너무 멀리 있었다.
보름이는 눈물 흔적을 지우며 밥상을 서둘러 차리고 있었다. 점심을 건너뛰는 생활에서 배가 고프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막내 대근이는 언제나 배가 고파 게걸거렸다. 조금 전에도 마당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부엌문부터 먼저 열어보았던 것이다. 밥을 하나 안 하나 살피는 것이었다.
다섯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았다. 보리밥에 풋김치와 간장 한 종지가 전부였다. 그러나 아무도 반찬투정을 하지 않고 숟가락들을 들었다. 밥을 제일 먼저 떠넣은 것은 역시 막내 대근이었다. 그 다음이 수국이었다.
보름이는 밥상을 들여오면서부터 어머니를 바로 보지 못했다. 마치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동생 정분이에게 그 말을 꺼내지 못하도록 단단히 일렀던 것이다.
감골댁은 감골댁대로 큰딸 보름이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시집갈 나이가 다 차도록 배곯키고 헐벗겨 키웠을 뿐인데 제짝을 찾아주지 못하고 그런 흉한 말이 오가고 있으니 가슴에 피가 맺힐 일이었다. 밥이라는 것을 제 입으로 씹어넘기게 되면서부터 이제까지 정말로 쌀 한 말을 제대로 먹였을지 말지 한데 작년 봄에 꽃을 보게 해주었을 때 그 얼마나 고맙고 대견했던가 동백꽃잎처럼 붉던 핏방울을 보고 사무쳐오던 설움은 어찌 그리 진하고 매웠던가.
기어이 눈물을 떨구며 저세상의 남편에게 했던 약속이 실한 짝을 제대로 찾아주겠노라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큰아들이 옆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돈 2원만 탈 없이 받아냈더라도 맘놓고 중매쟁이를 놓았을 것을. 감골댁은 또 부질없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을 털어내며 밥숟가락을 입으로 밀어넣었다. 숟가락을 놀리지 않는 것도 보름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 싶었던 것이다. 감골댁은 밥을 씹었다. 그러나 이빨에 씹히는 건 모래였고 눈물이었다.
감골댁이 밥을 떠서 막내의 그릇에 옮겼다. 그런데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숟가락에 가득가득 퍼서 세 번이나 덜어주었다. 그렇게 되니 대근이의 그릇에는 밥이 반나마 차올랐다. 대근이의 입이 그만 헤벌어졌다. 눈길을 떨군 보름이는 그런 것을 다 살피고 있었다. 밥을 그렇게 많이 덜어주는 어머니의 마음이 쓰리게 느껴져 왔다. 어머니는 입맛을 잃어 그러는 것만이 아니었다. 신세를 한탄하고, 오빠를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아들인 막내에게 마음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막내는 눈치 없이 숟가락을 집어들었다.
"대근아, 기둘려."
보름이는 대근이의 밥그릇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반을 어머니의 그릇에 덜었다. 그런 다음 자신의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대근이의 그릇에 담았다.
"어째 이러냐,"
감골댁의 말이었다.
“그리 안 잡수먼 병난단게라.”
여전히 눈길을 떨군 보름이의 말이었다. 감골댁은 더는 말이 없었다.
우리는 어찌 이리 가난한가.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빚으로 오빠까지 떠나게 되어 집은 더 가난하게 되었다. 애초에 아버지가 동학군으로 나섰던 게 탈이었다. 그럼, 그게 잘못된 일이었던가. 그렇지는 않다. 동학군으로 나섰다가 죽은 사람은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 사람들은 다 장한 일을 하려고 나섰던 장한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남은 건 더 심해진 가난뿐이었다. 그때 죽은 사람들의 집안도 다 우리처럼 가난할 것이다. 그 집안들은 어찌 살아가고 있을까. 나 같은 처지에 빠진 처녀들도 더러 있겠지. 세상은 어찌 이러는가.... 내가 첩살이를 하면 오빠가 돌아와 뭐라고 할까.....어머니를 원망하고 나를 야단칠까.... 그런데 오빠는 언제나 오는 것일까. 첩살이.... 첩살이....
보름이는 형클어진 마음으로 밤새껏 몸부림을 쳤다. 새벽닭이 울고 있었다. 감골댁도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했다. 온갖 생각들에 시달리며 지샌 밤은 짧았다. 봉창이 밝으면서 감골댁은 한 가지 생각을 굳게 붙들었다. 온 식구가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딸을 그런 식으로 팔아먹지는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그건 어미로서 못할 짓이기에 앞서 남편에게 죄짓는 일이었다. 비록 가난할망정 한평생을 곧게 살려고 했던 남편이 자식 팔아먹는 그 흉한 짓을 용서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김 참봉은 남편하고 원수지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동학군으로 나섰던 것은 김 참봉 같은 사람들을 미워해서였고, 김 참봉은 피란을 했다가 돌아와 하인과 마을사람 하나를 동학군에 내통했다고 하여 덕석말이로 죽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병을 앓고 있던 남편은 김 참봉에게 빚돈을 쓰고 있는 줄 몰랐었고, 김 참봉은 남편이 동학군으로 나섰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큰아들을 생각해서 그 짓을 해서는 안 되었다. 그짓을 했다가 큰아들이 돌아오면 무슨 면목으로 대할 것인가. 큰아들도 심지가 굳기는 남편 못지않았던 것이다. 있는 사람들에게 굽히고 사는 것을 속 아파했고, 특히나 동생들에 대한 사랑이 두터웠다.
돈에 팔려 첩살이를 시키느니 함께 배곯으며 처녀로 늙히고 말겠다며 감골댁은 마음을 단단히 도사렸다. 오죽하면 첩살이를 하느니 차라리 기생질이 낫다는 말이 있을 것인가. 딸에게 기생질만 못한 첩살이를 시켜 창자를 채우느니 차라리 온 식구가 굶어죽는 게 낫다고 작정했다.
강골댁은 또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젖혔다. 하늘에 별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여름별들과 달리 별빛이 맑고 깨끗해져 있었다. 별들이 가을을 품고 있었다.
무정허기도 허시요. 멀허고 있소, 집안 잠 안 돌보고, 보름이 짝이나 잠 점지해 주씨오.
감골댁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남편에게 하소연하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결에 벌레 우는 소리가 실리고 있었다.
"감골댁, 인자 오요?"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감골댁은 그 생각을 덮으며 고개를 돌렸다. 봉산댁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들고 있었다.
"아이고 감골댁, 참 자알 생각혔소. 김 참봉도 너무 좋아라고 허드랑게로."
봉산댁은 곧 춤이라도 출 듯이 몸을 야단스레 놀리며 감골댁의 손을 덥석 잡았다.
"무신 소리 허요, 시방?"
감골댁의 목소리가 쨍 올렸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며 봉산댁의 손을 뿌리쳤다.
"아니, 맘 정했다고 혀놓고 어째 이려, 미쳤당가!"
얼굴이 차게 변한 봉산댁이 바락 소리쳤다.
"미친 것언 당신이여. 헛소리허고 있는 당신이 미쳤제 나가 머시가 미쳐!"
감골댁이 맞받아 소리질렀다.
“머시여! 보름이헌티 말 일러보낸 것언 뉘기여, 도깨비여 귀신이여”
"보름이?"
그때서야 감골댁의 머리가 휘돌았다. 보름이가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감골댁은 정신이 아뜩해지는 걸 느꼈다.
"감골댁이 딴소리럴 혀도 소양없어. 당자가 맘 정헌 것잉게 끝난 일이여. 김 참봉헌티도 말 전해부렀고"
봉산댁이 말뚝을 박고 들었다.
"머시가 어찌고 어째! 내 목얼 쳐도 그 일언 안 돼야!" 감골댁은 부릅뜬 눈으로 봉산댁을 노려보며 이를 갈아붙이듯이 말을 내뱉고는, "내 그년 가쟁이 보톰 찢어놓고 말 것이여!"
일부러 딸을 험하게 욕하며 획 돌아섰다.
'아이고 무셔라. 저 사람 저리 독헌 거 첨 보겄네."
감골댁의 서슬에 기가 질려버린 봉산댁은 고샅을 내닫고 있는 감골댁을 명하니 바라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엄니, 나 한나 그리 살면 집안이 다 필 것 아니겠소, 심 필 가망이 없는디 언제꺼정 이러고 살겄소, 엄니허고 동상덜이 편히 살아진다면 나 한나 고생언 암시랑토 안허요."
보름이가 느껴울었다.
"미쳤냐, 니 미쳤나. 새끼 팔아 배 채우는 부모 봤고, 언니 누님괄아 호식허는 동상덜 니 어디서 봤드냐, 느그 아부지가 저시상서 피럴 토헐 일이고, 느그 오빠가 타국서 환장허고 죽을 일이다. 니가 그리허겄으면 내 목에 칼얼 박고 나서 그리혀라. 우리넌 굶어도 항께 굶고, 죽어도 항께 죽어야 헌다."
감골댁이 눈물 떨구며 결연하게 한 말이었다.
보름이가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감골댁도 울었다. 정분이가 어머니의 팔을 붙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수국이도 대근이도 어머니를 붙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감골댁은 두 팔을 있는 대로 다 벌려 아이들을 싸안았다.
조정래 / ‘아리랑 제1권’ P.269~302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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