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조정래 / ‘아리랑 2권’ 중에서

송담(松潭) 2021. 4. 23. 15:14

조정래 / ‘아리랑 2권’ 중에서

 

< 1 >

 

 

그 사건의 전모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일본의 강압적인 고문정치에 따라 조선의 외교고문직을 차지하고 있던 스티븐스였고, 그를 쏘아죽인 사람은 조선인 청년 장인환이었다.

 

스티븐스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3월 20일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 회견을 했다. 그런데 그는 일본이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든 정당성을 역설하는 한편, 조선은 일본의 보호통치 아래서 나날이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으며, 조선사람들은 많은 혜택을 받는 생활 속에서 일본의 통치를 환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 사실이 신문에 크게 보도되자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조선 사람들은 다같이 분노를 터뜨렸다.

 

‘내가 왜 스티븐스를 죽여야 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스티븐스의 음모로 인해서 수천 명의 우리 국민들은 살해당했고, 그가 조선으로 다시 돌아가면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것입니다. 나는 우리 동포들에 대해서 염려를 합니다. 나는 더 이상 스티븐스 때문에 우리 동포가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사람의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사람은 죽을 때 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스티븐스를 죽이고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은 내 나라를 위한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이것은 1908년 3월 25일자《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실린 장인환의 글이었다. 그리고 그날 스티븐스는 죽었다.

 

같은 날 《뉴욕 타임스》는 '조선민족은 아직도 살았다'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실었다. 그전에 이미 사건을 보도한 것은 물론이었다.

 

'스티븐스를 저격한 것은 어느 정도 능력을 가진 조선인들 중에서 자기들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의사표시였고, 자기 민족의 운명을 자기들 힘으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형벌에 상관없이 그 젊은 청년들은 그들의 판단이로 치밀하고 용감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일본을 돕고 조선을 배신한 사람을 공격했다. 물론 그 행동은 그리 바람직하거나 현명한 처사는 못 된다. 그러나 추상적으로 생각할 때 그 행동에는 상당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사설은 미국대통령 루스벨트가 '조선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방어하기 위해서 손가락 하나 쳐들지 못하는 민족이다'라고 하면서 조선이 일본의 보호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를 편 것과는 정반대의 논지였다.

 

루스벨트의 그런 모독적인 발언은 3년 전에 그의 특사 태프트와 일본총리대신 가쓰라 사이에 맺어진 '비밀협약'을 뒷받침하기 위한 교활하고 음험한 술책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조선 지배를 미국이 인정하고,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일본이 인정하는 내용인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철저하게 밀봉되어 있어서 루스벨트가 그런 발언을 하는 저의를 간파할 수 있는 조선사람이란 국내외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해 11월에 고종이 구원을 요청하는 밀서를 미국대통령에게 보낸 것도 그 밀약을 전혀 몰랐던 탓이었고, 루스벨트가 고종의 밀서를 일언지하에 묵살해 버린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있다.

 

 

< 2 >

 

 

도처에서 의병들을 잔혹하게 죽이고 있는 소문들이 흉흉하게 퍼지고 있었다. 의병을 한 사람이라도 잡으면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개처형을 하는 것은 으레껏 하는 짓이었고, 원주에서는 의병을 발가벗겨 나무에 묶어놓고 얼굴에서부터 가죽을 벗겨가며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박수를 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평산에서는 남녀 수십 명을 잡아다가 얼음을 깨고 강물에 밀어넣어 얼려 죽였고, 홍천에서는 장날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놓고 의병 시체를 펄펄 끓여대며 장꾼들을 줄 세워 구경시켰고, 순창에서는 의병 둘에게 억지로 물을 먹여 배를 팽팽하게 부풀린 다음 배 위에 널빤지를 놓고 일본군 여러 명이 올라가 마구 발을 굴러대 물을 뿜어대는 모양을 장꾼들에게 구경시켰고, 임실에서는 의병을 잡지 못하자 한마을 사람들을 전부 땅에다 가슴까지 묻어놓고 마치 풀을 베듯이 목을 쳐 죽였다는 것이었다.

 

민간인들은 그동안 의병을 먹여주고 잠재워 주고 치료해 준 것만이 아니었다. 의병의 충실한 ‘눈과 귀’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그동안 그나마 의병들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끊임없는 지원과 협조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단순한 지지자들 이 아니라 의병들과 함께 싸운 제2의 의병들이었다. 그런데 대토벌은 그들과의 연계를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었다. 부대를 소규모로 분산시켜 기동성을 살리는 동시에 토벌대의 공격력을 해체하고 약화시키는 전술을 써야 하는 형편에서 민간인들과 차단되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그것은 곧 소부대의 고립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송수익은 대토벌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자신의 부대가 반 이상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고심 중이었다.

 

의병은 이대로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인가 자주 그의 머리를 스치고 가는 압박이었다. 그 어두운 생각에 이어져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잇고 있었다. 그간에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 그중에 과연 양반이란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가. 거의가 농민이거나 그보다 더 빈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진해서 의병으로 나섰다. 그리고 싸우다 죽어갔다. 시원찮은 무기를 들고 적에게 덤벼드는 그들의 용기, 그건 임금을 위해서였는가, 양반을 위해서였는가. 임금은 모르겠으나 그들은 결코 양반을 위해서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양반을 싫어하고 미워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하는 백성의 도리로 죽어간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많은 죽음들의 결과는......

 

10월이 끝나면서 '남한 대토벌'도 끝을 맺었다. 그 두 달 동안에 죽어간 대소 의병장들이 103명이었고, 의병들은 4,200여 명이었다. 결국 호남의병은 몸체가 잘리고 뿌리까지 뽑혀버린 채 실뿌리만 남게 되었다.

 

의병들의 기세가 드높았던 3년 동안에 일본군이 학살한 의병수는 1만 6,700여 명이었고, 부상자들은 3만 6,800여 명이었다. 그리고 불에 탄 집들은 6천 채가 넘었다. 그러나 민간인들이 얼마나 죽었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채 1909년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 3 >

 

 

"글먼 의병덜이 어찌서 왜놈덜하고 싸우는지도 말로 안 되는간요 ?"

아기중은 마땅찮은 얼굴로 불쑥 묻고는 위아랫입술을 쑥 내밀었다.

"아니지, 그건 말로 되지."

"그 이얘기 잠 히주실랑게라?"

아기중은 얼굴이 환해지며 송수익 옆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송수익은 그 얼굴에서 산사에 떨어져 사는 아이의 외로움을 느꼈다. 어떤 사연으로 절밥을 먹게 되었을까.....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생각이었다.

"이야기 좋아하면 자다가 오줌 싸는데."

"거짓말, 가난허게 산다든디요."

"그렇군. 가난하게 살면 어쩌지?"

"중언 본시 공수래 공수건디요."

“아하하하”

 

송수익은 그만 아기중을 얼싸안았다. 아기중은 품안에 안긴 채 가만히 있었다. 송수익은 문득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기중의 마음이 속세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싶었다.

"자아, 내가 이야기해 주지."

송수익은 품을 허물었다.

"의병들이 왜놈들하고 싸우는 건 말이다 왜놈들이 우리나라를 빼앗으려 했기 때문이란다. 무기를 들고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왜놈들은 칼 들고 안방에 뛰어든 도적놈하고 똑같다. 도적놈이 안방에 들어오면 어째야 되지? 도적님 어서 오시오 하고 반겨야 하나, 도적놈이 무서워 식구들이 모두 무릎 꿇고 처분만 바라야 하나, 식구들이 다 힘을 합쳐 도적놈하고 싸워야 하나, 어느 것이 옳지?"

'도적놈허고 싸와야제라"

그렇지, 도적놈하고 싸워 도적놈을 물아내야지, 그래서 사람들이 의병으로 나서서 왜놈덜하고 싸우기 시작한 거다. 현데, 은 백성들이 한덩어리로 뭉쳐 힘을 합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힘얼 안 합친 사람덜이 누군디요?" 아기중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벼슬살이를 해먹는 사람들이 그랬지."

"양반덜이요?"

“그렇단다 벼슬한 양반님네들이 왜놈들 편을 들고나섰지.”

“양반달이 귀허고 존 사람덜인지 알았등마.....”

아기중은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그려서 공허 시님도 나섰구만이라우?"

“그렇지.”

"지도 담에 커서 그리헐랑마요."

"장한 생각이야. 허나 운봉이 걱정 안 해도 괜찮아."

"어찌서요?"

“그전에 나라를 찾게 될 테니까."

아기중의 눈에서 빛이 스러지며 어깨가 처져내렸다. 송수익은 그런 아기중을 보며 가만히 웃음짓고 있었다.

 

"운봉아, 운봉아아"

어디선가 목소리가 길게 울리고 있었다.

"아이고메, 진법 시님이시, 공양 지을 나뭇단얼 안 옮겼네.

아기중이 놀라 튕겨 일어났다.

아기중이 다람쥐처럼 쪼르륵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색색의 낙엽들이 따라서 굴러가다 멈추고 다른 잎들이 다시 구르고 했다.

송수익은 허를 차며 멀어져 가는 아기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4 >

 

 

“나라가 망하는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서 상감이 짊어져야 할 책무가 더 큰 것인가 아니면 신하고 백성이 짊어져야 할 책무가 더 큰 것인가 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신하들이 줄줄이 자결하고, 백성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도처에서 의병을 일으켰네. 그때 상감은 무엇을 했는가. 구중궁궐에서 비통 통분해했는가. 그것으로 상감의 책무가 다 되는 것인가? 또 그와 반대로 매국노 중신놈들의 요구를 물리치지 못하고 의병해산령에 옥새를 찍어 윤허하는 것이 상감의 책무인가? 헤이그에 밀사를 보낸 것을 자네는 상감이 수행할 수 있는 최상의 책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네만, 그거야말로 한 나라 상감으로서 얼마나 비굴하고 무책임한 처사인가, 무기를 들고 쳐들어온 놈들을 수만 리 밖에 있는 딴 나라 사람들에게 물러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다니, 그런 답답할 노릇이 어디 또 있겠는가 보호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그때 실기를 했으면 그 다음 강제 양위를 당했을 때 상감은 만백성을 향해서 외쳤어야 하네. 백성들이여, 나와 더불어 왜적들과 싸우자 하고 말이네, 그러고 군대를 이끌고 앞장섰어야 했네. (...생략...)상감은 그 책무를 피한 덕에 지금 연명은 하고 있으나 진작에 죽은 목숨이고 그 초라한 몸에 걸쳐진 것은 백성을 버려 나라를 망친 죄, 치정을 그르쳐 사직을 망친 죄가 있을 뿐이네. 어떤가?"

송수익은 속이 후련함을 느끼며 신세호를 응시했다.

 

“자네가 일찍부터 개화사상에 물들어 유학을 등진 것은 알고 있네만 그렇다고 하여 나라의 중심이요 중추이며 만백성의 어버이이신 군왕에 대하여 그리 불충 불경한 언사를 하는 것은 그냥 들어넘길 수가 없네. 자네는 어리석고 방자하게도 지엄하신 군왕을 일개 장수로 폄하하는 무엄함을 범하고 있네, 아무리 국난이 닥쳤다고 하여 어찌 군왕이 앞장서 나서서 군대를 이끈단 말인가. 국난이 우심할수록 군왕의 옥체는 더욱 존귀하게 받들어지고 지켜져야 하는 것이네, 그렇지 않고 옥체에 변고가 생기면 국난은 더욱 어지러워져 나라의 존폐는 백척간두로 몰리게 되네, 군왕이 건재하셔야만 백성들은 군왕을 중추로 하여 힘을 모으게 되고, 그래야만 국난도 이겨내게 되는 법일세. 자네 말대로 상감께서 앞으로 나서셨다가 변고를 당하게 되었더라면 이 나라 꼴이 어찌 되었을지 아나? 왜놈들의 만행은 더욱 흉포해지고 백성들은 중심을 잃어 갈팡질팡하면서 나라 꼴은 바위에 내붇친 옹기그릇 골이 되었을 것이네. 비록 형세가 여의치 못하여 합방을 당했다고 하나 지금 나라가 이만한 것은 다 두 분 상감께서 엄존해 계시기 때문이네. 또한 피치지 못할 사정으로 잠시 나라를 잃었다고 해도 상감께서 엄존해 계시는 한 그 법통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니 실상은 나라를 잃은 것이 아니네. 잃은 것은 다만 겉이요 속은 잃은 것이 아니란 말일세. 자넨 그 점을 망각하고 있으니 자네의 잘못된 생각을 어서 바꾸게."

신세호도 송수익 못지않은 기세로 공박을 가하고 있었다.

 

송수익은 서로가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고 있었다.

 

“됐네, 이건 몇 날 며칠 얘기한다고 될 일이 아니네. 자네와 나는 생각이 너무 다르니 말일세. 자네는 나라의 주인이 임금이고 백성들은 그 종이라고 생각하는 거고, 난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고 임금은 백성들을 위해 치정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의 차이일세. 그 생각의 차이는 내가 의병으로 나선 것과 자네가 의병으로 나서지 않은 것과의 차이 같은 것 아니겠나. 이 얘긴 이쯤 해서 덮어두세"

 

송수익이 스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 5 >

 

 

보름이가 가운데 눕고 어머니와 수국이가 양쪽에 누웠다. 누가먼저랄 것도 없이 보름이와 수국이는 이불 속에서 손을 잡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아무도 말이 없었다. 마당을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추웠고 문풍지 떠는 소리가 슬픈 울음처럼 애절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친정은 그리움이었고, 와서 보면 친정은 슬픔이었다. 보름이는 지향 없는 슬픔으로 양쪽 관자놀이께가 젖어내리는 속울음을 울고 있었다.

 

아침햇살이 퍼지기를 기다려 보름이는 집을 나섰다. 들녘 멀리로 묽은 안개가 가라앉아 있었다. 햇살에 밀려 스러져가고 있는 안개였다.

 

보름이는 들녘안개가 산골안개에 비해 싱겁다고 생각했다. 들녘의 안개는 들녘을 닮아 그저 아득하고 잔잔하면서 부드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산골의 안개는 산 줄기줄기를 휘감고 싸안고 돌며 뭉클거리고 꿈틀거리고 뒤엉키며 요동쳤다. 거칠고 억센 산을 닮은 모습이었다. 들녘안개가 치맛귀 얌전하게 여민 정갈한 여자라면, 산골안개는 저고리 풀어헤친 힘센 남자였다. 경치로 치자면 아무래도 산골안개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름이는 문득 산골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 6 >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소식은 하와이에도 신속하게 전해졌다. 대한국민회 하와이지역 총회에서는 지체없이 그 소식을 각 농장마다 알렸다. 그리고 9월 1일에는 동포들을 모아 일본 성토와 궐기대회를 열었다.

 

우리는 대한의 국호와 국기를 영원히 보장한다.

우리 강토에서 왜적의 무리를 내쫓을 때까지 8월 29일을 국치일로 선포한다.

우리는 왜적에 대한 적개심을 해마다 새롭게 한다.

우리는 왜적의 이해와 협동을 일절 거부한다.

우리는 반일운동을 자손만대에 유산처럼 남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고 왜적의 피를 가진 자를 멀리하고 우교를 단절한다.

우리는 세계 만방에 왜적의 야비성을 누누이 비방하고 왜적과 대결할 실력을 배양한다.

 

그 대회에서 가결한 일곱 가지 투쟁방안이었다. 그 대회에는 하와이의 여러 섬에 거주하는 4,200여 명의 동포 거의가 참석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 대회는 음울한 분위기였다. 그러면서도 뜨거운 열기가 넘쳐났다. 그건 슬픈 분노였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소리지르며 그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돌멩이들이 마구 날아가기 시작했다.

들이 마구 날아가기 시작했다. 일본영사는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했다. 직원들도 영사를 예워싸며 도망질치고 있었다.

"저놈들 다리 작신 분질러라!"

"저놈덜 똥구녕에다 간짓대 박어라!"

일본영사가 줄행랑친 소문은 말이 보태지고 부풀어져 이 농장 저 농장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영사 아오게가 돌에 맞아 머리가 터졌다고 하는가 하면, 주먹다짐을 당해 코피를 줄줄 흘리며 뺑소니를 쳤다고도 했다.

 

 

< 7 >

 

 

보름이는 신작로에 이르러 발길을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상에나..... 저 쌀섬덜 잠 보소.... 태산이 따로 없네....”.

줄줄이 잇댄 달구지들이 쌀섬들을 가득가득 싣고 지나가고 있는 것을 멍하니 바라본 채 보름이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달구지들은 군산 쪽으로 더디게 굴러가고 있었다. 쌀섬들이 군산으로 실려가는 것을 처음 본 것이 아니었다. 처녀 적부터 보아온 것이었다. 그런데도 쌀이 실려가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 철렁하는 놀라움과 걱정이 새롭게 일어나고는 했다. 쌀을 그렇게 쉼없이 일본으로 실어내니 쌀은 귀해지고, 쌀값은 오르고, 가난한 사람들은 쌀을 구경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장리변은 높아지고, 부자들은 날이 갈수록 자꾸만 배꼽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었다.

"다 배곯아 죽겠네…다 배곯아 죽겄어…."

보름이는 가슴이 내려앉는 시름에 묻혀 달구지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연상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려, 이려!"

"이려, 요 잡놈에 소!"

달구지꾼들이 소리치며 소들의 엉덩짝을 갈겨대고 있었다. 목을 있는 대로 늘여 뺀 소들은 입으로는 끈끈한 침을 질질 흘리고 코로는 뜨거운 김을 훅혹 내뿜으며 달구지들을 끌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 내뿜는 콧김이 허연 것처럼 땀으로 맥질된 소들의 등판에서는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보름이는 오월이네 동네 당산나무를 지나며 걸음이 더 빨라지고 있었다. 오월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울고 있는 얼굴이었다. 오월이는 눈에 띄게 잘생기지는 않았어도 수더분하게 항시 웃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떠오르는 것은 우는 얼굴이었다. 그것은 괴질로 남편을 잃고 나서 울 때의 얼굴이었다. 오월이는 처녀 적에 웃던 얼굴을 시집가면서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더니 남편과 아이를 잃고 나서는 우는 얼굴로 변하고 말았다.

 

샘 옆을 지나려던 보름이는 방망이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 추운 아침부터 누가 빨래를 하나 싶은 생각이 스쳤던 것이다. 그런데 방망이질을 하고 있는 여자가 바로 오월이었다.

'아이고, 오월아!" 보름이는 자신도 모르게 왈칵 소리치며 샘으로 내달았다.

“잉? 누, 누구여.” 갑작스러움에 놀란 오월이는 보름이를 얼른 알아보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나여, 나, 보름이." 보름이는 마치 아이들처럼 깡충거리기까지 하며 자기 가슴을 손바닥으로 토닥였다. 샘가에 아무도 없어서 처녀 적의 몸짓이 나오고 있었다.

"보름아, 니가 어쩐 일이여!" 오월이가 울음을 터뜨리듯 하며 방망이를 내던졌다. 둘이는 손을 마주 잡았다.

"니 미쳤냐. 이 추운 날 아침보톰 빨래럴 허고 나스게." 보름이는 쏘아댔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오월이의 손이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이다.

"괜찮혀, 샘물이야 냇물보담 뜨신게로," 오월이가 눈을 떨구었다. 어린 시동생들 많은 오월이의 고달픈 시집살이 아픔이 거기 있었다.

“무신 소리냐: 햇발이 꽉 퍼진 한낮에 허먼 손이 훨썩 덜 시리제. 삼동 아침 햇발에 비허먼 한낮 햇발이야 솜이불 아니디냐.”

보름이는 마구 혀를 차며 오월이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은 벌겋게 얼부푼 데다가 거친 손등은 갈가리 터서 실피를 물고 있었다.

“그리 신간이 편허먼 좋겄제. 한낮에넌 또 딴 일이 있응게” 오월이는 슬픔인 듯 괴로움인 듯 쓸쓸하게 웃으며 손을 뒤로 감추었다.

"이 멍칭이 가시네야, 일얼 앞뒤로 바꾸먼 될 것 아니겠어." 보름이의 입에서는 처녀 때 속상하면 쓰던 말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이 어디 내 맘대로 된다냐" 오월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글먼, 느그 시엄씨가 시집살이시키고 나스는 것이여? 보름이는 가시 돋친 눈으로 남의 시어머니를 거침없이 ‘시엄씨’라고 불러대고 있었다.

"다 나 팔자가 쪼그랑 팔자라서 그렇제" 오월이는 빨랫돌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니 시집살이가 안 맵다고 헌 것언 거짓말이었는갑네?" 보름이도 오월이 앞에 마주 앉았다.

“글씨..... 맘이 변헌 것이겄제. 서방 죽은 것언 돌담 허물어진 것이고, 시아부님 시상 뜨신 것언 짚담 넘어간 것 아니라고, 이래저래 바람 막아줄 사람 없응게 내 신세가 요 꼬라지제."

"시아부님이 시상 뜨셨다고?" 보름이의 눈이 커졌다.

눈물이 그렁해진 오월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시엄씨가 먼첨 죽어야는디 잘못됐다는 말이 곧 목을 넘어오는 것을 보름이는 간신히 참아냈다. 홀시아버지에게 살뜰한 정을 받으며 사는 자신의 처지가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나 그냥 팍 죽었으먼 쓰겼다." 오월이가 손등으로 눈물을 씻고는 빨래를 끌어당겼다.

“그 무신 넋나간 소리여.” 보름이가 오월이의 팔을 붙들었다.

“넋나가기넌..... 나가 서방이 있기럴 허냐 새끼가 있기럴 허나. 그도 저도 아니먼 시엄씨가 살붙게 허기럴 허나. 나가 이 시퍼런 나이에 머럴 바래고 살아지겄냐. 애초에 글른 팔자 죽어서나 고쳐얄 것 아니여."

 

"이 미친 가시네야. 니만 팔자가 글르고 나넌 팔자가 늘어졌냐. 서방 없기로넌 니나 나나 똑겉은 팔자여."

"음마, 그런 소리 말어. 사람이 죽어도 값이 다 달른 법이여. 사내꼭지가 얼매나 못나고 짜잔허먼 괴질얼 못 이기고 죽었을끄나, 왜놈덜 손에 죽었음사 평상 원수값음 헐 맘으로나 살고, 어디서나 자랑 삼음서 살제. 이년 팔자넌 죽도 밥도 아니여."

 

오월이는 빨래를 마구 문질러대고 있었다. 보름이는 그런 오월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에 비해 너무 상한 얼굴이며, 여기저기 꿰맨 자리가 있는 낡은 입성이며가 가엾고 측은했다. 보름이는 빨래통에서 옷가지 하나를 집어들었다.

"니 시방 머허냐!" 오월이가 소스라치며 소리질렀다.

"가시네야, 간떨어지겼다." 보름이가 눈을 흘기며 소매를 걷었다.

"안 돼야, 냅둬, 냅둬!" 오월이는 빨래를 잡아채려고 들었다.

 

“니 어찌 이러냐, 니허고 나허고가 넘넘이냐? 우리넌 동무여. 근디 니 허는 일 손끝 맺고 앉어서 귀경만 헐끄나? 니넌 그럴 심판이여?”

정색을 한 보름이의 말에 오월이는 아랫입술을 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 입언저리며 볼이 씰룩거리고 있었다. 둘이는 한동안 말없이 빨래만 했다.

"시집살이 말고 무신 속상허는 일 또 없냐?" 보름이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없제 머" 오월이는 고개를 저었다.

 

"뜨신밥 한 끄니도 못 해묵고"

'아니여, 이리 만내보는 것이 질이제"

보름이는 빨래통을 받쳐 오월이의 머리에 이어주며 설음의 덩이를 삼켰다.

"맘 강단지게 묵어."

보름이는 오월이의 등에다 대고 애타게 말했다. 빨래통을 힘겨웁게 이고 가는 오월이의 좁은 어깨가 들먹이고 있었다.

 

 

< 8 >

 

 

그들이 그려내고 있는 동그라미는 동네마다 솟아 있는 당산나무의 풍성한 모습을 닮아 있었다. 당산나무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땅에 내리고, 땅의 바람을 받들어 하늘에 올리는 고결한 일을 해낸다고 믿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을 전체를 위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당산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농사일을 시작하게 될 때, 절기 따라 오는 명절 때마다, 풍년의 흥겨움이거나 가뭄의 근심이 생길 때마다, 괴질이 돌거나 어느 집이 흉사를 당할 때마다 마을사람들은 당산나무 아래로 모였다.

 

농사일을 시작하며 풍년을 기원할 때는 고사터가 되었고, 명절 때마다 모여 흥겨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춤과 노래를 즐길 때면 잔치마당이 되었고, 풍년을 감사하고 가뭄을 거둬주기를 빌 때는 제단이 되었고, 마을에 길흉사가 생길 때면 회의장이 되었다. 그리고 뙤약볕 내리쬐는 한여름이면 노인네들의 휴식처나 낮잠터였고, 조무래기들에게는 사시장철 놀이터였다. 어쩌다가 마을의 화목을 깨뜨리는 다툼이 벌어지거나 음행을 저지른 여자가 생겨나면 그때는 재판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산나무 아래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온 마을사람들이 다 모이게 될 때는 아무래도 풍년이 들거나 명절 때였다. 그때는 어김없이 흥겨웁게 풍물이 잡혀 사람들의 신명을 돋우었고, 풍물 잡힌 마당에 술이 결들여지니 춤과 노래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노래를 부르는 축은 자연스레 손에 손을 맞잡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아가고, 춤을 추는 축은 동그라미 안에서 더덩실 더리덩실 풍물과 노랫가락에 실려 맘껏 춤추며 제각기 새가 되어 날았다. 그 잔치마당에서 농사의 고달픔도 녹아내리고, 가난의 시름도 풀려내리고, 속 깊은 근심도 삭아내렸다.

 

당산나무의 풍성한 둥근 숲은 하늘의 모양이었고, 그 아래서 손에 손잡고 동그라미 그리며 돌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서로서로 마음을 하나로 합치고 있었다. 서로 다투었던 일, 서로 질시했던 일, 서로 미워했던 일들을 용서하고 이해하며 앞으로 화목하고 다정하게 둥글둥글 살아가자고 말없는 속에서 다짐하는 것이다. 그럴 때 부르는 아리랑은 슬프거나 구성진 가락이 아니었다. 절로 어깨가 들썩거리고 엉덩이가 씰룩거리도록 밝고 빠르고 경쾌한 가락으로 변하게 마련이었다. 아리랑은 때와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가락을 달리해 가며 부를 수 있는 신통한 노래였고, 장소와 사연에 따라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제각기 가사를 엮어가면서 새록새록 신명을 돋우어나갈 수 있는 가상한 노래였다. 그리고 차례로 돌아가며 가사를 엮어낼 때면 논마지기가 더 있고 없고, 집칸이 더 크고 작고, 인물이 더 잘나고 못나고 간에 아무런 차등도 차별도 없었다.

 

 

조정래 / ‘아리랑 제2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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