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번뇌의 불

송담(松潭) 2021. 4. 23. 15:26

번뇌의 불

 

 

 

 

 

“수절 중에 자식 없고 시부모 없는 수절이 질로 에롭고, 그 담이 자식은 있어도 시부모 없는 수절이고, 또 그 담이 자식 없이 시보모 뫼신 수절이고, 그 끝이 자식 키움서 시부모 뫼시는 수절이니라, 허나 당자가 당허는 맘고상이야 다 똑같다고 헌다. 열녀문 하나가 스자면 삼층장에 피묻은 솜이 가득 차야 헌다는 말이 안 있디냐. 그러자니 송곳으로 찔러댄 허벅지가 어찌 됐겄냐. 맘 강단지게 묵어라.”

 

남편의 사십구재를 지내고 나서 시어머니가 한 말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 말뜻을 잘 몰랐었다. 수절은 당연한 것이었고, 또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1년상을 보내며 마음 허전함이 넓어져 갔고, 2년상을 지내며 외로움이 커져가는 것을 느꼈고, 3년상을 치르게 되면서 송곳이 왜 필요한지를 알 것 같았는데 그만 그 남자와 맞닥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홍씨는 아침저녁으로 불전에 합장을 하는 시간이 괴로웠다 그건 어디까지나 남편의 극락왕생을 비는 불공이었다. 그런데 자신은 전혀 딴마음을 품고 부처님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건 부처님께 죄짓고, 죽은 남편에게 죄짓고, 스님에게 죄짓는 일이었다.

 

스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지성으로 염불을 하고 목탁을 쳤다. 그 염불소리는 부처님의 꾸지람으로 들리고, 그 목탁소리는 부처님의 매질로 느껴졌다. 너무 죄가 커지는 것 같아 마음을 고쳐먹자고 스스로를 나무라고 욕도 하고 다짐도 했다. 그러면 마음이 돌려지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합장을 풀고 법당을 벗어나면 마음은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가버리고, 눈길은 겹겹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산줄기를 더듬고 있었다.

 

마음은 제 것이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 묘하고도 얄궂은 것이었다. 그 미친 마음하고 싸우기에도 지쳐 있었다. 뜻대로 안 되는 미친 마음을 고쳐달라고 큰스님께 모든 걸 실토할까도 몇 번이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다른 마음이 그 마음을 가로막았다. 한마음 속에 마음이 도대체 몇 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서부터 자신도 모르게 불전에 엉뚱한 기구를 하고 있는 자신을 깨달으며 홍씨는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했다.

 

부처님, 부처님, 이것이 필시 인연일진대 꼭 만나게 해주십시오. 오다가다 옷자락이 스침도 인연이고, 먼 산자락을 돌아가는 여인의 옷깃을 보는 것도 인연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온데 저는 글발을 받은 다음 대면하여 눈 마주치고 마음 헝클어진 사이가 아니옵니까. 세상에는 남정네도 많고 절도 많습니다. 하온데 어찌하여 하필이면 그 남자를 이 절에서 만나게 되었습니까. 그건 혹시 부처님의 뜻으로 만남이 지어진 것은 아니옵니까. 저는 제가 남다르게 음녀의 피를 타고나고 탕녀의 피를 타고난 것이 아닌가 수없이 제 살을 꼬집으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오나 제가 남편을 두고 이런 음심을 품었다면 의당 음녀고 탕녀로 벌을 받아 마땅하겠지요. 다 아시듯 저는 남편도 자식도 없는 몸입니다. 스물한 살 나이를 붙들어맬 기둥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찌하오리까, 이 몸 가엾이 여기시어 그분을 꼭 만나게 하여주십소사.

이런 기구와 함께 열흘이 지나가고 있었다.

 

“내 생각으로넌 그 보살이 무신 똑별난 이얘기럴 전혈 것이 있어서 만낼라는 것 같지가 않소. 그저 만내볼라는 마음인 것이제" 주지승이 공허를 건너다보며 아무 어감이 없는 소리로 말했다.

"글먼 청상 가심에 도진 상사기로구만이라?" 공허의 거침없는 말이었다.

주지승의 고개가 보일 듯 말 듯 끄덕였다.

"어째야 좋을랑가요?"

"그것이 설법으로 다스려지는 것도 아니고 염송으로도 꺼지지 않는 병 중에 병인 번뇌의 불이오. 마음 따로 몸 따로 일어나는 병이니 몸얼 없애지 않는 한 마음도 잡아먹는 병이 그것이라 어쩌는 방도가 있겠소. 출가해 법문에 든 몸덜도 그 병앓이로 진창길 걷는 허송세월을 허는 법인디, 젊디나 젊은 중생육신 지녔으니 다른 방도가 있을 리 있겄소, 만내게 다리럴 놓으시오." 주지승의 담담한 말이었다.

 

“송대장이 퇴헐란지도 모르는디요?"

"보시허라 이르시오." 주지승의 어조가 약간 달라졌다.

“그 보살이 미색이든가요?" 공허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주지승은 그저 빙긋이 웃었다.

 

“그 보살이 사람 보는 눈도 솔찬허구만요. 소승이 더 젊은디도 송 대장얼 맘에 둔 것 봉게로, 송 대장이야 참말로 나무랠 디가 없는 분이구만요. 인물 헌출하고 학식 높은 디다가 생각 똑바르고 맘 강직허고 정꺼지 두터우니 더 보탤 것이 없구만요. 근디 처자가 있는 몸에다가 곧 만주로 뜰 몸이니 그 보살 가심에 붙은 불 씨언혀니 깨주기넌 에로운 일이겄는디요."

 

“세상인연이 어찌 다 고르기럴 바래겄소, 인연이야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즉 남녀인연은 더 기묘헌 법이오. 제 번뇌넌 결국 제가 다스릴 길밖에 없소."

 

주지승은 다시 눈을 내리감으며 홍씨가 왜 탈상 때보다 날을 더 질게 잡아 불공을 드리려고 왔는지 뒤늦게 헤아리고 있었다.

 

송수익은 눈을 감았다. 여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스치듯 한 번 보았을 뿐 더 마음에 담지 않은 여인이었다. 그저 조신한 몸가짐에 함초롬한 인상이었다는 느낌뿐이었다. 한 가지 선명한 것이 있다면 탑돌이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공허의 말마따나 그 여인과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라면 마음보시로 어떤 매듭을 지어야만 홀가분할 것 같았다. 끝도 없고 한도 없는 삼천대천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무수한 일어남과 스러짐, 맺어짐과 흩어짐이 그 어느 것 하나도 우연인 것이 없다고 깨달은 자 석가모니는 가르치고 있었다. 그 인연의 필연성으로 하자면 그 여인을 만날 때 진정의 위로를 앞세웠듯이 헤어질 때도 진실한 위로의 마음을 지니고 인연의 매듭을 짓고 떠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송수익은 대원들을 따라 풀려나가고 있는 마음의 가닥들을 거두어 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이고메, 대, 대장님!" 마른 솔가지를 꺾어 모으고 있던 아기중이 송수익을 먼저 보고 비탈을 뛰어내렸다.

“아이고, 운봉 아니신가"송수익도 반가움에 소리쳤다.

"안직 만주 안 가셨구만요!"  "응, 곧 가야지." 아기중과 송수익은 손을 마주 잡았다. 자기를 속인 공허에게 땡초 땡초 왕땡초라고 욕을 퍼대고 싶었지만 아기중은 쉽게 참아냈다. 공허한테 속은 분함보다는 천년장수가 나타난 반가움이 훨씬 컸던 것이다.

"대장님언 생불이시구만이라." 아기중이 불쑥 말했다.

"생불?" 송수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아, 보살님이 대장님얼 만내고 잡아 눈이 빠지고 목이 늘어지는 판에 이리 딱 오셨으니 보살님 맘이 어쩌겄능가요. 근심 걱정 작 가시고 생지옥서 벗어나게 됐옹게 보살님헌티야 대장님이 생불이시제라.”

'아이고, 이런, 이런!" 송수익은 그만 헛웃음을 터뜨렸다. 야무지기가 차돌 같은 아기중의 말이 너무 기특하고도 얄미워 번쩍 안아주고 싶었지만 명색이 출가한 몸으로 중 행색을 갖추고 있으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간에 벌써 1년 세월이 흘러갔군요.” 송수익은 이렇게 말하며 몇 걸음을 옮겼다. 여인이 몸을 돌리지 않아도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여인의 옆얼굴이 드러났다. 여인의 고개가 더 수그러들었다. 붉은 기운 감도는 여인의 귓불에 부끄러움이 꽃빛으로 돋아 있었다.

 

수그린 목의 끝자리에 가지런한 잔머리털이며, 해맑게 꿰비치는듯 발그레하게 돋아오르는 생기이며가 그대로 앳된 모습이었다. 그 청순함을 짓누르듯 하고 있는 낭자머리가 위압스럽고도 서럽게 느껴졌다. 그 낭자머리는 여인의 일생을 옭아매는 어찌할 수 없는 올가미였다. 과부가 되기는 너무 앳된 나이였고, 그 올가미를 벗어나기란 규범이 너무 엄중했다. 송수익은 괴로움을 씹으며 숨을 들이켰다.

 

세상의 물결이 험악하다 보니 청상들이 생겨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병전쟁을 일으키고 나서 도처에서 생긴 청상들이 얼마나 될 것인지 그 수를 짐작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나라를 빼앗긴 죄로그 여자들은 일생을 빼앗긴 셈이었다. 며칠 전에 잠깐 만난 아내의 말이 쟁쟁하게 울려왔다.

"지넌 어찌 살어야 허능가요."

내의 이 절박한 한마디 앞에서 자신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손을 잡아주고 돌아섰을 뿐이었다.

 

송수익은 여인의 고개를 들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저는 내일 곧 만주로 떠납니다."

 

그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 홍씨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여기선 더 이상 의병싸움을 계속할 수 없게 된 형편이라 새 방도를 찾아나서는 길이지요."

여인에게는 굳이 필요한 말이 아닌 줄 알면서도 서로 쑥스러움

을 면하고 여인이 말문을 열게 하기 위해 송수익은 일부러 그 말을 했다.

"만주로..... 그 먼 만주로..... 낮게 중얼거리는 홍씨의 얼굴에 그림자가 스치는 듯하더니, "만주로 가시면 새 방도가 생기능가요." 조심성이 담긴 목소리였지만 말은 분명했다. 눈길도 송수익의 옆얼굴로 향하고 있었다.

"예, 일찍 만주로 건너간 함경도 평안도 의병들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나들며 잘 싸우고 있습니다."

송수익은 부드럽게 말하며 여인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불교를 믿으신 지 오래되셨습니까?” 송수익은 솔가지를 입에 물었다.

"예에, 어려서보톰." 홍씨는 솔가지 끝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송수익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부처님 말씀을 잘 아시겠군요."

홍씨의 눈길은 먼 데를 바라보고 있는 송수익의 얼굴에 박혀 있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인연을 맺지 말라 하셨지요. 인연은 괴로운 것이니, 원수는 만나서 괴롭고, 그리운 사람은 만나지 못해서 괴로운 것이라고요."

 

홍씨는 그만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이 무섭게 가슴을 쳤던 것이다.

풀꾹 풀꾹 푸풀꾹 풀꾹.

어디선가 풀꾹새가 울고 있었다. 쉰 듯하면서도 애절하고 슬픈 소리였다. 임 그리워 울다 울다 목이 쉬고, 피를 토해 제 피를 되마셔 잠긴 목을 틔워 다시 운다는 새였다.

 

"저를 만난 일이 없었던 것으로 잊으십시오. 어차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송수익은 씹고 있던 솔가지를 무심하게 마른풀섶 위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발길을 돌렸다. "해가 기울였습니다. 그럼 제가 먼저" 송수익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홍씨는 송수익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홍씨는 그가 떨구고 간 솔가지를 집어들었다. 풀꾹새는 석양빛 속에서 지칠 줄 모르고 울고 있었다.

 

조정래 / ‘아리랑 2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