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조정래 / ‘아리랑 4권’ 중에서

송담(松潭) 2021. 5. 1. 14:55

조정래 / ‘아리랑 4권’ 중에서

 

< 1 >

 

 

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펑퍼짐한 산마루에는 달집이 높직하게 솟아 있었다. 수십 개의 짚단과 생솔가지로 엮어세운 달집의 생김새는 둔한 듯하면서도 듬직해 보였다. 짚으로 만들어진 물건들이 특유하게 품고 있는 질감이고 형체감이었다. 그러나 달집의 둔한 듯한 느낌은 꼭대기에 꽃힌 솔가지다발의 특이한 형상으로 색다른 세련미를 갖추고 있었다.

 

달집을 만든 짚단들은 집집마다 추렴한 것이었다. 살림의 형편에 따라 많이 내고 적게 내고는 각자의 마음에 달린 것이었지만 살림이 궁하다고 하여 한 단도 내지 않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누가 강압하는 것이 아니었다. 농사를 지으며 마을을 이루고 살아온 오래고 긴 날에 걸쳐서 그렇게 마음 마음을 모아온 것이었다.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사람들에게 짚은 단순한 볏대만이 아니었다. 그건 농경생활을 영위해 가는 데 다양한 쓰임새를 갖는 소중한 재료라는 것을 넘어서서 그 어떤 것보다 청결하고 신성한 뜻을 지닌 대상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짚은 멍석 망태기 삼태기 새끼맷방석 섬 등속의 농사기구며 생활용품을 만들고, 지붕에 이엉으로얹고, 신을 엮어 신으며, 땔감으로 썼다. 그런 생활의 긴요한 쓰임새 외에도 짚은 길운을 지키고 액을 물리치며, 저승길의 혼백을 받드는 제구(祭具)이면서, 하늘에 이승의 염원을 실어 비는 매개물로 쓰였다. 보름날을 비롯하여 온갖 액땜을 하는 허수아비가 짚으로 만들어졌고, 남녀 상제들의 머리에 얹히고 허리에 두르는 띠가 짚으로 엮어졌고, 3년상이 끝날 때까지 사립 밖에 걸리는 사잣밥 망태기가 짚으로 짜여졌고, 제사를 지낼 때마다 사립 밖에 붓는 물밥의 깔개가 짚이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모아 만든 달집의 짚단에는 또 한 해 농사가 가뭄도 홍수도 없이 풍년 들게 해달라는 사람들의 염원이 지푸라기 하나하나에 서려 있었다.

 

짚단과 함께 달집을 이루고 있는 솔가지도 그 쓰임새의 다양함이나 귀히 여겨지기로는 짚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 많은 산들의 주인 노릇을 하면서 사절 푸르른 소나무를 충절이나 지조의 표상으로 삼은 것은 양반들에 국한된 것일 뿐이었다. 농사짓기에 평생을 바치는 백성들에게 소나무는 지겟감으로 없어서는 안 될 나무였고, 솔가리는 불땀 좋은 데다 향내까지 그윽한 땔감이었다. 가지에서 가지를 뻗어가는 소나무는 온몸에 진을 품고 있으면서 속살까지 질겼다. 그래서 가지가지 모양새의 샛가지들은 시루 받침대며 맷돌 손잡이며 소쿠리나 망태기 걸이로도 쓰였다. 또, 향내 짙은 진은 온갖 벌레가 슬지 못하게 했고, 연하면서도 질긴 속살은 쉽게 썩지도 않고 금이 가지도 않으면서 긴 세월을 견디었다. 크고 작은 함지박이며 물통까지 만들어 쓰는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그리고 소나무는 약나무이면서 먹이나무였다. 솔가루는 근기를 돋우고 피를 맑게 하며 뱃속의 회충을 없애는 약이었고, 갓 흘러내리는 송진은 연장에 다친 상처에 바르면 소독제이면서 지혈제였다. 또한 보릿고개에 허덕이는 부황 든 아이들에게 소나무의 새순은 진달래꽃과 함께 간식이었고, 흉년이 무섭게 든 해에 송기는 어른들에게도 양식이었다. 따로 노임을 주지 않는 소작인들을 동원해 송홧가루를 털어 모으게 해서 샛노란 약과를 만들어 먹는 것은 배부른 양반들이 즐기는 호사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혹독한 눈보라 속에서도 푸르고 푸른 소나무의 그 맵고 굳센 힘과 예리한 바늘잎의 별난 생김이 하늘에서 특별히 내린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식을 낳아 질병의 액을 막으려고 대문이며 사립에 치는 금줄에 꼭 솔가지를 끼웠다. 잡귀를 몰아내는 굿을 할 때도 솔가지로 비질을 했고, 묘를 이장하면 그 양쪽에 솔가지를 꽂았다. 부뚜막 위에 식초를 키우는 병에도 솔가지 끼운 새끼줄을 감았고, 간장을 담는 독에도 솔가지에다 숲을 곁들인 새끼줄을 둘렀다. 모든 잡귀들을 바늘처럼 생긴 솔잎들이 콕콕 찔러 물리친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달집 꼭대기에 솔가지다발을 꽂은 것은 짚단 올올이 담은 자신들의 소망이 하늘에 잘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달이 뜬다, 불붙여라아!" 사람들의 왁자지껄함이 뚝 멎었다.

달이 이마끝을 살짝 내밀고 있었다. 장정 셋이 횃불을 높이 들고 달집으로 다가갔다. 모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똑바로 서 있었다. 아이들도 제 부모 옆에 붙어서서 눈들만 또릿또릿 빛내고 있었다. 사방으로 드넓은 벌판이 내려다보이는 산마루에는 무겁고 엄숙한 침묵만이 쌓이고 있었다. 그 침묵은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하늘을 향하여 비는 기원이었다. 하늘은 가뭄도 홍수도 마음대로 하는 절대자였다.

달집에 불이 옮겨붙었다. "와아아-" 사람들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누구나 목청껏 외치는 그 소리는 하늘에 닿을 듯 우렁차게 울리며 막힌 데 없는 들판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다시 들뛰기 시작하고, 불붙어 오르기 시작하는 달집을 넓게 에워싼 사람들은 왁자하게 새 이야기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달은 크고 둥근 얼굴을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문득문득 내밀고 있었고, 제자리를 잡은 달집의 불길은 갈수록 거세게 일어나고 있었다.

 

잘 마른 짚단에 붙은 불은 산마루에 이는 바람을 받아 휘돌아 감기다가 맴돌아 퍼지다가 너홀너홀 춤을 추다가 하며 하늘을 향하여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길 속에서 생솔가지들도 파란 연기를 피워내고 툭툭 튀는 소리를 내며 불붙고 있었다. 짚단과 생솔가지를 태우는 연기가 달빛 퍼지기 시작하는 밤하늘로 길게 길게 뻗어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간절한 기원을 싣고서.

 

일렁이고 너울거리고 꿈틀대며 타오르는 불길은 싱싱하게 살아있었다. 투명하게 이글거리는 현란한 빛깔에도 생동감이 넘치고 있었다. 불길은 붉은색이 아니었다. 황금빛도 아니었다. 꿰비치는 투명함으로 뜨거움을 내쏘고 있는 그 미묘한 빛은 세상의 그 어떤 꽃보다도 아름답고 싱그러운 신비의 빛깔이었다. 사람들의 얼굴 얼굴에 불빛이 번져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달이 그 둥근 얼굴을 마침내 다 드러냈다. 달집도 꼭대기까지 온통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었다. 달빛이 충만해지자 불길의 색깔은 더욱 현란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어떤 여자들은 둥실 떠오른 달을 향해 합장하며 연신 허리를 굽히기도 했고, 어떤 남자들은 달집에 다가들어 담뱃불을 구하려다가 불길이 휘도는 바람에 질겁을 하며 물러나기도 했다. 달집의 불씨를 남 먼저 가져보려는 욕심쟁이였다. 달맞이와 불놀이를 함께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들떠오른 왁자함과 북적거림은 명절기분을 한껏 돋워올리고 있었다.

 

달빛이 점점 밝아지면서 드넓은 들판이 질펀하게 드러났다. 들판 멀찍 멀찍이 큰 무덤인 듯 솟아 있는 산마루마다 달빛을 사르며 불길이 일고 있는 것이 멀게 보였다. 그 불길에서 사람들의 외침이 아련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 2 >

 

 

달빛 없는 어두운 하늘에 초여름별들은 곧 쏟아져 내릴 것처럼 휘늘어져 반짝거리고 있었다. 공허는 가슴 가득 별을 안았다. 그는 별들의 무수한 반짝임을 보면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나는 무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간고였다.

 

절밥을 먹은 다음부터 하늘을 올려다보면 무상감에 몸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고는 했다. 목탁소리며 염불소리에서 막연하게 폴려나오는 그 감정은 끝도 한도 없이 넓은 하늘을 보는 순간 생생한 느낌으로 온몸을 덮쳐오고는 했다. 그 넓디나 넓은 하늘 아래 나 하나는 어찌할 수 없는 티끌이라는 깨달음이 반짝 불을 켜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를 통하지 못한 탓이었을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수하게 반짝이는 초롱초롱한 별들이 다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 별들이 이 세상 사람들로 느껴지면서 무상감에 빠진 마음은 다시 세속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무상감은 순간이었고 세속으로 열린 마음은 무상의 진리를 잡아먹었다. 피눈물 나고 쓰라리고 아픈 나날의 세상살이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인생은 무상한 것이라고 가르치며 고개를 돌리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생은 외적의 온갖 횡포 아래 죽어가고 피흘리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중들이 목탁 치며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고 복청 높여 염불을 왼다고 하여 외적이 물러가고 중생들이 편안해질 리가 없었다. 그건 억지고 눈가림이었다. 태평세월 속에서 편안하게 한평생을 보낸 인생살이는 우주의 수억 겁 세월에 견주어 무상하다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흉악한 외적의 총칼 앞에 목숨을 내놓은 채 날이면 날마다 짓밟히는 지옥살이를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이 어찌 무상일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의 나날은 너무 긴 고통의 유상이요, 괴로움의 유상이요. 절망의 유상인 것이었다.

 

 

< 3 >

 

 

"남자 연장이 질로 짱짱허니 참나무토막이 되는 때가 언젠지 알어? 오륙십 리 질얼 똥줄 타게 걸은 담이여, 어째 그냐! 똥구녕살허고 좆뿌랑구허고넌 한통속으로 고리가 째여 있는디, 사람이 싸게싸게 걸을수록 똥구녕언 지절로 옴죽옴죽험스로 심얼 받고, 그 옴죽음죽허는 심이 좆뿌랑구로 살짝살짝 전해진다 그 말이여. 오륙십 리럴 걸음서 그리 모타진 심이 걸음얼 딱 끝내먼 어찌 되냐! 볼것 없이 하늘로 뻔침서 좆대감지가 나 여깄다 허고 소리질르게 맨들제.

 

아, 나 말이 안 믿기면 다덜 당장 용두질 쳐갖고 똥구녕이 옴죽기리게 심덜 써봐. 좆대감지가 더 짱짱해짐스로 디딜방아럴 찧나 안 찧나. 헌디, 그 이치가 남자만 그러는 것이 아니여, 여자 그것이 짠득짠득험스로 넉글넉글허고 축축험서 따땃허니 질로 맛나는 것이 언젠지 알어? 여자도 사오십 리 싸게 걸은 담이여, 여자 똥구녕허고 거그도 문고리 두 개가 붙은 것맨치로 살이 서로 꿰여 있는디, 여자덜이 큰 방뎅이럴 흔들어댐서 걸어가먼 심받은 똥구녕이 어찌 되것어.

 

보나마나 옴죽옴죽 아니겄어. 근디 서로 살이 꿰여있으니 똥구녕이 옴죽거리먼 거그넌 어찌 되제? 그려, 거그도 옴죽음죽이제 머. 앞 옴죽 뒤 옴죽, 앞 옴죽 뒤 옴죽, 이리 장단 맞침서 사오십 리럴 걸어대먼 어찌 되겄어. 꼰꼰허니 땀 뱀서 따땃해졌겄다, 속살이 서로 씻겨댐서 축축허니 젖었것다. 앞뒤로 음죽기림서 찰져졌것다. 지아무리 큰소리로 나 여깄다고 소리질르는 좆대감지도 거그 물리먼 꼼지락달싹 못혀.

 

근디 각시가 남정네럴 몸 깨끔허니 히서 대허겠다고 거그럴 찬물로 씻거불먼 도로아미타불이여. 긍게로 내우간에 서로가 구름 우에 붕붕 뜨는 진짜배기 맛얼 보자먼 어찌허먼 되나! 장날마동 서방 각시가 장얼 보로 댕긴다 그것이여. 왔다갔다 몇십 리럴 걷고 그날 밤에 붙으면 판이 어찌 되겠어. 그집 구들장 다 내래앉는 것이제."

 

의병을 하면서 음담 잘하는 어느 대원한테 들은 이야기였다.

 

 

< 4 >

 

 

장례라고 할 것도 없었다. 비명횡사라 시신을 집 안에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보름이는 동네사람들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도 억울하고 원통하게 돌아가신 것이니 시아버지를 더욱 정성스레 모셔다가 장례를 치르고 싶었던 것이다. 동네사람들은 하나같이 펄쩍 뛰었다. 산 사람들한테 액이 끼친다는 것이었다. 원한을 품은 망자의 혼백일수록 빨리 저승으로 보내야지 그러지 않고 옆에 붙들어두면 그 혼백은 생전에 제일 좋아하던 사람에게 붙으며 원수를 갚아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혼백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산 사람은 그때부터 실성기를 보이며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보름이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아들 삼봉이에게 횡액이 끼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동네사람들이 나서서 다음날로 출상을 했다. 보름이는 몸을 가눌 수가 없도록 서럽고 서럽게 통곡했다. 시아버지를 생각하는 서러움과 스스로를 생각하는 서러움이 얽히고설켜 겹겹으로 밀려들었다.

 

그러나 보름이는 곧 서러움의 물결에서 헤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농사철이 다가왔는데도 농사지울 땅이 없었던 것이다. 다른 집들과는 달리 보름이네는 빼앗긴 밭을 소작으로 내주지도 않았다. 죄인의 집이라는 것이었다.

 

그 산골마을은 서너 채씩 모여 있는 집을 전부 합해야 스무 가구 남짓이었다. 그 마을에 종이쪽 한 장씩이 돌려진 것은 네댓 달 전이었다. 아무 설명도 없이 돌려진 그 종이쪽을 한문이라고는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취급해 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귀한 종이 구경을 하게 되자 비싼 궐련 피우는 흉내를 내느라고 담배를 말아피웠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오랜만에 거기 호강시키느라고 뒷간에서 요긴하게 써 없앴다. 기껏 간수 잘한 사람이라고 해야 마루기둥 옆 처마 아래 댓살 사이에다가 찔러두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마을사람들 모두의 밭뙈기들을 날아가게 만든 흉물이었다. 마을사람들은 밭을 빼앗기게 된 다음에야 그 종이쪽지 이름이 토지신고서라는 것을 알았다.

 

"나가 여그 산골로 도망질해 온 것이 열일곱 살 적이여. 느그 시엄니럴 쥔 아덜놈이 망칠라고 드는디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있었간디. 서로가 눈혼약얼 헌 사인디. 나락 두 섬 지는 기운으로 패대기럴 쳐뿌렀시니 살길얼 찾어얄 것 아니겠냐, 이 골짝으로 찾아들기넌 혔는디 지닌 것이야 몸띵이덜뿐인게 안 굶어죽을라먼 어쨌그나 농새질 땅얼 맨들어낼 수밖에 없었니라. 밤낮으로 땅얼 파고 파고 또 팠제. 나무고 풀 무성헌 산비탈얼 밭으로 맨들자는 것이여. 논이야 생각지도 못허는 것이고, 나무뿌랑구덜언 짚으제, 돌뎅이 덜언 많제, 연장언 부실허제, 그 고상이야 말로 다 허기가 에롭다. 밭 한 때기럴 일굴라먼 그 땅 한 치마동 쏟은 피땀얼 다 합치먼 몇 말썩언될 것이여. 그 피땀이 말르지만 안 했음사 땅이 척척허니 젖었겄제. 긍게 시방 우리가 지닌 밭돼기 한나한나넌 다 그리히서 맨글어진 것이제. 무신 말인고 허먼, 그 밭돼기덜언 넘덜 눈에넌 보잘것이 없드라도 이 시애비 피고 살인 심이여."

 

남편이 죽고 나서 시아버지가 먼 산줄기를 바라보고 앉아 들려준 이야기였다.

 

조정래 / ‘아리랑 4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