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노트 26

이기호 / ‘눈감지 마라’중에서

이 아버지를 보라 “네 아버지가 점점 개가 돼가는 거 같다.” 지난달 중순 무렵, 정용의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와 대뜸 그렇게 말했다. “왜요? 또 두 분이 다투셨어요?” 정용이 묻자,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싸우긴 뭘, 말 상대가 돼야 싸우기라도 하지... 이건 뭘...그냥 개라니까, 개.” 원체 입이 건 어머니이긴 하지만, 사실 정용 또한 아버지를 볼 적마다 속으로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선인장이나 화초, 밑동이 단단한 나무처럼 좋은 것들 대신 자꾸 개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58년 개띠라서 그런가? 하지만 정용의 아버지는 여타 다른 아버지들처럼 인간과 개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상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도 아니었다. 정용은 동네의 몇몇 그런 아버지들을 알고 있었다. 술만 마시면 '그..

독서 노트 2024.05.01

이선재 /‘다시 문학을 사랑한다면’중에서

이선재 /‘다시 문학을 사랑한다면’중에서   오해와 이해 오해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제가 꼭 함께 소개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바로 프레드 울만의 소설 『동급생』입니다. 이 소설에서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렸던 두 소년 한스와 콘라딘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도 다름 아닌 오해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유대인 의사의 아들인 열여섯 살 한스슈바르츠와 새로 전학 온 독일 귀족 소년 콘라딘 폰 호엔펠스의 우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스와 콘라딘은 예술과 철학 그리고 신에 대해 토론하고 시를 낭송하면서 그들만의 우정을 쌓아나갑니다. 어느 날 한스는 자신의 수집품을 보여주기 위해 콘라딘을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런데 한스의 아버지가 콘라딘을 '백작님'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대하자 한스는 열등감을 느낍니다. 자신의 우상과도 같은 ..

독서 노트 2023.11.19

강인욱 / ‘세상 모든 것의 기원’중에서

강인욱 / ‘세상 모든 것의 기원’중에서   신라는 닭의 나라였다  신라 신화에 닭이 등장한다. 《삼국사기》에는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 신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석탈해왕 9년(65년) 봄에 왕이 금성 서쪽 시림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 날이 밝은 후 닭이 우는 곳에 가 살펴보니 나무에 작은 함이 달려 있었고 그 안에 조그마한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아이는 총명함과 지략이 넘쳤기에 알지(智)라 이름하고 금함으로부터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으로 삼았으며, 닭 우는 소리로 아이가 있는 곳을 발견했으니 시림의 이름을 바꾸어 계림(鷄林)이라 칭하고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다. 신화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닭은 상서로운 기운을 전달해주는 매개체로 서술되었다...

독서 노트 2023.11.15

유시민 /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뇌과학 1.'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인문학의 표준 질문이다. 그러나 인문학 지식만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먼저 살펴야 할 다른 질문이 있다. '나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의 질문이다. 묻고 대답하는 사유의 주체를 '철학적 자아'라고 하자. 철학적 자아는 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물질인 몸에 깃들어 있다. 나를 알려면 몸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일반 명제로 확장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과학의 질문은 인문학의 질문에 선행한다. 인문학은 과학의 토대를 갖추어야 온전해진다.' 문과인 나는 과학자들이 인간에 대해 알아낸 여러 사실을 이의 없이 받아들인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 돌·흙·물·불·공기를 비롯한 모든 물질, 달과 태양과 우리 은하의 모든 별, 다른 은하를 포함해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물..

독서 노트 2023.10.16

정지아 /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중에서

먹이사슬로부터 해방된 초원의 하루  이미지 출처 : pngtree  아프리카 초원 어딘가 야생 사과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있다. 저 홀로 자란 사과나무는 장정 열댓 명이 끌어안아도 팔이 닿지 않을 만큼 거대하다. 돌보는 이 하나 없어도 사과나무는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때가 되면 절로 떨어진다. 땅에 떨어진 사과는 고온건조한 기후 덕에 발효되어 향긋한 사과주로 익어간다. 마침맞게 술이 익은 날, 코끼리와 사자가 가장 먼저 사과나무 아래로 찾아온다. 코끼리는 긴 코로 날름날름 미친듯이 사과를 주워 먹는다. 술에 취한 코끼리가 비틀거리다 제 다리에 걸려 자빠지고 신이 나 내달리던 사자는 저희끼리 부딪쳐 나뒹군다. 그때쯤 먼 데서 망을 보던 영양이며 얼룩말, 원숭이들이 우- 사과나무를 향..

독서 노트 2023.10.01

세이노 / ‘세이노의 가르침’중에서

불꽃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불꽃의 참의미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절대 고독의 상태로 고립되어 있는 상태에서만 검증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다. 한국인이라는 사실도 의미가 없으며 남을 위한 봉사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도 무인도에서 혼자가 된 처지에서는 무의미하다. 무슨 이데올로기를 신봉하건, 고향이 어디건, 어느 학교를 나왔건, 나이가 몇 살이건, 재산이 많건 적건, 이력서가 아무리 화려하건 간에 다 하찮은 것들이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최고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돈을 최고로 여기며 살았다고? 웃기지 마라. 나는 내 인생 자체의 중요성을 최고로 여기며 살았다. 돈은 내 인생의 자존심을 세우는 데 필요한 것이었고, 수없이 넘어지면서 그저 게임의 방법을 체득하여..

독서 노트 2023.08.01

김상욱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바다 출판사)중에서

김상욱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바다 출판사)중에서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뉜다. 양성자는 양전하를 띠고 전자는 음전하를 띤다. 중성자는 이름 그대로 전하가 없다.  원자는 원자 번호로 구분된다. 원자 번호는 원자가 가진 양성자의 수다. 원자는 중성이기 때문에 전자도 같은 수가 있어야 한다. 3번 원자 리튬은 양성자 3개, 전자 3개를 가진다. 원자핵도 흥미로운 주제지만 만물이 원자로 되어 있다고 할 때 중요한 것은 전자다. 원자핵은 원자 내부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 접근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원자들이 만나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실제 맞부딪히는 것이 전자다.  자연 상태에서는 92번 원자까지 존재할 수 있다. 빅뱅이나 초신성폭발 같은 자..

독서 노트 2023.06.16

구본형ㆍ홍승완 /마음편지(을류문화사 출판)중에서

삶에는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져야 할 때가 있다 나는 융의 자서전을 수시로 꺼내 읽고 그가 정립한 분석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공부했다기보다는 그냥 거기에 빠졌습니다. 융의 자서전을 읽은 후 방문을 걸어 잠그다시피 하고 한 달 내내 그의 다른 저작과 분석 심리학에 관한 책을 열 권 넘게 연거푸 읽었습니다. 자는 시간 빼고는 책만 읽었던 것 같습니다. 1년 넘게 나의 독서 목록은 융과 분석 심리학 서적으로 채워졌으며, 이후에도 오랫동안 융의 심리유형론에 기반을 둔 MBTI를 공부하고 전문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습니다. 융의 사상은 난해하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도 공부할수록 매혹되었고, 그와의 인연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돌아보면 융의 자서전은 내게 하나의 계시였습니다. 자연의 겨울이 ..

독서 노트 2023.02.16

정여울 / '문학이 필요한 시간(한겨레출판)'중에서

사랑받지 못한 자의 더 커다란 사랑 바리데기 신화는 내 마음속에 항상 언젠가 꼭 닮고 싶은 이상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가 끝인가 싶을 때마다, 난 이것밖에 안 되는 존재인가 싶을 때마다 남몰래 꺼내보는 이야기가 바리데기 신화다. 바리데기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오구대왕의 일곱 번째 딸, 그러니까 공주로 태어났는데도 바리데기는 공주다운 삶은 누려보지 못했다. 미처 자기 존재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인 기회조차 없었다. '또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버려졌다. 그 이름 자체가 '버려진 존재', 즉 허섭스레기같은 존재라는 의미를 새기고 있으니,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버려진 것으로 모자라 자기를 버린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머나먼 서천서역국으로 치유의 꽃과 물을 찾아 나선다. 서천서역국은 하데스처럼 한 번 ..

독서 노트 2023.02.03

정희원 /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중에서

우리 몸은 생각보다 더 많이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루 20킬로미터를 걷고 뛰는 정도까지는 끄떡없다. 뛰면 무릎 연골이 닳아서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론 적절한 근골격계 내재역량을 갖추지 않고 몸이 가분수인(근골격계가 취약하고 체중이 과도한) 상태에서 견딜 수 없는 부하가 걸리면 관절이 손상된다. 하지만 근골격계 내재역량을 갖춘 상태에서 올바른 자세로 적절하게 달리면, 오히려 무릎 주변의 근육과 인대가 강화되면서 장기적으로는 관절의 마모 속도를 늦출 수 있다. 편하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예컨대 더 비싼 의자를 사서 오래 앉아 있거나 가까운 곳도 차량을 타고 이동하려고 할수록 미래에 더 많은 고통을 얻는다. 걸을 때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어깨와 등, 목이..

독서 노트 2023.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