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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노래 / 이해인

12월의 노래 / 이해인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 말을 많이 했던 빈 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공감 Best 20 2023.11.30

이선재 /‘다시 문학을 사랑한다면’중에서

이선재 /‘다시 문학을 사랑한다면’중에서 오해와 이해 오해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제가 꼭 함께 소개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바로 프레드 울만의 소설 『동급생』입니다. 이 소설에서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렸던 두 소년 한스와 콘라딘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도 다름 아닌 오해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유대인 의사의 아들인 열여섯 살 한스슈바르츠와 새로 전학 온 독일 귀족 소년 콘라딘 폰 호엔펠스의 우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스와 콘라딘은 예술과 철학 그리고 신에 대해 토론하고 시를 낭송하면서 그들만의 우정을 쌓아나갑니다. 어느 날 한스는 자신의 수집품을 보여주기 위해 콘라딘을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런데 한스의 아버지가 콘라딘을 '백작님'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대하자 한스는 열등감을 느낍니다. 자신의 우상과도..

인생 2023.11.19

강인욱 / ‘세상 모든 것의 기원’중에서

강인욱 / ‘세상 모든 것의 기원’중에서 신라는 닭의 나라였다 신라 신화에 닭이 등장한다. 《삼국사기》에는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 신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석탈해왕 9년(65년) 봄에 왕이 금성 서쪽 시림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 날이 밝은 후 닭이 우는 곳에 가 살펴보니 나무에 작은 함이 달려 있었고 그 안에 조그마한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아이는 총명함과 지략이 넘쳤기에 알지(智)라 이름하고 금함으로부터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으로 삼았으며, 닭 우는 소리로 아이가 있는 곳을 발견했으니 시림의 이름을 바꾸어 계림(鷄林)이라 칭하고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는다. 신화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닭은 상서로운 기운을 전달해주는 매개체로 서술되..

유시민 /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뇌과학 1.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인문학의 표준 질문이다. 그러나 인문학 지식만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먼저 살펴야 할 다른 질문이 있다. '나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의 질문이다. 묻고 대답하는 사유의 주체를 '철학적 자아'라고 하자. 철학적 자아는 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물질인 몸에 깃들어 있다. 나를 알려면 몸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일반 명제로 확장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과학의 질문은 인문학의 질문에 선행한다. 인문학은 과학의 토대를 갖추어야 온전해진다.' 문과인 나는 과학자들이 인간에 대해 알아낸 여러 사실을 이의 없이 받아들인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 돌·흙·물·불·공기를 비롯한 모든 물질, 달과 태양과 우리 은하의 모든 별, 다른 은하를 포함해 우주 전체에 존재..

사랑의 시(詩) / 김산

비 오는 날, 사랑의 시(詩) 김산 선생님을 만나 정원에 자연석을 배치한 후부터 비가 오면 비에 젖어 각자의 색을 드러내는 돌들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오늘도 우산을 쓰고 비에 젖은 돌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오니 때마침 김산선생님으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정원의 돌들이 궁금한 것은 이심전심이었나 봅니다. 정원에 있는 묵묵한 돌의 모습과 흡사한 김산 선생님께서 시 한 편을 보내왔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며 사랑의 시, 사랑의 철학을 배웁니다. 사랑 / 김산 사랑이란 서로의 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집으로 쌓았던 눈 높이의 벽 허물고 허무는 것 사랑이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가까이 있는 것 처럼 마음의 눈은 한줄기 따뜻한 별이 되어 서로의 시린 가슴 살며서 감싸주는 것 사랑이란 받아서 채워지는 것도..

공감 Best 20 2023.10.06

가을의 문턱에서

가을의 문턱에서 젊은 시절에는 뜨거운 여름이 좋았다. 강열한 태양빛이 직선으로 백사장에 꽂히고 수평선 위로 뭉게구름이 피어있는 한여름의 바닷가는 낭만 그 자체였다. 태풍의 예고에도 결기를 보이며 해수욕장으로 출발했던 피 끓은 시절, 파도가 거품을 길게 밀고와 넓은 백사장을 덮는 장관(壯觀)을 보고 탄성했던 그 시절. 여름은 이렇게 기억의 언저리에서 아름답게 피어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얼굴에 주름지니 이제는 여름이 싫다. 지난 유월부터 시작된 열대야가 구월 중순까지 지속되어 지겹다. 앞으로 매년 더운 날이 지속되어 올 여름이 가장 시원할 것이라니 더욱 심란(心亂)하다. ‘욕망(慾望)은 생산(生産)한다’는 자본주의가 머지않아 지구온난화로 인해 자연의 역습을 받고 신음하게 된다니 이 또한 걱정이다. 계절뿐..

내가 좋아했던 추억의 팝송

내가 좋아했던 추억의 팝송 Please release me 잉글버트 험퍼딩크는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의 가수이고 본명은 아널드 조지 도시이며 잉글버트 험퍼딩크라는 예명은 독일 제국 말기의 피아노 연주자 겸 오페라 작곡가 엥겔베르트 훔페르딩크에서 취음한 예명이라고 합니다 1936년 5월 2일 출생 (87세), 키 186cm에 미남이고 멋쟁이 입니다 나를 풀어주세요, 나를 놓아주세요 Please release me, let me go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For I don't love you anymore 우리의 삶을 낭비하는 것은 죄가 될 것입니다 To waste our lives would be a sin 나를 풀어주고 다시 사랑하게 해주세요 Release me and le..

클래식, 음악 2023.10.06

정지아 /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중에서

먹이사슬로부터 해방된 초원의 하루 이미지 출처 : pngtree 아프리카 초원 어딘가 야생 사과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있다. 저 홀로 자란 사과나무는 장정 열댓 명이 끌어안아도 팔이 닿지 않을 만큼 거대하다. 돌보는 이 하나 없어도 사과나무는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때가 되면 절로 떨어진다. 땅에 떨어진 사과는 고온건조한 기후 덕에 발효되어 향긋한 사과주로 익어간다. 마침맞게 술이 익은 날, 코끼리와 사자가 가장 먼저 사과나무 아래로 찾아온다. 코끼리는 긴 코로 날름날름 미친듯이 사과를 주워 먹는다. 술에 취한 코끼리가 비틀거리다 제 다리에 걸려 자빠지고 신이 나 내달리던 사자는 저희끼리 부딪쳐 나뒹군다. 그때쯤 먼 데서 망을 보던 영양이며 얼룩말, 원숭이들이 우- 사과나..

윤보미나 / ‘차야 티클라스’를 읽고

윤보미나 / ‘차야 티클라스’를 읽고 성장 배경 윤보미나, 이름 잘 지었다. ‘봄이 오려나’고 생각하면 설렘이 있고, ‘봄이다’고 생각하면 따뜻한 온기가 돈다. 보미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책과 함께 하고 있다. 특이 가족끼리 독서 토론을 하는 보기 드문 가족이다. - 집안에 목욕탕과 화장실이 있었고 자가용도 오토바이도 있었고 텔레비전, 전화와 전축도 있었고...그 시대에 책이 많은 것이 부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에 계신 엄마와 자식들이 Zoom을 통해 얼굴을 보면서 1주일에 한 번씩 이야기를 나눈다. 저녁을 먹고 그 주의 책을 한 켠에 끼고 슬리퍼를 신고 서재로 가서 우리들은 태평양을 건너서 줌으로 독서모임을 한다. 아니 지적 수다를 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