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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네, 괜찮아요

괜찮네, 괜찮아요김선자 / 강원 강릉시 살아오면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푸근하고 친근감이 든다는 말이 듣기 싫었다. 그렇다고 한 번도 다이어트를 실행해 본 적은 없다. 40대 초반부터 화장은 했지만 바쁜 탓에 맨얼굴로 출근하기 일쑤였다. 지금도 목적 없는 화장은 하지 않는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화장을 안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예의가 아니라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물 묻은 얼굴, 화장기 없는 까칠한 얼굴, 얼마나 좋은 말인가. 그건 진솔함이다. 남편의 말도 한몫했다. 부부 동반으로 어울릴 때면 꽃단장하려는 내게 '괜찮다, 괜찮아.어서 가자' 맨얼굴로 풀 뽑던 호미를 내던지고 나서는 때가 부지기수였다. 괜찮아서 괜찮다고 하는 건지, 빨리 데려가서 부려먹으려고 하는말인지 아리송하다. "..

드라마틱한 재생에너지 확대는 없다

드라마틱한 재생에너지 확대는 없다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는 미지의 대상이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2050년 탄소중립과 같은 청사진은 있지만, 가보지 못한 미래일 뿐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기후는 사회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라고 선언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산업 구조까지 전환하겠다는 메시지는 강렬했다. 기업들을 위한 RE100 제도 강화, 에너지 안보 수준으로 끌어올린 해상풍력 건설 등 굵직한 정책 키워드를 내세웠다. 그러나 선언과 현실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작년 5월 산업통상자원부는 ‘계통포화 해소 대책’을 통해 2031년 말까지 전국 변전소 205개(광주·전남 103개, 전북 61개, 강원·경북 25개, 제주 16개)..

박완서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중에서

박완서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중에서 다음 날부터 나는 서울서 사는 법도를 익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건 실상 서울살이의 법도라기보다는 셋방살이의 법도였다. 눈뜨자마자 뒷간이 어디냐고 묻는 나에게 엄마는 변소는 안집 식구들이 다 다녀 나온 다음에 가는 거라고 했다. 뒷간을 변소라고 한다는 것은 기차간에서 이미 배운 바가 있고, 한 사람씩밖에 못 들어가게 돼 있는 안집 변소도 어제 한번 다녀오긴 했어도 똥 마려운 것까지 안집한테 양보해야 된다는 건 그날 처음 알았다. 엄마는 한술 더 떠서 "너를 데려오면서 안집한테 얼마나 눈치가 보인 줄 아니? 방 얻을 때 두 식구라고 했거든. 주인집도 네 또래들이 있으니까 싫어할 것 같아서." 이러는 게 아닌가. 속일게 따로 있지, 어떻게 있는 자식..

독서 노트 2025.08.07

야만의 굴레를 넘어

야만의 굴레를 넘어 민주주의의 상궤를 벗어난 권력은 시민들에게 깊은 피로감을 안겼다. 견제 없는 통치, 소통 없는 명령 탓에 사회는 갈등과 분열 속에 잠식되어 갔다. 갈라치기에 의한 극단은 일상이 됐고, 상식은 비정상으로 전락했다. 잘못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남 탓으로 돌렸다. 정직하지 않았을뿐더러 인간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다. 3년도 안 돼 막 내린 윤석열 정부의 통치는 ‘야만’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시기였다. 윤석열은 공직자, 통치자의 기본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채 권력을 잡았다. 그의 자질 부족은 단순한 개인의 한계를 넘어 사회 전체에 막대한 고통과 혼란을 초래했다. 시작은 그럴듯했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구호에 모두가 솔깃해했다. 많은 이들은 정치권 밖에서 온 인물이기에 기성 정치의..

명칼럼, 정의 2025.07.31

정영방과 연꽃

정영방과 연꽃 요즘 정원이 대세다. 순천만과 태화강 등 국가정원이 2곳, 지방정원은 15곳이나 된다. 전 국민의 호응이 뜨겁다. 이제 먹고살 만하니까 정원에 눈을 돌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염과 인공시설물로 뒤덮인 도시의 숨구멍이 정원이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도 정원을 가꿨을까? 자연에 기댄 위락 공간이 우리 시대 정원이라면, 예전에는 철학적 담론과 문화 교류의 장이 정원이었다. 경북 영양에는 전통 정원의 대표 중 하나인 서석지(瑞石池)가 있다. 퇴계 학풍을 이어받은 정영방(鄭榮邦)이 조성한 원림이다. 그는 당파싸움에 찌든 조정을 멀리하고 고요한 영양으로 거처를 옮겨 ‘거경궁리’와 ‘주일무적’이라는 화두를 잡고 공부에 전념했다. 스승인 정경세가 벼슬길에 나설 것을 권하자 그는 학문에 매진할 수..

‘서울대 10개’의 함정

‘서울대 10개’의 함정 (...생략...)그러나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개혁하고자 하는 우리의 현실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된 수도권 집중이다. 한국의 수도권 집중은 사실 상상을 초월한다. 2023년 기준 수도권은 한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약 52.3%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수도권 면적은 약 12%이지만 인구는 50% 이상을 차지하며, 경제활동도 과반을 차지하는 극심한 집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최고 명문 대학을 통칭하는 ‘스카이(SKY)’ 모두 서울에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에 있으면 모두 서울대라도 되는 듯 국내 상위권 대학 대부분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한때 명성을 날렸던 지역 거점 국립대학은 대부분 수도권 대학 다음으로 순위가 밀리는 실..

귀농·귀촌 후배들에게

귀농·귀촌 후배들에게 가끔 귀농·귀촌 계획을 가진 분들의 연락을 받는다. 유행처럼 쏟아져 내려올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까지는 자신이 없지만 ‘나 혼자 산다’ 정도는 해보고 싶은 딱 그 정도인 듯하다. 빈집도 찾고 내놓은 땅도 둘러보다가 차 한 잔 앞에 두고 살아온 내력을 털어놓는다. 듣다 보면 이후의 흐름과 결과를 짐작할 수 있다. 상담차 찾아오신 분들도 그렇고, 이곳 어르신들도 여전히 내게 물으신다. “여가 고향이요?” 아니라고 답한 이후 문답은 천편일률이다. 부모님 고향이 이짝이요? 아뇨, 두 분 다 경기도 분이세요. 구례에 친척이라도 있소? 아뇨, 서울에서만 살았어요. 그 전에 농사는 지어봤소? 아니요. 농촌활동 ..

전원생활 2025.07.22

해양수산부가 섬 행정을 가져가면 안 되는 이유

해양수산부가 섬 행정을 가져가면 안 되는 이유 일본의 섬 숫자가 순식간에 2배 넘게 증가했다. 2023년, 일본의 섬은 6852개에서 1만4125개로 7273개나 늘어났다. 다시 전수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10만개 이상의 섬을 새로 발견했는데, 바깥 둘레 100m 이상 섬만을 정식 등록했음에도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무도하게 일본은 1만4125개 속에 독도를 포함시켰으니 우리 섬 독도를 빼면 그 숫자는 1만4124개다. 일본이 갑작스레 지도 밖의 섬들까지 찾아내 자국 영토로 포함시킨 것은 해상 영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그동안 우리 섬은 정부 차원의 일관된 통계가 없었다. 부처마다 각기 다른 숫자를 발표했다. 혼선이 빚어지자 지금은 국토교통부가 전체 통계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2025년 7..

여름 일기

여름 일기이해인 수녀 1 아무리 더워도 덥다고 불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땀을 많이 흘리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용서하며 해 아래 피어나는 삶의 기쁨 속에 여름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2 떠오르는 해를 보고 멀리서도 인사하니 세상과 사람들이 더 가까이 웃으며 걸어옵니다 이왕이면 붉게 뜨겁게 살아야 한다고 어둡고 차갑고 미지근한 삶은 죄가 된다고 고요히 일러주는 나의 해님 아아, 나의 대답은 말보다 먼저 떠오르는 감탄사일 뿐! 둥근 해를 닮은 사랑일 뿐! -시집 에서 2019.7.8 경향신문 2019.7.21 참나리 요즘 트위터 페이스북 더보기 싸이월드 미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