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36

하멜 14년, 애덤스 20년

하멜 14년, 애덤스 20년 1653년, 효종 4년 시기에 은둔국이었던 조선 땅으로 낯선 이방인들이 밀려 들어왔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하멜 일행 36 명이 제주도에 표류한 것이다. 풍랑에 부서진 스페르베르호는 제주도 대정 해안에 좌초했다. 선원 가운데 반은 죽고 나머지가 간신히 뭍으로 살아 올라왔다. 제주 목사 이원진은 한양에서 내려온 박연(벨트브레)의 통역 도움으로 조사를 마치고 10개월 만에 이들을 한양으로 올려보냈다. 조선 조정은 네덜란드인들을 훈련도감, 금군에 배치했다. 덩치가 좋고 화포를 잘 다루는 특기를 살린 것이었다. 하지만 청나라가 이 사실을 눈치챌까 봐 조선은 전전긍긍했다. 사신단이 올 때마다 하멜 일행을 가두거나 남한산성 등지로 피신시키고는 했는데 마침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

역사 2021.11.10

맥아더 장군과 두개의 동상

맥아더 장군과 두개의 동상 마닐라 항구를 떠난 선박은 풍선 주머니 모양의 마닐라만 입구를 향해 남쪽으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인구 8,000만 명의 대국 필리핀, 그 중심지이면서 2,000만 명이 모여 살고 오늘의 역사를 이어 오는 곳. 하지만 마닐라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가난과 부패의 구름 속에 가려져 있는 느낌이다. 아시아의 최선진국에서 50년 만에 최빈국으로 전락한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멀어지는 뱃길에서 돌아보는 항구의 빌딩들이 초라해보였다. 2시간 만에 도착한 코레히도르섬은 올챙이 모양으로 길게 누워 좁은 마닐라만 수로의 파수문 같았다. 열대 우림 속으로 찌프니 (소형지프를 개조해 만든 필리민의 대중버스)를 타고 들어가니 1890년 미국·스페인 전쟁 때 구축된 대포와 방어진..

역사 2021.11.09

칼의 기억, 히젠토

칼의 기억, 히젠토 사진출처 : 컨슈머타임스 조선의 황후 민자영은 일본 사무라이 칼에 찔려 비명에 세상을 떠났다. 야심 차고 지적이던 한 나라의 왕비가 낭인들에게 무참히 난자당한 사건은 세계사를 다 뒤져도 찾아보기 어렵다. 을미사변이라고 칭하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발단으로 조선과 일본은 피로써 피를 씻는 비극적 관계가 시작되었다. 궁궐 한가운데서 황후를 찌르고 시체를 옆 숲속으로 끌고가 불태운 만행은 나라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물어야 할 국가적 질문이다. 소설가 이문열의 희곡 을 토대로 만든 뮤지컬 를 마지막까지 차마 다 보지 못한 기억이 있다. 나는 지금도 그녀의 한을 노래한 소프라노 조수미의 을 자주 듣는다. 청각으로 꽂히는 지극한 슬픔은 분노보다는 우리가 더 강해져야 한다는 의연함을 품게 한다. '..

역사 2021.11.08

간도에는 지금도 죽은 자들이 살고 있다

간도에는 지금도 죽은 자들이 살고 있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 유해가 고국에 돌아왔다. 언론은 영웅의 귀환과 함께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승전보(勝戰譜)를 펼쳐보였다. 언제 들어도 가슴 뛰는 불멸의 순간들. 청산리 대첩이 없었다면 독립전쟁은 참으로 초라했을 것이다. 김좌진, 이시영, 최운산, 이상룡, 지청천, 이범석…. 이들은 간도의 별이다. 옛 기억 속 간도에서는 독립군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렸다. 그 말발굽이 어린 마음을 흔들었다. 조선인 마을은 가난하지만 정갈했다. 자작나무를 태워 저녁을 짓고, 냇내가 가시면 별들이 내려와 반짝였다. 학교에서는 윤동주 시인이 이국 소녀들과 같은 책상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이육사 시인이 광야에서 목 놓아 울면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만주벌판을 질러 내려..

역사 2021.09.06

아편전쟁에서 국공내전까지 / 중국 근대사

아편전쟁에서 국공내전까지 / 중국 근대사 바람 앞의 촛불 같은 광저우의 운명! 청나라 도광제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지요. 1841년 1월 27일, 도광제는 영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합니다. 그러나 영국은 그런 선전포고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계속 병력을 광저우 앞에 집결한 후 5월 21일, 광저우에 총공격을 개시합니다. 광저우는 불바다가 되고 잿더미가 되어버리죠. 경악한 청나라 조정은 즉각 영국과 협상을 요구했고 영국의 요구대로 홍콩을 넘기기로 합의해요. 1841년 5월 30일에 이뤄진 '광둥협정'이랍니다. 물론 홍콩은 다음 해인 1842년 난징조약에 의해 공식적으로 영국에 넘어갔어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광둥협정 체결 순간부터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광동협정으로 홍콩을 손에..

역사 2021.08.29

태평양전쟁

태평양전쟁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정말 무능하게 짝이 없었던 조선 조정은 청나라에 원군을 좀 파병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그래서 청나라는 조선에 군대를 보냈어요. 그랬더니 일본군도 조선에 상륙하는 것이 아닙니가! 이는 동학혁명 이전인 1885년에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텐진 조약'의 '청일 양국 중 하나가 조선에 파병하면 나머지 국가도 똑같이 파병한다'라는 조항 때문이었습니다. 동학군 진압이 명분이 되어 청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보냈으니 일본도 똑같이 군대를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청군과 일본군, 이 두 외세가 조선 땅에 들어온 것을 본 동학농민군은 ‘조선이 외세에 휘둘리는 것은 허용 못 한다'라는 생각으로 맞서 싸우던 조선 조정과 화해하고 자진 해산합니다. 그럼 일단 '반란'이 끝난것이니..

역사 2021.08.29

에도막부(江戶幕府)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에도막부(江戶幕府)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일본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일본의 왕인 덴노(天皇)와 쇼군(將軍) 두 시스템을 이해해야 합니다. 덴노에 대해 먼저 알아보기로 하죠.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역사에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 있답니다. 바로 '일본은 한 번도 왕조가 바뀐 적이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중국은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등으로 왕조가 바뀌어 왔고 우리나라도 신라, 고려, 조선 등으로 왕조가 바뀌어 왔잖아요. 일본은 기원전 800년경 제1대 덴노인 진무 덴노(神武天皇)가 일본을 통치하기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왕조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재 일왕(덴노)인 나루히토 일왕은 무려 126대 일왕입니다. 이걸 일본인들은 소위 '만세일계(世系)'라고 불러요. 한 번도 일왕의 혈통이 끊어지..

역사 2021.08.29

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1929년이 되자 미국에서는 세계 대공황 (Great Depression)이 터졌습니다. 대공황은 한마디로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주식들이 일순간에 전문 용어로 '휴지'가 되어버린 일입니다. 미국 경제가 한순간에 무너진 사건이죠. 발생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지만 지금은 2차 대전을 다루고 있으니 유럽 상황에 맞춰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일단 총도 사야 하고 대포도 사야 하고 병사들 먹을거리도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급전이 필요하니까 당시 신흥 대국이었던 미국을 통해 끌어다 썼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각종 물자도 일단 외상으로 빌려다 썼지요. 미국도 일단 외상이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물건을 왕창 사 가니까 장사가 잘되는가 보다 하고 신..

역사 2021.08.28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 1차 대전이 터질 수밖에 없었던 그 배경부터 보도록 하지요. 자,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암살당한 1914년으로부터 약 100년 전의 독일로 날아가 봅시다. 1815년 독일 영토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이 하나의 통일된 나라가 아니네요? 당시 독일은 크고 작은 38개의 국가가 느슨한 연합체로 구성되어 있던 상황이었어요.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나중에 독일 통일을 이끄는 프로이센도 있고, 오스트리아도 있네요. 오스트리아도 독일어를 쓰냐고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룩셈부르크, 바이에른, 작센 등등 근방에 독일어를 쓰던 동네들은 다 들어갑니다. 그 연합체를 '독일 연방(Deutsche Bund)'이라고 불렀어요. 말이 연방이지 주변에 독일어 쓰는 나라 다 모여서 우리끼리 ..

역사 2021.08.28

병산서원에서 류성룡으로부터

병산서원에서 류성룡으로부터 서원은 존현양현(尊賢養賢), 즉 훌륭한 선현을 기리고 올바른 유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사립 교육기관입니다. 선현의 위패를 모시는 일을 배향(配享)이라고 하는데, 서원은 그 배향 인물이 살았거나 공부했던 연고지 근처의 조용하고 경치 좋은 장소에 세웁니다. 그래서 서원을 방문하는 것은 누군가의 고귀한 삶과 정신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풍경과 건축을 감상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의 하나로 손꼽히는 안동 병산서원으로 떠나 서원의 구조와 의미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국정총책임자로 행정과 외교 및 군사를 총괄하며 국난 극복을 지휘했던 류성룡 선생을 만나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1543년에 세워진 백운동서원입..

역사 2021.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