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송담(松潭) 2023. 12. 4. 20:34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들은 왜 싸울 수밖에 없는가

 

 

유대교 숙원의 땅, 이스라엘

 

유대인이 세운 이스라엘은 영욕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약 4,000년 전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 땅을 물려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나안은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입니다. 하지만 가나안에 엄청난 기근이 닥치자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과 그의 열두 아들을 비롯한 가족은 나일강 하류인 이집트 땅에 이주해서 크게 번성했습니다. 처음엔 환영하던 이집트인은 유대인을 노예로 삼아 박해하기 시작했고 이를 피해 모세의 인도하에 유대인은 이집트를 탈출해 다시 가나안으로 넘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영토를 확장해 기원전 1000년경에는 예루살렘에 성전을 구축하는 등 최고의 전성시대를 누렸지만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은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이후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등의 침략을 받았다가 이스라엘 땅을 되찾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기원 전 63년경 로마에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정권에 반대한 유대인은 수차례 저항에 나섰지만 로마는 무자비하게 응징했습니다. 수십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고 예루살렘과 성전은 철저히 파괴됐으며, 살아남은 유대인은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들이 그 유명한 '디아스포라'입니다. 유대인은 전 세계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이방인이 됐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약 2,000년간 지도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유대인은 전 세계 각국에서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약속의 땅'에 돌아가겠는 집념 하나로 버티며 살아왔습니다.

 

영국의 이중 약속, 중동 분쟁의 씨앗

 

유대인이 쫓겨난 사이 이스라엘의 옛 땅인 가나안에는 중동인이 차지하게 됐습니다. 이들을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릅니다. 19세기에는 이들 지역을 오스만튀르크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과 영국은 전쟁을 치르게 됐고, 영국은 지원국 확보를 위해 이중약속을 하게 됩니다.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이었던 맥마흔은 1915년 아랍인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기로 약속하는 선언을 합니다. 이른바 '맥마흔 선언'인데 아랍 세력이 오스만제국과 전투를 치러 준다면 통일아랍 영토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랍영토가 오스만제국의 영토 즉, 이스라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후 영국 외교장관인 아서 벨푸어는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인의 국가 수립을 약속하는 외교선언을 했습니다. 이 선언 역시 유대인이 영국의 전쟁 수행을 지원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1차 대전이 끝나자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은 영국이 지배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 이주를 도운 유대인 가문이 한때 글로벌 금융가를 장악했던 로스차일드가문입니다.

 

하지만 영국은 팔레스타인에도 이스라엘 땅을 약속했습니다. 결국 팔레스타인과 유대인간 갈등만 격렬해졌고, 영국은 대안을 제시했지만 제대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영국은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통치를 포기하면서 철수하고 말았고, 팔레스타인 문제의 관리는 유엔으로 넘어갔습니다. 유엔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영토를 분할 관리할 것을 제안합니다.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 전역의56%를 분할하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유엔이 특별 관리합니다. 그 당시 인구로 따지면 유대인은 아랍인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았고, 전체 면적의 소유 비율도 7% 미만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팔레스타인은 극렬 반대했지만 유대인은 이 결의안을 근거로 1948년 5월 14일 자신들의 나라인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습니다.

 

하나의 땅에 종교와 핏줄이 다른 2개의 민족이 같이 살게 됐으니 이는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공존 이후 지금까지 총 5차례의 전쟁을 치렀습니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

 

이스라엘 동쪽 팔레스타인 지역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인류의 5대 종교 중 무려 3개 종교인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에서 성지로 삼는 곳입니다. 우리가 통상 구약성서라고 부르는 유대교의 경전인 히브리 성서가 세 종교의 근본입니다. 세 종교의 조상도 모두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신 '야훼'를 창조주 유일신으로 믿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를 '여호와'라고 부르고, 이슬람에서는 '알라'라고 부르는 등 명칭만 다릅니다. 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친 제단이 있는 곳이 예루살렘의 모리아산입니다.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랜드마크입니다.

 

유대교의 왕 솔로몬이 그 자리에 예루살렘 성전을 세웠습니다. 기원전 957년의 일입니다. 유대 왕국의 멸망과 함께 파괴되었다가 헤롯 왕조가 재건했고 다시 로마 군대가 무너뜨리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성전의 일부 벽채가 그 유명한 '통곡의 벽'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친 제단은 큰 바위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슬람교에서는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서기 622년 이 바위에서 승천한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위에 황금사원을 만들었고, 그 맞은편에는 알아크사 사원을 세웠습니다. 하마스는 이번 전쟁의 시작이 된 기습 공격의 작전 이름을 ‘알아크사의 홍수’라고 붙였습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모두 예루살렘 특히 동예루살렘의 올드시티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성지입니다.

 

지금은 이슬람의 황금사원이 멋진 자태를 자랑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유대인은 황금사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시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성전을 세울 자금도 다 준비돼 있다고 합니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유엔도 1980년 예루살렘에서 회원국 외교관을 철수시키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예루살렘을 ‘그 누구의 땅’도 아닌 것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이는 반대로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한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갈등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글/매일경제신문 임상균 주간국장

출처 :공무원연금2023.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