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라도 하와이

송담(松潭) 2023. 12. 21. 11:18

전라도 하와이
 

 
“저어……, 이런 말 여쭤봐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저어………… 그러니까 그게…………” 황연주는 말하기를 머뭇거리며 남편에게 눈길을 돌렸고, “무슨 얘긴데 그래? 무슨 문제든 여쭤봐. 한 선배님은 모르는 게 없으시다니까." 이태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네에, 다른 게 아니구요, 그러니까 오래전부터 알고 싶었던 것인데, 전라도 사람에게는 물을 수가 없고, 딴 사람들한테 물으면 잘 모른다고 하는 건데요, 한 선생님이니까 안심하고 여쭤볼게요. 그게 다른 게 아니구요, 왜 전라도 사람들보고 '하와이, 하와이' 하면서 불신하고 나쁘게 생각하는지요.”
 
황연주가 한지섭의 눈치를 보아가며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하하하…….” 한지섭이 고개까지 뒤로 젖히며 흔쾌하게 웃어대고는, “그 별명에도 아주 심각한 역사성과 시대상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뿌리를 찾아가자면 저 식민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제일 먼저 시작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승만이었습니다. 그는 외교력을 발휘해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는 외교독립론을 내세우며 미국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고위 관리들을 단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그가 전혀 모르고 있는 중대 밀약(密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가쓰라. 태프트 조약'인데, 그건 일본 수상 가쓰라와 미국 육군 장관이 꿍꿍이 수작을 부린 건데, 좀 야하지만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 미국은 필리핀을 먹을 테니, 너희 일본은 조선을 먹어라'하는 비밀 약속이었습니다. 이런 흉계를 꾸민 미국의 관리들이 자기네 속셈과는 정반대의 요구를 하는 개인 이승만을 거들떠볼 리가 있었겠습니까.
 
지친 이승만은 미 본토를 떠나 하와이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상인들에게 속아 하와이로 팔려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10년 넘게 사탕수수 농장에서 채찍을 맞는 노예노동을 1년이면 365일 동안 하면서 생활 기반을 잡아놓았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이 동포들을 찾아간 것은 허황된 구호일 뿐인 외교독립론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해 지지기반이 확실한 동포들로 물적 토대를 갖추고자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이승만을 뒤따라 하와이에 나타난 새로운 인물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가 박용만이었습니다. 그는 이승만처럼 관립 유학생으로 미국에 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사학교까지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승만과 반대로 무장투쟁론자였고, 하와이에 오자마자 군사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의지할 데 없이 눌려만 살아온 동포들은 뜨겁게 호응했고, 그들은 낮에는 농장에서 팥죽땀을 흘리며 일하고, 밤에는 목총이나마 메고 열심히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되자 이승만과 박용만 사이에는 반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승만이 가는 곳에서는 반드시 반목과 분열이 일어난다'는 말을 입증한 셈이었습니다. 박용만에게로 쏠리는 동포들의 인기가 화근이었던 것이죠. 서로 갈등하는 가운데 박용만은 더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해방이 되어 이승만은 귀국했습니다. 그런데 뒤따라 제2의 박용만이 중국에서 귀국했습니다. 그 거물의 독립운동가가 누구일까요?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였습니다. 이승만과 김구는 만나자마자 바로 반목이 시작됐습니다. 이승만은 미국의 힘을 업은 사람이었고, 한반도 38선 이남을 장악한 미군정은 중국에서 독립투쟁한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 요인들도 임시정부 직책을 버리고 ‘개인자격’으로 입국하라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그 임시정부 전면 부정은 자기네 뜻에 맞는 정부를 세우겠다는 미국의 노골적인 선언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승만과 김구의 운명적 정치 숙적 관계의 표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노선의 정치활동을 전개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었고, 김구는 그에 맞서 단독정부 수립은 일제시대보다 못한 민족의 분단을 획책하는 것이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대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김구는 전국 순회강연에 나섰습니다. 그 강연회는 가는 도시마다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기 절정의 장관이 저 보성군의 벌교에서 벌어졌습니다. 광주에서 강연을 마친 김구는 열차 편으로 순천에 가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천을 향해 달리던 열차는 벌교역에서 막혀 더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군중 수천 명이 모여 벌교역 철로 전체를 채우고 기차를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강연을 하지 않고는 그냥 못 지나간다. 동학 때 백범 선생은 여기 보성에서 피신을 하신 깊은 인연도 있는데 어찌 그냥 간단 말이냐. 이 말을 전해 들은 김구는 흔쾌히 열차에서 내려 민족 분단의 비극이 민족사에 얼마나 큰 상처와 불행을 남기게 될지 열렬하게 강연했고, 강연만큼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순천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런 열기 높은 강연 상황이 이승만 쪽에서 파견한 정보원들에 의해서 일일 보고되었을 것은 너무 뻔한 일이지요. 그때 이승만의 감정이 어땠을까요? 김구가 박용만보다 더 미웠겠지요. 그리고 박용만을 좋아한 하와이 동포들보다 김구에게 열렬히 호응한 전라도 사람들이 더 미웠겠지요. 그래서 이승만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 '전라도 하와이'였던 것입니다.
 
하와이 동포들처럼 꼴 보기 싫은 것이 전라도 것들이라는 뜻이죠. 그때부터 아첨배들에 의해 전라도 사람들을 '하와이'라는 별명으로 불러대며 '인간성이 나쁘다, 배신을 잘한다, 거짓말을 잘한다, 의리가 없다' 등등 온갖 나쁜 누명은 다 씌워가며 이승만 독재 12년 동안 여론조작을 계속해왔습니다. 그리고 뒤따라 이어진 박정희 독재 18년 동안 경상도 최우선의 지방 차별을 자행하면서 '하와이' 매도를 확대재생산해서 전라도는 모든 국민이 무조건 경원하고 경계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전두환 때 ‘광주 사태'를 하필 전라도 땅 광주에서 일으킨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만 재미없는 얘기 끝내겠습니다."
 
조정래 / ‘황금종이2’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