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당나라와 측천무후, 양귀비

송담(松潭) 2024. 1. 7. 10:04

당나라와 측천무후, 양귀비

 

 

수나라는 결국 멸망하고 그 대신 당나라(618~907년)가 등장하게 됩니다. 당나라를 건국한 이연, 즉 당고조(재위: 626~635년)도 관롱집단이었습니다. 참고로 이연은 노자의 후손을 자처하며 자기가 황제가 되는 걸 정당화했다고 합니다. 당나라는 건국 직후 다소 정세가 불안정했습니다. 앞서 수나라 때 터져 나왔던 수많은 반란들을 이제 당나라가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죠. 당나라 조정은 반란을 일으킨 군벌들을 차례차례 진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이연의 아들 이세민, 즉 당태종太宗(재위: 626년~649년)이죠. 이세민은 형과 동생을 살해하고,자신의 아버지까지 쫓아내 황제가 되는 패륜을 저지른 것으로 유명합니다. 패륜 행위로 정권을 잡았다 보니 이세민은 처음엔 근면성실하고 근검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민심을 얻으려 노력했고, 신하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려고 했죠.

 

이세민 치하의 당나라를 당나라 최고 전성기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약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입니다. 이세민 시기에 당나라가 통제할 수 있는 인구는 수나라 때 인구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수나라 때 반란을 일으킨 군벌들이 지방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죠. 또한 이세민 자신도 나중에 가서는 집권 초기와 달리 독선적이고 사치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게다가 수나라와 마찬가지로 무리하게 고구려로 쳐들어가서 민생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죠.

 

이세민은 고구려 정벌에 실패했지만 이세민의 아들이었던 당 고종(649년~683년)이 신라와 손을 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물론 당시 고구려는 연개소문 사망 후 연개소문의 아들끼리 싸우다가 한 명이 당나라에 항복하는 바람에 손쉽게 무너진 것이긴 하죠. 당고종은 신라도 정복하려고 했으나 서쪽에서 토번(지금의 티베트)이 침입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물러납니다. 이때부터 당나라는 한동안 토번, 돌궐, 거란 등의 침입으로 고생합니다.

 

당나라는 주변국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외부적으로도 시끄러웠지만, 내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측천무후(則天武后)측(624년~705년)가 등장했기 때문이죠. 측천무후는 원래 이세민의 후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세민이 사망한 뒤에는 이세민의 아들, 그러니까 죽은 남편의 의붓아들인 당고종의 후궁이 됩니다. 이건 측천무후가 보여준 막장행보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당고종의 총애를 받은 측천무후는 황후를 제거한 후 자기가 황후가 됩니다. 원래 있던 황태자도 없애버리고 자신의 아들을 황태자로 올렸죠.

 

전남편의 아들이자 현남편인 당고종이 죽은 뒤에는 더욱 노골적으로 정치적 야욕을 드러냅니다. 측천무후는 먼저 자기 아들을 황제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자신의 말을 안 들으니 다른 아들로 황제를 바꿨다가, 그조차도 마음에 안 들으니 결국 자기가 직접 황제가되어 주나라(690년~705년)를 건국합니다. 보통 무주(武周)라고 부르죠. 이로써 측천무후는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자 황제가 됩니다. 황제가 된 측천무후는 미륵불이 여자 황제로 출현한다는 얘기를 퍼트리는 등 불교를 이용해 자신이 황제가 되는 걸 정당화하기도 했죠. 하지만 705년 쿠데타가 일어나 측천무후는 결국 권좌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그 대신 앞서 측천무후가 갈아치웠던 그녀의 아들들이 다시 차례대로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죠.

 

측천무후가 실각된 이후로도 당나라 황실의 상태는 한동안 불안정했습니다. 측천무후의 친딸과 며느리가 당나라의 권력을 장악하고, 둘의 권력쟁탈전이 이어졌기 때문이죠. 7년 후, 당현종(재위:712년~762년)이 즉위하고서야 황제의 권력이 안정되기 시작합니다. 현종의 시기를 당나라 제2의 전성기로 부르기도 할 정도죠. 분명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러나 총애하던 후궁이 죽는 일이 벌어진 뒤로는 현종도 멘탈이 나가버려 정치를 소홀히 하게 됩니다. 심지어 태자의 아내, 즉 며느리한테 반해서 자신의 후궁으로 들이고 주색에 취해 살아가게 되죠. 저 며느리가 바로 중국 역사상 최고 미녀 중 한 명으로 유명한 양귀비 (719년~756년) 입니다. 현종은 양귀비에게 정신이 팔려 국정운영은 이임보(683년~752년)라는 신하에게 모두 맡겨버리죠.

 

국정을 운영하던 이임보가 사망하자 본격적으로 혼란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양귀비의 친척들이 권력을 장악해버린 거죠. 양귀비가 현종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두려울 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 전도사 안녹산(703년~757년)이 난을 일으킵니다. 이른바 안사의 난(755년)이 시작된 거죠. 여기서 전도사는 지방 사령관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안사의 난도 결국 권력자들의 추악한 다툼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거죠.

 

효기심 / ‘권력으로 읽는 세계사 한중일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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