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러시아와 조선의 밀월관계

송담(松潭) 2022. 9. 9. 15:00

러시아와 조선의 밀월관계

 

 

혁명군에 의해 자기들의 뿌리인 전주성까지 점령을 당하자 당시 고종과 그의 부인 명성황후는 정말 내리지 말아야 할 결정을 내립니다. '외국 군대를 좀 빌려 와서 이 사태를 진압하자'라는 최악의 결정을 말이죠. 결국 조선은 청나라에 원군을 요청해요. 청나라는 자기들의 '신하 국가인 조선에서 난리가 났다고 하니 당연히 조선에 군대를 지원합니다. 그런데 그런 청나라의 움직임을 가만히 보던 일본도 갑자기 조선에 군대를 파병하는 겁니다. 무슨 명분으로요? 당시 일본과 청나라 사이에 한 조약이 있었어요. '조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양국 중 한 나라가 조선에 파병을 하면 다른 나라도 같은 수의 군대를 조선에 파병한다'라는 내용이요. 우리 입장에서는 진짜 말도 안 되는, 톈진 조약입니다.

 

하여간, 조선의 섣부른 결정으로 갑자기 조선에는 청일 양국 외세의 군대가 몰려듭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농민군은 점령하고 있던 전주성에서 과감히 철수합니다. 자신들의 혁명도 중요하지만 자신들 때문에 지금 다른 나라의 군대들이 조선 땅에 들어와 설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농민군이 해산하자 청나라군은 철군하려고 합니다. 자신들이 조선에 들어왔던 명분이었던 농민군의 농민 반란이 끝났으니까요.

 

반면, 일본은 철군을 거부합니다. 아직 농민군이 완전히 소탕되지 않았다는 핑계로요. 그러면서 고종 임금을 협박합니다. '지금까지 조선이 청나라와 맺었던 모든 조약을 다 폐기하라. 그리고 조선은 청나라의 제후국(신하 국가)가 아닌 독립국인 것을 증명하라'라고 협박을 합니다. 정말 웃기는 짬뽕 같은 일이지요. 그걸 조선이 왜 일본한테 증명을 해야 합니까?

 

일본의 의도는 명백했어요. 동학농민혁명을 핑계로 조선에 파병하고 조선 왕을 협박해서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를 끊고 조선을 일본의 영향권에 두겠다는 목표가 있었답니다. 경복궁까지 쳐들어온 일본군의 겁박에 고종은 결국 조선과 청이 맺은 모든 조약을 무효로 한다는 내용의 서류에 도장을 찍고 맙니다. 그 서류를 손에 넣은 일본은 '이제 공식 문서도 손에 넣었으니 청나라를 확실히 조선에서 몰아내자'라고 생각하고 바로 실행에 옮깁니다. 충청도 풍도(지금의 경기도 안산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던 청나라 해군 군함에 일본이 선전포고도 없이 함포 사격을 시작해요. 바로 청일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청일전쟁은 일본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습니다. 청나라가 일본에 패배하고 조선의 지배권이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실질적으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됩니다. 청나라는 전쟁에서 지고 일본에 많은 것을 배상합니다. 먼저 대만을 일본에 넘깁니다. 예, 맞습니다. 청일전쟁 이후에 대만은 1894년부터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는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가 됩니다. 꽤 오랜 기간이지요. 그래서 타이완, 특히 수도인 타이베이에 가면 여기가 일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본 문화가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청나라는 랴오둥반도(요동반도)도 일본에게 넘깁니다. 그 넓은 만주 벌판을 일본에게 넘긴 겁니다. 얼마나 피눈물이 났을까요.

 

그런데 이런 상황을 가만히 주시하던 나라가 있었어요. 바로 러시아였습니다. 왜냐하면 러시아도 이 랴오둥반도에 관심이 참 많았거든요. 앞에서 언급했듯이 러시아는 바다로 나갈 길을 찾기 위해 사활을 걸었는데, 태평양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 랴오둥반도를 포함한 만주 지역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랴오둥반도를 일본이 꿀꺽해 버린 거지요. 러시아로서는 절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어요.

 

그런데 러시아도 알았어요. 일본이 힘들게 전쟁을 치러서 차지한 영토를 뜬금없이 토해 내라고 요구하는 건 정말 황당한 일이란 것을요. 그래서 러시아는 힘 좀 쓰는 독일과 프랑스까지 이 협박에 가담시킵니다. '이번에 우리 러시아 좀 도와주면 청나라한테서 떡고물좀 하나씩 얻어 줄게'라고 설득한 것이죠. 러시아, 독일 그리고 프랑스까지. 이렇게 세 나라가 동시에 일본을 압박합니다. '야! 좋은 말할 때 랴오둥반도를 청나라한테 돌려줘!'라고요.

 

러시아 한 나라와의 전쟁도 부담스러운데 유럽의 강호 3개국이동시에 겁박을 하니 일본도 어쩔 수 없었어요. 피눈물을 흘리며 랴오둥반도를 청나라에게 돌려줍니다. 물론 이후에 랴오둥반도의 실질적인 관할은 러시아에게 넘어갔지만요. 그럼 독일과 프랑스는 무슨 떡고물을 얻었냐고요? 프랑스는 지금의 홍콩 주변 지역을 청나라로부터 받습니다. 독일은 지금의 산동반도 칭다오 지역을 차지합니다. 맞아요. 칭다오 지역을 차지한 독일인들이 자기들 마시려고 맥주공장을 그곳에 지었는데, 그것이 우리가 지금 마시는 칭다오 맥주의시작이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아시아 최강 청나라를 박살 낸 일본도 러시아 앞에선 맥을 못 추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한 여인이 있었어요. 바로조선의 고종의 아내 명성황후였습니다. 명성황후는 당시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어요. 명성황후는 고종에게 이런 말을 해요. '지금 이 동네 최강은 러시아 맞지요? 우리 조선과 우리 왕실, 그리고 우리 민씨 가문이 살기 위해선 러시아에 붙어야 해요'라고요. 명성황후의 의견에 고종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고종은 실제로 러시아에 적극적인 외교 공세를 펼칩니다. 조선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아달라고요. 러시아도 나쁠 것이 없었어요. 랴오둥반도에 이어조선도 자발적으로 러시아 쪽으로 온다고 하니까요.

 

반면 일본은 조선과 러시아의 밀월 관계에 격분합니다. '이놈의 러시아! 우리 일본으로부터 랴오둥반도를 강제로 빼앗아 가더니 이제는 조선까지 꿀꺽 차지하려고? 가만둘 수 없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 다음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을 말이지요. 그리고 금방 파악합니다. 이 모든 건 명성황후 때문에 일어났고, 명성황후를 가만 놔두면 정말로 조선이 러시아에게 넘어가겠다고 분석한 거죠.

 

그래서 러시아에게 랴오둥반도를 빼앗긴 그 해 1895년, 일본은 바로 경복궁까지 쳐들어가 명성황후를 난도질해 죽여 버립니다. 바로 '1895년 을미년에 일어난 큰 일'이라고 해서 을미사변 乙未事變이라고 불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입니다. 여기서 '사변'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을 정도의 큰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둘째치더라도, 한 나라의 왕비를 난도질해서 죽인 일본을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그 다음은 앞에서 말씀드린 일들이랍니다. 부인이 궁에서 죽어버리자 목숨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나라였던 러시아의 외교 공관으로 도망가 버리고(아관파천) 새로 러시아의 황제 자리에 오른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민영환 등 사신들을 보내 제발 조선 좀 살려 달라고 매달리게 된 겁니다.

 

자, 바람 앞에 촛불 같았던 조선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이런 정국에서 중국 청나라에서 엄청난 사건 하나가 발생합니다.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5년 후인 1900년, 중국에서 '의화단 운동'이 발생한 겁니다. 어디서 많이 단어죠?

 

 

드디어 터진 러일전쟁

 

 

'의화단 운동' 이야기를 읽고 오셨나요? 의화단 운동은 1900년, 청나라 농민들이 '기독교를 몰아내자!'라고 외치며 백인 기독교 선교사들을 몰살 시킨 끔찍한 사건이었답니다. 청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다 백인 기독교 선교사들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이 운동이 과격해지다 보니 선교사뿐 아니라 백인으로 보이는 모든 이들이 학살의 대상이 되었어요. 뿐만 아리라 서양에서 수입한 모든 것을 다 부수고 파괴했답니다. 전깃줄도 끊고 성냥도 다 불태워 버렸어요. 서양에서 수입해 온 물건이란 이유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의화단이 또 뭘 했냐면 러시아가 한창 건설을 하던 만주의 철도도 다 끊어 버렸어요. 러시아인들도 백인이니까요.

러시아의 반응은? 당연히 격분했지요. 그리고 만주의 러시아 철도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파병해요. 그리고 군대를 만주에 보낸 김에 만주를 아예 점령해 버립니다.

 

이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던 일본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일본이 랴오둥반도를 청나라로부터 차지했는데, 러시아가 압력을 넣어서 피눈물을 흘리며 다시 토해냈다고 설명했지요? 그 피 같은 만주를 러시아가 철도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날로 차지했으니 일본으로선 화가 날 만도 하지요. 참, 러시아는 누구한테 허락을 받아서 만주에 철도를 건설하고 있었냐고요? 러시아가 일본을 협박해 랴오둥반도를 다시 청나라에게 돌려준 대가로, 러시아가 청나라로부터 만주 철도 건설권을 얻었답니다.

 

일본 말고도 이런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두 나라가 더 있었어요. 바로 영국과 미국이었습니다. 영국과 미국도 러시아의 만주 진출을 막으려 했습니다. 왜? 영국은 이미 두 차례의 아편전쟁으로 청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고 청나라를 거의 '반식민지'로 만든 상태였거든요. 때문에 또 다른 경쟁자인 러시아가 방해하는 걸 당연히 싫어했지요.

 

미국도 마찬가지였어요. 미국도 1853년, 일본을 강제 개항시킨 후 아시아에 슬슬 세력을 넓혀 가던 상황이었는데 러시아가 끼어드니 신경이 쓰이지요. 영국과 미국은 러시아를 일차적으로 막을 나라는 일본이라고 생각하고 일본을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영국은 1902년에 '영일동맹Anglo-Japanese Alliance'을 맺고 일본과 같이 러시아가 만주에서 세력을 넓히는 것을 공동으로 저지하기로 해요. 미국은 일본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합니다. 그 돈으로 군대를 키워서 러시아를 막아 달라는 뜻이었지요.

 

일본은 영국과 미국의 도움을 기회로 삼아 러시아와의 전쟁을 고민합니다. 일본도 물론 러시아를 치고 싶었지만, 러시아는 유럽 열강 중 하나였기에 일본도 섣불리 전쟁을 벌일 순 없었어요. 러시아를 칠까 말까 고민하던 일본은 결국 결단을 내립니다. 만주와 한반도를 놓고 러시아와 붙을 운명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러시아를 치기로 말이죠. 한창 만주에 건설되고 있는 러시아 철도가 완성되면, 그때는 정말 러시아를 이기기 힘들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에요.

 

일본의 수상한 움직임을 러시아도 이미 알고 있었어요. 영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또 미국은 일본에 군수 자금까지 지원해 주고 있던 걸 러시아가 왜 몰랐겠습니까? 당연히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것도 다 파악했어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이런 세계정세를 역으로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러시아 국내에서 날뛰는 혁명가들을 징집해 전쟁터로 보내 버릴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러시아는 일본을 아주 만만하게 봤습니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당연히 승리하리라 생각했지요. 그러니 전쟁의 승리를 가정하고, 만주를 넘어 일본까지 집어삼킬 계획까지 세웠던 것이지요. 그러면 골치 아픈 혁명가들을 깡그리 다 없애고 식민지까지 넓히고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이렇게 일본과 러시아 둘 다 '전쟁이다'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었어요. 곧 전쟁의 서막이 오릅니다. 1904년 2월 8일 늦은 밤, 청나라 랴오둥반도 뤼순항(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 뤼순 감옥이 있는 그 뤼순). 당시 뤼순항은 러시아가 점령하고 러시아 군항으로 만들어 놓은 상태였답니다. 그날 밤, 일본은 선전포고도 없이 곤히 자고 있던 러시아 해군들을 향해 일제히 함포 사격을 시작합니다. 러일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자다가 봉변을 당한 러시아 해군들을 허둥지둥 군함을 몰고 나가 보려 했지만 일본군이 미리 바다 곳곳에 설치한 기뢰(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폭탄)에 모조리 수장되고 맙니다. 일본의 전략은 '빠르게 만주의 러시아군을 박살내자'였습니다. 저 멀리 모스크바 등에 있는 러시아의 주력 부대가 만주에 도착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야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말이 모스크바에서 만주지,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를 타도 적어도 일주일은걸리는 거리였답니다.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러일전쟁. 초반 일본의 무시무시하누공세에 만주지역의 러시아군은 점점 밀리기 시작했어요. 계속되는 패전에 러시아는 비장의 카드를 커냅니다. 바로 당시 세계 최강의 함대였던 '러시아 발트 함대'를 일본 앞바다에 보내 일본 본토를 박살내 버리려고 한 겁니다. 문제는 북유럽 발트해에 있는 그 함대들을 빨리 일본 앞바다까지 보내야 했다는 거예요. 북극을 돌아서요? 가다가 다 얼어 죽지요. 결국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어요.

 

발트해를 출발해서 대서양을 따라 아프리카 희망봉까지 가서 인도양을 지나, 동남아 앞바다를 거쳐 필리핀에서 잠깐 목 좀 축이고 일본 앞바다까지 오는 겁니다. 배 타고 지구 반바퀴 도는 것이죠. 실제로 그 코스로 발트 함대가 출발을 했어요. 그런데 아까 일본과 영국이 동맹이 되었다고 말씀드렸죠?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 등등의 영국 식민지들에서 노골적으로 러시아 발트 함대의 입항을 거부하고 식량과 물 보급도 하지 않았답니다. 겨우 8개월 만에 대마도 앞바다에 도착한 러시아 발트 함대는 세계 최강의 함대는 무슨, 그야말로 '좀비 상태의 파김치'였어요.

 

엔진을 돌릴 땔감이 없어 군함 안의 나무로 된 가구까지 다 연료로 태워 버린 38척의 전투함 그리고 1만 4천 명의 지칠 대로 지친 러시아 발트 함대 수병들은 1905년 5월 27일, 대마도 앞바다에서 아주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던 일본 해군을 만납니다. 대마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양국 해군 간의 일전.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죠. 일본 해군의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8개월 간 지구 반바퀴를 돌고 온 러시가 발트 함대는 동해 바다에 거의 대부분 수장되고 맙니다.

 

대마도 앞바다에서 세계 최강의 발트 함대가 박살이 나면서 실질적으로 전쟁은 끝이 납니다. 러시아가 진 겁니다. 당시 러시아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고 해요. 독일이나 프랑스 등 다른 유럽 열강 국가도 아닌, 아시아 변방의 작은 섬나라였던 일본에 완패한 것이니까요. 이렇게 러시아의 패배로 끝나가던 전쟁에 미국이 끼어 들어와 중재합니다. ‘두 나라 그만 싸우고 이제 화해해'라고요. 미국은1905년 9월, 러시아와 일본의 대표를 미국 포츠머스로 불러 전쟁 마무리 조약에 서명을 시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포츠머스 조약'입니다.

 

이 포츠머스 조약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면 바로 이 조약 이후에 한반도가 사실상 일본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조약 내용을 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첫째, 러시아는 앞으로 대한제국에서 손 떼고 대한제국을 일본에 넘긴다. 둘째, 만주 지역의 철도도 일본에 넘긴다. 사실 이 포츠머스조약을 맺기 몇 달 전에 일본과 미국은 밀약(비밀 협약)을 하나 맺습니다.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대신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한다'라는 말도 안 되는 협약을요. 당시 미국의 육군 장관이었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총리였던 가쓰라 다로가 협약에 서명했다고 해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라고 불린답니다. 러일전쟁에서일본이 이길 것 같으니 미국이 적극적으로 일본 편을 들어준 겁니다.

 

이렇게 일본과 미국이 몰래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고, 전쟁에서러시아가 졌으니 확실하게 한반도에서 손 떼라는 의미로 포츠머스조약을 맺은 겁니다. 포츠머스조약 이후 한반도의 지배권을 가져온 일본은 너무도 당당하게 대한제국에 들어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아 갑니다. 그것이 그 가슴 아픈 1905년의 '을사늑약'입니다.을사년에 이뤄진 늑약'이라는 의미인데, '늑약'은 강제로 맺어진조약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 후 1910년, 우리는 나라를 일본에 완전히 빼앗겨 버립니다.

 

썬킴 / ‘세계사 완전정복’중에서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성로마제국  (0) 2022.11.18
정지아 /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 출판)중에서  (1) 2022.09.25
미국 독립과 프랑스  (0) 2022.08.22
흙수저 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  (0) 2021.11.12
하멜 14년, 애덤스 20년  (0) 2021.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