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미국 독립과 프랑스

송담(松潭) 2022. 8. 2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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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과 프랑스

 

 

1776년 7얼 4일, 필라델피아에 신대륙의 13개 식민지 대표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미국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그런데 영국은 세계 최강 영국 전함 130척, 정예군 3만 명을 신대륙으로 급파합니다. 당시 미 대륙군(13개 식민지군)은 총 1만 5000명 정도로 영국군의 딱 절반 정도의 규모였어요.

 

영국 정예군이 도착하자마자 대륙군은 연전연패를 당합니다.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도 어쩔 수 없이 계속 후퇴를 거듭해요. 그 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갑자기 프랑스가 영국을 향해 선전포고릏 하고 대륙군 편에 선 것이죠. 프랑스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캐나다 퀘백을 영국에게 빼앗겼잖아요. 이제 그 복수의 시간이 온 거죠.

 

나중에 이야기이지만 결과적으로 프랑스가 미국 독립에 엄청난 도움을 주었잖아요. 그래서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나중에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것이 지금 뉴욕 앞바다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랍니다. 프랑스가 미국에 준 선물이에요.

 

영국과 전쟁은 무려 7년간 계속됩니다. 결국 프랑스의 중재로 신생 미국과 영국이 파리에서 조약을 맺습니다.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조건없이 수용하고, 남북으로는 캐나다 국경부터 플로리다와의 경계선까지, 동서로는 대서영 연안에서 서쪽 미시시피강에 이르는 지역을 미국의 영토로 인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1783년 영국과 미국 간에 체결한 파리조약입니다. 미합중국이 정식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한 순간이기도 했지요.

 

* 위 글 제목 ‘미국 독립과 프랑스’는 독자가 임의로 정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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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럴 홀 & 워싱턴 D.C & 백악관

 

 

 

미국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선거인단의 만장일치로 대통령이 된 조지 워싱턴은 1789년 4월 30일, 뉴욕 맨해튼에서 최초로 미국 대통령 선서를 합니다. 당시 미국의 수도는 뉴욕 맨허튼이었어요. 지금도 뉴욕 맨해튼에 가면 페더럴 홀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미국 초대 의회 건물인데 조지 워싱턴이 첫 대통령 선서를 한 역사적 건물입니다.

 

새정부는 남부와 북부 중간 지점에 새롭게 수도를 세우기로 하고, 중간지점에 어떤 주에도 속하지 않는 자치도시를 만들기로 했어요. 1790년 새 수도 건설을 시작하고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해 워싱턴이란 이름을 일단 붙이고 그 뒤에 D.C 란 타이틀을 하나 더 추가 합니다. 여기서 D.C는 District of Columbia의 준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콜롬비아 특별구’라는 뜻입니다. 콜롬비아는 당시 유럽 대륙에서 미국을 부르는 도 하나의 별명이었답니다. 크리스토퍼 콜롬버스가 발견한 콜롬버스의 땅이란 뜻이지요. 결국 미국 수도 이름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미 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의 이름이 들어간 워싱턴 D.C로 정해집니다.

 

이제 새 대통령 집무실을 만들 차례가 되었어요. 나중에 백악관이 된 그 건물 말이죠. 조지 워싱턴이 부지를 정하고 아일랜드 출신 건축가 제임스 호번이 설계했습니다. 1792년에 착공해 1800년에 완공됩니다. 백악관에는 2대 대통령 존 에덤스가 처음 입주했습니다.

 

백악관은 1812년 영국이 미국을 다시 침공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불태워버렸는데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인들은 침공을 이지 말자는 각오로 불탄 건물에 흰색 페인트칠을 해서 쓰기로 해요. 그래서 흰색 건물이라는 뜻의 백악관이 된 것이랍니다.

 

 

 

* 위 글 제목 ‘페더럴 홀 & 워싱턴 D.C & 백악관’은 독자가 임의로 정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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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루이지애나 매입

 

수도도 새로 만들었겠다 신생 국가 미국은 슬슬 영토 확장에 관심을 가집니다. 대서양족은 어느 정도 정리한 상태의 미국의 눈에 들어온 것은 미시시피강 유역이었어요. 미시시피강 서쪽은 아직 프랑스가 루이지애나라고 부르며 자기 땅이라고 소유권을 주장하던 상황이었답니다. 프랑스 인디언 동맹 전쟁에서 당시 영국은 프랑스로부터 지금의 캐나다 지역만 빼앗고 중부지역의 거대한 땅어러리 프랑스령 루이지에나는 여전히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었어요. 이 시기의 루이지애나는 지금 미국의 루이지에나주와는 달라요. 지도에서 보듯 남북으로 흐르는 미시시피강 서쪽 거의 모든 어마무시한 크기의 영토지요. 당시 미국은 미시시피강 최대 도시는 하구의 뉴 오를레앙(뉴올리언스)을 차지해야 했어요.

 

 

미국 정부는 독립전쟁의 은인인 프랑에 뉴 오를레앙을 팔라고 설득하기도 합니다. 1803년 미국 은 협상단을 파리로 보냅니다. 당시 통치자 나폴레옹은 “어이, 미국 협상단 쩨쩨하게 그 뉴 오를레앙 하나 사는 것 보다 루이지애나 전체를 다 사는 게 어떻소?”라고 합니다. 그 당시 루이지애나는 거의 북미 대륙의 3분의 1정도로 중부 지역 땅 전체였답니다. 이 땅은 프랑스 본토에서 너무 멀어 관리가 힘들고, 거주민도 거의 없고, 농사하기도 힘든 허허벌판이었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를 힘들게 관리하는 것보다 돈을 받고 파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나폴레옹은 유럽 전 지역에서 정복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전쟁 자금도 필요한 상태였어요. 단돈 1500만 달러, 요즘 환율로 약 180억 원! 북미 대륙의 3분의 1을 180억 원에 1803년 4월 30일 서류에 도장을 찍습니다. 미국의 영토가 갑자기 두 배로 커집니다.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제 대서양 연안의 조그마한 나라가 아닌, 북아메리카 대륙 절반을 차지하는 땅 부자 나라로 거듭납니다.

 

썬킴 / ‘세계사 완전정복’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