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생이 익어가는 과정

송담(松潭) 2021. 7. 21. 05:16

인생이 익어가는 과정

 

 

사찰음식의 양념은 자연입니다. 맛을 내는 기본은 소금, 된장, 간장, 고추장입니다. 사찰음식 맛의 핵심은 바로 발효입니다. 장은 기본이죠. 저는 해마다 메주를 쑤고 발효시켜 간장과 된장을 만듭니다.

 

자연의 식물은 모두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콩이라는 자체가 하나의 종자 씨앗이에요. 먼저 콩을 푹 삶아요. 폭 삶은 콩을 본래 형태가 사라지도록 으깨고 한 달 반 동안 발효를 시킵니다. 발효가 끝나면 꺼내서 말렸다가 단지에 담습니다. 단지에 넣을 때 소금물에 담가놓으면 응집되어 있던 덩어리가 녹으면서 그 맛이 변화합니다. 발효된 검은 액체는 간장이 되고 가라앉는 덩어리는 된장이 됩니다. 자연 발효의 신비입니다.

 

단지에서 일 년쯤 지낸 된장은 생 냄새가 나요. 그래서 생된장이라고 부릅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자연에 의지해 발효가 진행됩니다. 발효는 일 년 내내 계속되는 게 아니에요. 6월 22일 하지부터 시작해서 초복, 중복, 말복을 거쳐 뜨거운 태양열과 장마를 지나는 한여름 동안에만 발효가 됩니다. 가을에 접어들면 발효가 멈춥니다. 하지만 어떤 발효제도 첨가하지 않고 가만히 둡니다. 맛이 흩어지면 안 되거든요. 발효는 자연이 하는 거지 인간이 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자연의 시간에 맡기고 바라보면 됩니다.

 

7월부터 한 달 반 동안에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열을 받아서 단지가 뜨끈뜨끈 달아오릅니다. 그랬다가 해가 지고 달이 뜨면 자연히 온도가 내려가죠. 그 시기에 보름이 세 번 지나는데 보름달이 뜨는 밤, 단지에 가만히 귀를 대고 있으면 안에서 보글보글하고 된장이 익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단지를 만져보면 부위마다 온도가 다릅니다. 주로 아래는 시원하고 위는 따뜻하죠. 해가 단지의 동쪽에서부터 돌아가서 서쪽에서 어그러집니다. 북쪽에서는 달빛이 보완해줍니다. 굳이 단지를 움직이거나 흔들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고르게 숙성이 되는 거죠.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행은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스스로 알아가고 스스로 익혀가고 스스로 체득하는 겁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시절 인연을 거쳐서 나의 생이 보글보글 익어가고 변화하다 어느덧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인간이나 된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스스로 익어가는 겁니다.

 

3년 된 장독을 열어보면, 표면에 하얗게 꽃가지가 피어서 한창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열심히 자기 모습을 찾아가는 중인 거죠. 맛이 계속 변화합니다. 반면, 7년 된 된장은 완전히 숙성되어 장맛이 깊게 든 상태입니다. 수행을 통해 본래 자신의 존재가 없어지고 평화로운 마음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상태와도 같죠. 나무와 풀 향기를 머금고 햇빛과 바람과 구름과 달빛을 한가득 품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친 자연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거죠. 그 액을 가지고 요리를 하면 음식에 에너지가 넘치고 약효가 생깁니다. 간장과 된장 맛에 의해 모든 음식이 재탄생하게 됩니다.

 

날마다 단지 속을 보면 '아. 나의 인생이 이 안에 들어 있구나. 이걸 제대로 못 보면 과연 내가 진실로 살아 있다고 할 수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들에서 산에서 나는 것들이 죽어 사람의 몸에서 살아갑니다. 들풀과 사람이 한 몸이 되니 결국 자연에는 생사의 경계가 사라집니다. 사찰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은 자연과 내가 본질적으로 하나가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들풀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가 내 몸의 유지 기한이 다하면 물질은 땅으로 가고 정신적인 에너지는 남아 새로운 생을 만나게 되겠죠.

 

정관 /

한국 사찰음식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철학자 셰프'. 백양사 천진암 주지로 있으면서, 특유의 철학이 담긴 채식 요리로 각광을 받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 시즌3>에 출연해 <타임스>, <가디언> 등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스타 셰프가 되었고, 사찰음식의 맛과 철학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있다.

 

 

 

<2 >

 

신비하고 환상적인 깨달음은 없다

 

 

훗날 제가 좌절한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해 보니,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이나 참선 수행을 잘못 이해하고 접근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선방 안에 틀어박혀서 좌선하고 용맹정진하고 오랜 시간 도를 닦으면 뭔가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믿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그런 깨달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서 꾸며낸 내용이라는 거죠. 깨달음에 자꾸 신비한 의미를 부여해서 아주 특별하고 대단한 무엇인 것처럼 여기도록 만든었던 거예요.

 

분명 깨달음은 있습니다. 하지만 환상적이고 신비하고 신오한 깨달음 같은 건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참선 수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깨달음에 대해 뭔가 마술 같은 신비한 체험일 거라는 편견이 있어요. 그런 느낌이 없으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죠. 그러나 사실 깨달음은 일상과 동떨어지고 신비로운 어떤 것이 아닙니다. '몰랐던 걸 알았다', '잃었던 걸 찾았다', '가려졌던 것이 벗겨졌다', '어두웠던 것이 밝아졌다' 등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번갯불이 번쩍하는 순간 방안을 직접 본 상태와 유사하죠. 나의 참모습, 이 세상의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고 확신하는 경험적 지혜가 바로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에 맞게 내 삶을 만들어가는 실천이 더욱 중요합니다.

 

도법 /

제주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 되던 해 출가했다. 1990년 선우도량을 만들어 청정불교운동을 이끌었고, 10년간 실상사 주지를 역임했다. 현재 실상사 회주로 있으면서,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운동을 통해 20년 넘게 귀농 운동, 대안 교육, 생명·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 3 >

 

지혜롭게 나이 드는 것

 

 

삶이 평화롭고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첫 번째가 만족감이에요. 만족감을 느끼면 평화롭고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만족감은 억지로 채우고 싶다고 해서 채워지지 않습니다. 자꾸 엉뚱한 걸로 채우려고 하면 욕심만 커져버리죠. 진짜 만족감은 인생을 제대로 알 때 자연스럽게 느끼게 돼요. 만족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죠.

 

그럼 대체 뭘 알아야 할까요? 나에게는 이미 재물과 명예, 권력보다 좋은 것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숨을 들이시고 내쉴 수 있는 능력을 높은 권력과 바꾸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먹고 마실 수 있는 능력을 천금 만금과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만족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귀중한 걸 이미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고 허황된 가짜 이야기에 속아서 자꾸 저 멀리만 쳐다보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진짜 인생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지금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능력을 길러가는 것이 잘 나이 드는, 진짜 어른이 되는 길입니다. / 도법

 

 

< 4 >

 

부처님의 식사법

 

 

부처님은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1250명의 제자와 함께 머물고 계셨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탁발할 시간이 되자 가사를 입은 뒤 발우를 들고 사위성 시내로 나가 한집 한집 다니며 먹을 것을 얻으셨다. 탁발을 마친 부처님께서는 사원으로 돌아와 공양을 하시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은 후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금강경」첫머리에는 부처님께서 식사했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사시맞이라 해서 하루 한 끼만 드셨습니다. 아침 6시에 해가 부뚜막에 떠오르면 온 대중이사제 순서대로 탁발을 나갑니다. 탁발을 나갈 때는 제일 어른부터 발우를 들고 나갑니다. 시주자가 마련해주는 음식이라면 식재료든 남은 음식이든 어떤 먹거리라도 가리지 않고 다 받습니다. 단, 일곱 집을 지나면 혹여 음식을 얻지 못했어도 탁발을 멈춰야 합니다. 그 이상 음식을 구하러 다니는 것은 욕심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를 칠가식(七家食)이라고 합니다.

 

아홉 시가 되면 모두 탁발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옵니다. 시주받은 음식을 혼자 먹는 게 아니라 전부 내어놓고 그날 탁발을 가지 못한 사람들과 평등하게 나눠서 먹습니다. 하루에 한끼, 오전 아홉 시에서 열한 시까지 공양을 했는데 그 시간이 바로 사시입니다. 그 때문에 절에서는 지금까지도 사시공양을 하고 음식을 먹는 시간을 지킵니다.

 

지금도 동남아시아의 불교 국가에 남아 있는 탁발은 수행자에게 하심(下心)하고 절제하며 인욕(忍辱)하는 삶을 몸으로 느끼고 터득하게 하는 수행의 한 방법입니다. 시주자에게는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공덕을 짓는 기회를 줍니다. 또한 부처님에게 탁발은 단순히 공양을 빌어오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의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절은 주로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해 탁발을 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그러다 보니 직접 밥을 지어 먹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는데, 절에서 사찰음식을 먹는 식사의례를 발우공양이라고 합니다. 사실 사찰에서는 식사의 전 과정이 곧 수행입니다. 일단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수행을 위해서죠. 수행을 하려면 몸을 움직일 에너지가 있어야 하니까요.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하고 그릇에 담고 그것을 먹고 치우고 씻는 모든 과정이 수행입니다.

 

음식을 만들 때는 먼저 식재료를 깨끗하고 자연스럽게 하고 이 식재료가 어떻게 자라서 여기까지 왔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유연한 조리법으로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을 충분히 꺼내어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음식을 만듭니다. 그런 음식은 내 몸 안에 들어왔을 때 조금도 몸을 해치지 않아서 편안함을 유지하고 맑은 생각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음식을 먹을 때는 내가 먹은 음식이 몸속 어디를 통과하고 있는지 느낍니다. 사람들은 대개 '아, 배불러', '맛있어', '맛없어' 정도에서 그치고 음식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음식이 맛있는지 아니면 맛없는지, 몸의 어디로 기운이 가는지, 음식의 에너지가 내 몸 어디까지 통하는지, 음식에 따라 내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몸과 정신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차분히 바라봅니다. 음식을 통해서 나의 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고 내 몸의 변화를 점검합니다.

 

발우공양은 음식을 남기지 않는 '빈 그릇 운동'이기도 합니다. 음식을 탐하는 마음을 경계하고 나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음식으로 채웁니다. 먹을 만큼만 그릇에 담고 깨끗이 비워야 합니다. 이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상 위에 오르고 나에게 닿게 되었는지, 음식의 기원을 생각하고 그 음식을 만들어준 자연과 사람들의 노고를 떠올립니다. 하나의 채소 요리가 완성되기까지 흙과 물과 햇살과 바람과 농부의 정성과 땀이 있었다는 것, 우주의 온 생명이 함께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실을 알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쌀 한 톨도 허투루 여기지 않고 남김없이 먹게 됩니다./정관

 

< 5 >

 

합장

 

절은 수행하는 공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 실전이라면, 절은 그 연습을 하는 장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절에서는 팔을 과도하게 흔들면서 걷지 않습니다. 평상시에는 차수라고 해서 두 손을 교차하여 왼손 손등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잡아 가지런히 모으는 자세를 취합니다. 돌아다니다 사람을 만날 때는 합장을 합니다. 밖에서 만나면 악수를 하는데 절에서는 두 손을 모으고 목례를 하는 인사를 합니다. 합장은 '당신과 나는 하나입니다', '내 모든 것을 모아서 하나의 마음으로 대합니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가진 두 손을 모두 내보여줌으로써 나는 당신과 다투거나 싸울 의사가 전혀 없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승묵

 

< 6 >

 

받은 것을 아는 사람

 

 

미황사에서 제 직책은 주지입니다. 모두들 저를 주지 스님이라고 불러요. 언젠가 한번은 대체 주지가 뭘까 생각하다가 농담 삼아서 이렇게 말했어요. "주지는 주는 사람이야. 사람들에게 잘 나눠 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지."

 

사람들이 부처님께 떡을 공양하곤 하는데, 그 떡은 조금 지나면 금방 굳는 데다 우리 사찰에서 다 먹을 수 없는 양일 때도 있잖아요. 그런 떡을 보면 바로 잘라서 그릇에 담아 보이는 사

람마다 나눠 줍니다. 떡 주지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가끔은 엄마 손에 억지로 이끌러 오는 꼬마들이 있는데 표정이 별로 안 좋아요. 그럴 때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사탕을 꼬마들 손에 쥐어주면 금세 얼굴이 환해지죠. 그때는 제가 사탕 주지가 되고 또 사람들이 오면 차 주지, 밥 주지, 부채 주지, 책 주지, 재워 주지.... 그렇게 생각하니 ‘아, 나는 참 주지를 잘한다’라고 혼자 마음속으로 뿌듯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선방 앞에 서서 날이 밝아오는 풍경을 보고 있었어요. 붉은 해가 저 달마산 위로 떠오르는데 문득 숲을 보니 나무들이 따스한 빛을 맞으며 활짝 웃고 있는 거예요.새들도 아주 신나서 명랑한 소리로 노래하고요.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어요. '이야, 해가 뜨니까 나무와 새들이 저리도 기뻐하는구나.' 그뿐만 아니라 저도 좋고, 들판에 익어가는 곡식들과 작은 벌레까지도 한껏 즐거워하는 게 느껴졌어요. 순간 깨달았습니다. 저 태양이 단 한 번 떠올라서 이 수많은 생명들에게 나눠 준 빛에 비하면 내가 지난 20년 동안 사람들에게 나눠 준 것은 반딧불만큼도 안 된다는 것을요.

 

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지금까지 나도 모르게 수많은 것으로부터 받고 있었구나.

태양뿐만 아니라 이 땅이 나에게 주는 것이 수없이 많고

이 바람이 나에게 주는 것이 수없이 많고

이 빗방울이 나에게 주는 것이 수없이 많고

또 옛날 사람들이 나에게 준 것이 수없이 많고

그래서 내가 아무리 평생을 나눠 준다고 해도

내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수천 배가 많겠구나.

 

자신이 준 것만 따지는 사람은 불행하고, 받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실제로 준 것보다 받은 것이 수백 배, 수천 배 많으니까요 받은 것을 아는 이는 나에게 주어지는 많은 것들에 감사하게 되고,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베풀고 나눠 주는 삶이 아마도 가장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요. /금강

 

 

장원재/ '오래된 질문(다산초당 출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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