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것을 매일 세 가지 찾아내자
오늘도 어제처럼 출근하고 어제처럼 퇴근한다. 오늘도 어제처럼 아이들을 돌보고 어제처럼 밥을 준비한다.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출근하고 퇴근할 것이고, 아이들을 돌보고 식사를 준비할 것이다. 도시 생활과 자본주의적 삶은 이런 매너리즘을 낳는 주범이다. 거대한 건물과 화려한 조명은 시골에서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출과 일몰의 드라마틱한 변화에 무감각하게 만들고, 사무실에 갇힌 일상적 삶은 뭉게구름이나 꽃과 바람을 느끼기 힘들게 만든다. 퇴근해서도 마찬가지다. 몸이 지치고 정신이 피로에 절어 있으면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를 느낄 여지가 없다. 그제나 어제와 비교해보아도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완전히 매너리즘에 빠지면 그렇게 된다.
그래서일까, 직장인들에게 퇴근하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집에 들어간다고 대답한다. 그들에게 다시 묻는다. "왜 집에 가는데요?" 대부분 사람들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침에 집에서 나왔기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뿐이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려고, 아이와 놀아주려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습관적으로 귀가한다. 이미 '출근 기계'나 '귀가기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기계'가 부수어지고 '인간'이 다시 등장하려면, 변화하는 것, 무상한 것, 아름다운 것이 출근 기계나 귀가 기계의 발걸음을 멈추게 해야 한다. "어? 벚꽃이 피었네." “벌써 첫눈이 내리네." “근사한데!" “아름답구나!"
"아름답다!" 하고 감탄하는 순간이 사랑이 싹트는 순간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벚꽃이 아름답다고 느끼면, 벚꽃이 지는 순간 어떻게 애절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고개 돌리지 않고 무상에 직면해야 자비의 마음이 싹트는 법이다. 그러니 매너리즘에서 탈출하는 첫걸음은 세상의 무상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그런데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변하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매일 최소한 세 가지씩 변한 것을 찾아내자. 기온이나 바람이어도 좋고, 흘러가는 뭉게구름이어도 좋고, 화려하게 꽃이 핀 나무여도 좋고, 길에서 만난 고양이여도 좋고, 녹음이 짙어진 가로수여도 좋다. 아니면 아내의 얼굴빛이어도 좋고, 아이가 밥 먹는 모습이어도 좋고, 전화기에서 들려 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여도 좋고, 직장 후배의 멍한 표정이어도 좋다. 어제와 달라진 것을 억지로라도 찾아보.려고 노력하자.
처음에는 찾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변한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현재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이나 동물, 혹은 사물이나 환경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은 변한 것을 못 찾을 수 있지만, 내일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근사한 자태와 향기를 자아내는 꽃나무를 오늘 제대로 응시했다고 하자. "오른쪽 나뭇가지에 꽃이 더 많이 피었네.” 이렇게 꽃나무와 대화를 나눈 사람은 내일 출근길에 꽃나무의 변화를 다른 누구보다 민감하게 알아 첼 수 있다. "밤사이에 비바람이 심하게 불었나? 꽃잎들이 많이 떨어졌네."
변하는 것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면, 그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바로 오늘 하루에 집중하게 만들고, 동시에 무상에 대한 감각을 민감하게 다듬어줄 것이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나 '다시 오지 않을 바로 이 순간을 향유하려는 의지'가 기적처럼 생기는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무상한 것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노쇠한 어머니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하시면 아이스크림을 사드리는 것 정도이고, 함께 산책을 하자 하시면 길동무가 되어드리는 것 정도다. 화려한 벚꽃이 지려 할 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벚꽃의 무상함에 마음이 아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꽃은 우리 바람과는 달리 허무하게 떨어질 것이다. 내가 지킨다고 해서 벚꽃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강신주 /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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