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리제이션 (medicalization)
필자와 갑장인 한 친구가 있다. 그는 올해 75세로 노년기에 들어와 있다. 30여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고, 60세 은퇴 후 몇 년간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건강에도 자신이 있어 어지간한 몸의 불편은 대수롭지않게 넘겼다. 동창뿐 아니라 직장생활 등으로 맺어진 인맥도 살아 있었고, 이런저런 모임도 심심찮게 있어서 나름대로 활기있는 노후생활을 즐겼다.
그러다 70대로 들어서자 건강에 문제가 조금씩 나타나면서 그의 생활도 달라져갔다. 쾌활과 낙천은 슬금슬금 도망가고, 부정과 불안이 반쯤 망가진 팔랑개비처럼 마음 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증상이 생길 때마다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순례가 시작됐다. 배가 이유 없이 더부룩하다, 생배앓이가 잦다, 이쪽 관절이 쑤신다, 저쪽은 뻣뻣하다, 어깨가 시리다, 눈이 자주 흐릿해지고, 왠 거미줄이 어른거린다, 가는 귀가 먹는 것 같더만 조수미 노래같은 고음이 짜증나게 들린다, 쉬아가 어쩌구 저쩌구~ 등등 다양한 호소를 쏟아냈다. 특별한 이상은 잡히지 않는데, 검사만 자꾸 늘어났다. 평생 병원 신세 안 질 것 같던 자신감은 사라져가고 사소한 신체 문제도 죄다 질병으로 여기며 '병원 의존형' 사람이 됐다. 이를 새로운 사회학 용어로 '메디컬리제이션(medicalization)'이라고 일컫는다. "모든 증상을 치료 대상이라 생각하며 환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노령화 진입 초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심리적 현상이고, 고령화시대에 일반화된 사회적 현상이다.
노화의 징후로 어차피 나타나는 다음의 증상들은 대개 병(病)이 아니다. 나이 들면 호흡에 쓰는 근육과 횡격막이 약해진다. 허파꽈리(肺胞)와 폐 안의 모세혈관도 줄어간다. 가만히 있어도 예전보다 산소가 적게 흡수되어 평소보다 움직임이 조금만 더 커지거나 빨라지면 숨이 찬다. 이건 질병이 아니다. 체내 산소량에 적응하면서 운동량을 조금씩만 늘려가도 숨찬 증세는 개선된다.
같은 이유로 기침도 약해진다. 미세먼지 많은 날 기침이 자주 나온다는 호소는 되레 청신호다. 기침은 폐에 들어온 세균이나 이물질을 밖으로 튕겨 내보내는 청소효과가 있는데, 그런 날 기침이 있다는 것은 호흡 근육이 제대로 살아 있다는 의미이다. 만성적 기침이 아니라면 병원을 찾을 이유가 없다. 또한 고령의 상실감이나 서운함이 밀려올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증상들은 마음 먹기에 따라 病이 되기도 하고 아니 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고(思考)전환이 권장되지 치료가 꼭 필요한 게 아니다. 가령 양귀비(楊貴妃)가 옆에 바짝 붙어 있는데도 한창 때 같았으면 천방지축으로 기고만장했을 '똘똘이'가 기침(起枕)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면, '아! 자손을 번식시킬 의무가 끝났구나' 라고 수긍하면 병(病)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끝난 의무를 치료대상으로 여겨서 의사나 약 등에 의존하여 억지로 더 질질 끌게되면 병(病)을 만드는 것이 된다. 서운하겠지만 '똘똘이'가 자기 몸에서 가장 똘똘했던 시절은 벌써 지나갔다.
불필요한 약 복용이나 무심코 건네받은 건강 보조 약물이 몸을 그르칠 수도 있다. 노령에는 간(肝) 세포수가 감소하고, 간으로 흐르는 피도 줄어들 뿐더러, 간 효소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그 결과 약물 대사(代謝)가 늦어지고, 체내 잔존량이 늘어나 藥禍가 일어날 수 있다. 얼마 전부터 생명공학이나 의학의 연구영역과는 별도로 사회학자들이 고령화시대의 사회문제로써 이런 현상들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위에 열거된 노령화 패턴 등을 이해한다면 "medicalization", 즉 '증상이 있으니 나는 환자이고 따라서 약을 먹어야지' 랄지 또는 '몸이 한창때하고 많이 달라, 약을 처방 받아야 해'라는 생각을 상당히 떨쳐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가 나이인 만큼 지병(持病) 한 두개쯤 있다면 섭리로 생각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Escape from medicalization!
medicalization으로부터 벗어나 가물가물해진 생기(生氣)도 다시 북돋우고, 숨어버린 낙(樂)을 찾아내 '내 나이가 어때서~' 라고 정도껏 즐겨도 될 일이다. 스스로를 죽음으로 불러들이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말고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생의 환희 아니던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더라도 살아있는 人生은 즐거운 것이다. 가족이나 타인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더라도 그 책임은 나의 몫이라고 생각하자. 한번 가면 다시 못올 인생인데 가는 그 날까지 움직이며 보람샘이 마르도록 꿈을 찾아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 갑시다.
출처 :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 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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