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이제야 조금 알 수 있는 것들

송담(松潭) 2020. 1. 19. 10:23

 

 

이제야 조금 알 수 있는 것들

 

 

깊은 생각 일러스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쉬울 것 같지만 어려운 말이다. 도대체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이며 깨달은 후에는 어떻게 변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석가의 깨달음과 유명한 선사(禪師)들의 깨달음이 다 같은 것인지도 의문이다.

 

 자아를 찾아 간다는 말도 어렵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과연 정답같이 확정된 것인가? 진정한 나는  어떤 모습인지 실체가 애매하다. 가끔 나를 찾기 위해 수행과정에 참여하거나 여행을 떠난다고 하는데 그 후 얻은 것은 무엇인가. 물론 한 두번의 시도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혼을 맑게 하라. 그 사람은 영혼이 맑은 사람이다.’ 이런 말도 정신이 든다. 정신이 맑아졌다고 하면 알겠는데 영혼으로 들어가면 어렵고 복잡해진다. 육체는 멸해도 영혼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사후세계도 있을 것인데 이것 또한 확신할 수 없다.

 

 언젠가 철학을 알면 좀 유식하게 보이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해 보았는데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플라톤의 이데아,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니체의 영원회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등은 여러 번 읽어도 감이 잡힐듯하다 다시 먹통으로 돌아갔다. 실존, 타자, 시간 이런 개념도 복잡하게 엉켜 선명하지 않다. 모든 것을 집요하고 끈기 있게 파고들지 못하고 두뇌가 따라주지 못해서 그런지 이해가 안 되는 개념과 문제가 너무 많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알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생겼다. 그동안 잘 이해되지 않았던 철학은 막연하게나마 철학은 생각의 깊이를 더해 준다정도의 효용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깨달음에 관해서는 하나의 깨달음은 수없는 잘못을 반복한 후에 비로소 오는 것이라고 여겨지며, 나를 찾아가는 것은 자신의 단점을 찾아내고 잘못되거나 어긋난 것들이 나로 인해 유발되었다는 자기책임론, 즉 집사람의 건강문제도, 자식 문제도 자신이 원인 제공자라는 원죄론 같은 것을 아는 것이 나를 찾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왜 이렇게 머리 아픈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인가. 그냥 멍 때리고 살면 안 되는 것일까. 그러나 공부는 계속해야 한다, 자기계발, 주식투자, 땅부자되는 법 이런 것들 말고, 보다 가치있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 남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기 위해서고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다. 강남의 미친 아파트 값을 보고도 상대적 빈곤이나 열패감을 갖지 않으며, 잘 산 형제자매에게 의존하지 않고 사촌이 논을 사도 배 아파하지 않으며, 친구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고 축하하는 여유가 있는 사람. 그런 내공을 가져야한다.

 

 이제 내가 추구할 것은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풀려고 애쓰지 말고 하얀 머리칼과 주름진 얼굴을 더 찡그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 잘 웃지 않는 나의 얼굴을 웃는 모습, 온화한 모습으로 바꿔가는 일이다. 여기에 향기까지 피워낼 수 있다면 훗날 그런대로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걱정이다. 애써 향기를 피워내려 해도 몸에서 담배냄새가 나니 이를 어찌할꼬.

 

 (2020.1.19)

 

 

 * 위 글을 친구 박형하에게 보냈는데 답장이 왔습니다.

 

  나도 "나는 누구인가?"란 화두에 답을 찾고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희말라야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트래킹, 제주 올레길, 동해안 해파랑길 등을 헤맸지만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몇 년 전 열반하신 법정 스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수없는 반복 질문 속에 해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저는 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방황에서 얻었던 작은 배움은 친구의 글처럼 현재의 내가 처한 상황은 지난날의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세계 3대 영적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에크하르트 톨레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실재하는 것은 현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기대라는 거짓자아에 묶여 헤맨다고 한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현재인데 실존하는 현재를 즐길 줄 모르고 실재하지 않은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기 때문에 불행에 빠져든다고 합니다.

 

  이 순간의 나는 누구이고 내 마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피는 관찰자가 되라고 한다.  명예, 가족, 건강, , 인간관계, 불안한 미래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현재는 향기롭고 행복한 나날이 될 듯도 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이러한 방향으로 저의 의지를 가져보도록 할까 합니다.

'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책 없는 낙관론자  (0) 2021.03.19
술과 인생  (0) 2020.03.20
우리에게 ‘타자’란 무엇인가?  (0) 2019.11.24
추석에 그려보는 풍경  (0) 2019.09.01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을 생각해 본다  (0) 2019.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