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추석에 그려보는 풍경

송담(松潭) 2019. 9. 1. 21:40

 

추석에 그려보는 풍경

 

  

 

 

 

 

 우리들의 기억 속에 추석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먼저 추석은 고향의 빛깔로 말해 준다고향집 마당에서 따가운 가을볕을 받고 있는 고추의 맑고 투명한 빛, 일찍이 처마에 매달린 옥수수 씨앗다발의 은은한 노란빛, 뒤뜰에 입을 벌린 채 보석 같은 알알을 드러낸 석류의 빛그 빛 속에서 동네 여기저기는 여름에 무성했던 나뭇잎들이 서서히 단풍으로 채색되기 시작한다.

 

 추석엔 고향집 마당에 송편 찌는 솔 내음이 퍼지고 어느 집 외양간에선 되새김질하는 송아지 "~하고 우는 소리 들린다. 집안에 강아지 곧 당도할 꼬맹이 서울손님 기다리다 지쳐 동구 밖으로 나오고, 마을회관 앞에 번들한 차들이 속속 들어오면서 서울 간 처자들 삼삼오오 알록달록 모습을 드러내자 논가에서 일하는 농촌총각 일손을 멈추고 멋지다. 근데, 왜 모두들 서울로 가버렸을까?" 허탈해 한다. 모두가 이제는 먼 옛날 희미한 기억 속의 풍경이다

 

 지금 막 혼잡한 도심을 떠나 가을이 곱게 영글어가는 농촌의 들판을 보면서 생존경쟁의 최 일선에서 뛰고 있는 어느 가장(家長)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내 어린 시절 뛰놀던 푸르고 푸른 고향의 들판!”하며 추억을 더듬다가 금세 저 들판의 논밭은 지금 한 평에 얼마나 갈까?” 아름다운 들판이 부동산의 개념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일찍이 성철스님께서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하시면서 맑은 거울과 같은 텅 빈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는데 부동산 광풍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그의 머릿속은 저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의 순수함을 보지 못한다. 텅 빈 마음은커녕 산과 물, 땅과 바다까지 모두가 돈이 되는 부동산이다. 아파트 공화국 사람들의 비애(悲哀).

 

  고향에 내려온 아이들도 예전엔 동네 당산나무 주변에서 술래잡기를 하거나 재기차기, 고무줄놀이를 하고, 계곡을 찾아 가재를 잡아 검정 고무신에 담고 맨발로 걸어왔을 터인데 요즘 아이들은 모두들 저마다 각자의 스마트폰에 고개를 쳐박고 있다.

 

 고향집에 모인 형제자매들도 모두 편안한가? 반갑고 즐거운 것도 사실이지만 무언가 하나로 똘똘 뭉쳐지지 않은 어설픔을 안고 있는 가족도 있다. 잘 산 형제, 못 산 형제가 있어서다. 못 산 형제는 겉으론 웃어도 속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숨기고 있는지 모른다. 형제자매간에도 재산상 형평이 중요하다. 그런대로 살만한 사람도 더 잘 산 형제가 있으면 상대적 빈곤에 시달린다.

 

 나에게도 추석이 왔지만 특별한 기대가 없다. 시골에 사니 예전과 달리 고향을 향한 설렘도 없고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일찍 익은 감(조홍시)을 품을 일도 없다. 이곳저곳 가벼운 선물도 주고받았지만 아쉬운 사람이 더 많다.

 

 삶의 과정에서 모두들 힘들었을 것이다올해 뜨는 보름달은 이 땅의 많은 가족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빛을 비추어 주었으면 한다. 그들과 함께 위로를 나누고 싶다. 

 

(2019.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