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지난 날 나의 선택은 팔자(八字)소관인가

송담(松潭) 2019. 5. 25. 16:40

 

지난 날 나의 선택은 팔자(八字)소관인가

 

   

한 동안 나의 의식은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에 메여있었다. 과거사를 돌이켜보면,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다가 35세 때 당시 내무부로 입성했다. 지방자치가 실시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그곳에서 근무는 별다른 하자가 없으면 출세를 보장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중간에 지방차지제도가 도입되고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선거로 뽑게 되어 관선자치단체장은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다. 하여, 46세 때 근무부처를 바꾸고 서울에서 고향 가까운 곳으로 낙향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었다.

 

 그 후 정년퇴직까지 나의 정신세계는 과거가 지배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곳에 있었더라면 단체장을 못하더라도 부단체장을 하면서 그런대로 나름 출세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였고 이런 미련은 열등감으로 변하여 나를 끈덕지게 괴롭혔다.

 

 그때 권력부서에서 비권력부서로의 선택은 오로지 자의(自意)에 의한 선택이었는데 남들은 믿지 않았다. 낙향하여 근무할 때 상사 한 분은 아직도 내가 무슨 사고를 쳐서 쫓겨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집사람의 모 지인은 당신 남편이 혹 여자문제 같은 것으로 잘 못되어 내려온 것 아니냐?”하는 진단까지 내렸다. 내려 온 동기는 목표(희망)를 이루기 어려운데 중앙부처 업무는 과다하고 거기에 계속되는 음주는 나의 몸을 지치게 했다. 술만 많이 마시지 않았더라도 업무는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인데 술은 악순환의 촉매제였다. 이렇게 나는 낙향하고 말았다. 이유야 어쨌든 낙오는 낙오다.

 

 부처를 옮겨 낙향 후의 직장생활은 한 마디로 태평성대였다. 처음에는 정시에 땡 하면 퇴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천국이었다. 그래서 내가 낙향한 것은 내가 스스로 살기 위해서 몸이 이를 먼저 알아차리고 그곳을 떠나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을 뒷받침해주는 글을 접했다.

 

 팔자(八字) 는 과연 있는 것일까? 이는 운명이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기도 하다. 지난 날 어떤 기로 내지는 선택의 순간에 나는 왜 그쪽을 선택했을까? 저쪽으로 안 가고 이쪽으로 왔을까? 그 수많은 선택이 쌓이고 쌓여서 현재의 ''가 된 것이다.

 

 그 선택의 순간에 저쪽이 아닌 이쪽을 선택한 이유를 파고 들어가다 보면 섭리와 팔자에 맞닿게 된다. 당시에는 현실적인 이해타산이나 이성적 판단이라고 여겼을 테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은 무의식에서 내린 판단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무의식이 이끌어서 내린 결정이나 판단이 결국 팔자가 된다. 쇼펜하우어는 이를 가리켜 맹목적인 의지라고 표현하였다. 지성이라고 하는 것은 맹목적인 의지의 하인이라는 것이다. 지성이 이끄는 게 아니라 우리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맹목적인 의지가 이끈다. 이 맹목적인 의지를 불교적인 관점에서 업(Karma)이라고 한다.

 

 (‘조용헌의 인생독법중에서)

 

 맞는 말이다. 내가 가는 인생의 길은 팔자소관이요, 운명이고 업이며 섭리의 결과이다. 만약 내가 낙향하지 않고 나름 출세하려고 했다면 건강이 버텨주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지금 같은 전원에서 살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에서 하우스 푸어가 됐거나 고향에서 정치하려고 껍죽대다 패가망신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나는 은퇴 후에 나름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크게 풍족하지 않아 해외여행이나 골프는 하지 못하고 주로 집에 거주하면서 전원생활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산다. 나의 성격상 돈이 많았더라면 밖으로 쏘대고 다닐 것이 뻔한데 약간의 부족함이 나를 겸손하게 만들고 절제하게 했다. 그리고 낙향하여 좋은 직장 동료들을 여럿 만났다. 그들과 교우관계가 지속되고 있고 약간 외로울 듯하면 술자리도 만들어진다. 이렇게 나는 낙향하여 살아남았다.

 

 (2018.8.6)

 

 

 

 

< 1 >

 

낙향하여 살아남았다

 

 

 此木以不材得, 終基天年

(차목이부재득, 종기천년)

- 장자 산목 -

 

(이 나무는 재목으로 거두어 쓰지 못하므로 자신의 천수를 다한다.)

 

오늘 뜬금없이 그렇게 잊자고 했던 과거에 발목 잡혔지만 모든 것의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음을......

 

만약 낙향하지 않고 서울에서 버텼다면 발병(發病)했을 가능성이 크고, 전원생활의 기쁨을 향유하지 못했으리라. 재목(材木)으로 쓰이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장자가 나를 위로한다.

 

 

 < 2 >

 

나는 성공하고자 힘을 구했지만

 

어느 병사의 기도

 

 

 나는 성공하고자 힘을 구했지만

 신은 겸손과 순종을 배우도록 나를 약하게 만드셨습니다.

 

 나는 큰일을 이루고자 건강을 구했지만

 신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나에게 병약한 몸을 주셨습니다.

 

 나는 행복해지고자 부를 구했지만

 신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나에게 가난을 주셨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는 권력을 구했지만

 신은 당신의 존재를 알도록 나에게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나는 인생을 즐기고자 모든 것을 구했지만

 신은 나에게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을 주셨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소망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신은 나라는 아주 작은 존재의 하찮은 기도를

 모두 들어 주셨습니다.

 

 신이시여, 참으로 고맙습니다.

 

 

 김선경 /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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