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비 오는 날, 우정의 편지

송담(松潭) 2019. 3. 10. 14:35

 

비 오는 날, 우정의 편지

 

 

 

2017

 

 

1971

 

 

 

 

봄비 오는 날, 오래된 친구로부터 우정의 편지를 받았다. 조용하고 얌전하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읽은 편지는 50년 곰삭은 우리들의 우정을 더욱 깊게 한다. 다음은 수원에 사는 친구P의 글이다.

 

 

 

 친구는 좋은 글이 있으면 카툭으로 보내준다.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 카톡에서 떠도는 단순한 전달의 글이 아니다.

 

 그 글의 내용은 오고가는 계절에 대한 단상, 전원생활의 담담한 이야기, 찡하는 가족 애(), 함께 한 추억 들추기, 대상을 밝히지 않는 애틋한 그리움, 동경 대신에 회상과 소소한 현재 의 소회 등 주제의 다양함은 나열할 수 없다.

 

 육십대 후반을 달리고 있는 나에게는 정서상 공감은 물론 그 울림도 여운이 길다. 그 글은 친구 자신의 글과 독서 중에 발견되는 글을 필사하여 출처를 밝혀서 세 친구들의 단톡방에 올려준다.

 

 카톡의 그의 글을 보면 우선 반가움이 일어난다. 읽으면서는 아름다운 문장들에 놀라고, 읽은 후엔 그의 책사랑에 놀란다. 더불어 따분해 질 수 밖에 없는 늙음의 시간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현재의 삶에 만족을 찾아가는 시간요리술에 감탄한다.

 

 이번에 보내준 박광수 님의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의 서문의 글을 읽고는 이런 생각이 든다. 친구는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봄의 외로음을 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카톡방 세 사람은 "친구가 문득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일순위" 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나가는 것일까? 아니면 그리운 이들끼리 모여서 서로 기대어 수다를 떨고 싶다는 시그널일까?

 이렇든 저렇든 외로울 때 서로가 보고픈 대상이라면 행복하지 않는가! ^^

 

 (2019.3.10)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비가 오면 

 짐승들은 집에서 

 우두커니 세상을 바라보고 

 공사판 인부들도 집으로 간다 

 그것은 지구가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가 오면 

 마당의 빨래를 걷고 

 어머니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고 

 강을 건너던 날 낯선 마을의 불빛과 

 모르는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비는 안 가본 데가 없다 

 

 빗소리에 더러 소식을 전하던 그대는 

 어디서 세상을 건너는지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낡은 집 어디에선가 

 물 새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시도 그만 쉬어야 한다 

 이상국(1946~) 

 

  [경향시선]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비가 오면 벌여 놓거나 차려 놓은 것을 안으로 거둬들이게 된다. 비를 맞으면 안되는 것들은 치우거나 덮는다. 널어놓은 빨래는 거둬 안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바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잠시 일손을 놓는다. 누군가는 우산을 펼쳐 들고 식구를 마중 나가기도 한다. 비는 저 멀리서 이쪽으로 산등성이를 넘어 벌판을 지나 벌떼처럼 온다. 와서 새잎들을 두드리고, 연못을 두드리고, 장독을 두드리고, 지붕을 두드리고, 사람의 애틋한 심사(心思)를 두드린다. 봄비가 좀 넉넉하게 왔으면 좋겠다. 나도 짐승처럼 우두커니 서서 비 오는 바깥을 바라보고 싶다. 이따금 생각도 쉬어야 한다. 무엇보다 오던 비 그치면 봄 하늘이 보리밭처럼 푸르게 드러날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2019.3.11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