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술과 인생

송담(松潭) 2020. 3. 20. 22:28

 

술과 인생

 

 

 

따뜻한 봄날, 모두들 매화의 거대한 꽃 무덤 속에서 취한 나들이에 한창이었을 즈음, 나는 온종일 방구들에 몸을 밀착하고 허리가 아프도록 붙어 있었다. 다름 아닌 술 병(病)이 난 것이다. 지난 3월 초부터 술의 향연이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녹이더니 급기야 하루 종일 꼼짝없이 나를 눕도록 배려했다. 그토록 화창한 일요일, 흔히 여자들이 하는 산후조리에 버금가는 몸조리로 하루를 보냈다.

 

지난 2주간 나를 휩쓸고 간 광풍(狂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찌하여 그대 또 다시 몸부림치는가?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 고약한 술독으로 빨려들게 하였는가? 병(病)의 원인을 알아야 치료가 가능할 것이어서 오늘도 나는 늘 해 본 습관처럼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본다. “억압된 욕구들이 그 회귀처(回歸處)를 찾고자 이따금씩 회오리를 일으키는 것일까?”

 

끝없이 이어지는 내 영혼의 방황과 번민은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고착화된 악습(惡習)이며 정신의 미성숙은 물론 목표 없이 표류하는 삶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정상인이 볼 때는 허영이고 퇴폐가 아닐 수 없으며 이를 고치지 못하면 영원히 후회만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내게 있어 술은 시인 고은의 말처럼 ‘막힌 역사의 혁명’도 아니요, ‘고루한 삶의 절정’도 아니며, ‘생명이 있는 도처의 황홀’도 아니다. 물론 술을 마시면 너와 나 사이에 촉촉한 정분이 쌓이고, 너와 나의 경계에서 꽃이 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있어 술은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인 것이니 친함 보다는 경계함에 힘써야 할 일이다. 봄꽃 향기가 나같이 방황으로 떠도는 영혼을 줄기차게 유혹하는 봄. 이 봄이 무르익어도 취하지 말아야 할 나는 오늘도 감성과 이성, 빛과 그림자의 경계(境界)에서 내 인생의 생존법칙을 다시 음미해 본다.

 

(2008.3.17)

 

< 다음은 나의 친구(박형하)가 보낸 메일 내용입니다.>

 

 

 술은

 

 미워하거나

 

 좋아하거나

 

 탐닉하거나

 

 배척하거나 할 수 없는

 

 인생의 반려자로서

 

 몸과 마음으로 끌어안고

 

 부대끼며 나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증오하지 말고

 

 사랑하지도 말고

 

 담담하게 바라보며

 

 음미하며 살아가자.

 

 

 안녕 친구가

 

< 2 >

 

가버린 날들의 단상

 

 
해마다 크리스마스 날이면 하늘이 갑자기 검은 먹구름으로 덮여 흰 눈이 펑펑 쏟아지길 기다렸다. 어쩌다 눈발이 흩날리는 날이면 곧장 친구들을 불러내 의례 단골집을 찾아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넘치는 막걸릿잔이 가속도를 더해 갈 즈음, 진지한 눈빛으로 우정을 논하고 젊음을 과시했으며, 잡히지 않는 연인을 흠모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젊음을 구가했었다. 그런 세월이 흘러 어느덧 30여년, 오늘 같은 날이면 무척이나 천진하고 낭만스런 그날의 기억 속으로 추억여행을 하고픈 것은 지천명(知天命)을 넘어선 우리 또래의 새삼스러운 감회가 아닐런지.
 
그때 그 겨울, 눈이 오는 날이면 거리를 걸으며 머리 위에 하얀 눈가발을 만들고 DJ가 있는 음악다방을 찾았다. 찻집에 들어서서 머리 위에 눈을 털며 스스로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연출하고 어디서인가 "와! 멋져!”하는 눈빛을 내심 기대했지만 주변은 크리스마스 캐럴과 사람들의 잡담 소리로 소란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막걸리에 취해 붉어진 우리들의 뺨은 '고추에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 그 밤의 열기 속에 타오르고 강렬하고 혼란스러운 락 비트 멜로디는 젊은 우리를 황홀경으로 빠트리면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발산케 했다.
 
그러나 30여 년 전 그 낭만의 무대를 점령했던 역사 속의 인물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그때 그 주역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슨 생각에 골몰하고 있을까. 지금쯤 그들의 토끼 같은 자녀들은 검실검실한 수염이 돋아난 청년이 되었을 것이고, 앙증맞은 딸아이는 포송한 얼굴에 복사꽃을 피워내 당장이라도 어떤 도둑이 그 애를 데려갈 것 같을 것인데 지금 그들은 무심한 세월을 바라보며 한숨짓고 있을지 모른다.
 
이천하고도 사 년, 12월, 내게도 어김없이 찾아온 크리스마스. 거리에는 자선냄비가, 케럴 소리가 12월의 빛나는 밤을 기다리며 축제를 준비하는 오늘, 눈이라도 펑펑 쏟아지면 강아지처럼 거리를 쏘다니며 질주하고 싶지만 이제 그날의 낭만은 엄두도 못 낸다. 정작, 일찍 퇴근하여 조그마한 케이크 하나 들고 여우·같은 마누라 앞에 변함없는 “충성!" 그 충성맹세의 함성을 외쳐야 할 처지다. 오! 애제라, 젊음이여, 꿈이여, 잃어버린 낭만이여!
 
그러나 내게 빼앗긴 12월에도 크리스마스는 온다. 오늘도 이브의 밤이 깊어지면 고층 아파트의 창문 너머로 그 옛날의 '찹쌀 떠~억!, 메밀 무~욱’소리를 기다려 보련다. 이윽고 우리가 잠든 밤이면 거리의 성가대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을 노래해 주고, 사랑과 축복으로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줄 것이다.
 
< 2004. 12.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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