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대책 없는 낙관론자

송담(松潭) 2021. 3. 19. 10:36

대책 없는 낙관론자

 

 

 

성격분석 이론으로 ‘MBTI 유형분석’이 있는데 사람이 지닌 성격을 외향과 내향, 감각과 직관, 사고와 감정, 판단과 인식 등에 따라 16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는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나눌 수 있다. 집사람과 나는 성격이 확실하게 구분된다. 집사람은 내향형으로 꼼꼼하고 이성적이고 나는 매사를 대충하며 감성적이다.

 

단순한 예를 들면 외출을 할 때 집 앞에 차를 대기하고 집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다. “빨리 나오지 않고 뭘 그렇게 꾸물대나”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려고 하지만 속으로 삼킨다. 또 차에 타고 막 출발하려고 하면 뭘 확인하고 오겠다며 다시 집안으로 들어간다.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도 강박증 같은 게 있는 것 같은 집사람에게 “걱정이 많아 탈이다”고 하면 생전에 장인께서는 외출할 때 남자인 본인이 직접 집단속 다 하신다고 나의 말문을 막아버린다.

 

이렇게 성격이 달라도 함께 잘 사는 것을 보면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상호보완관계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부부가 취향이나 성격이 같아야 마찰이나 갈등 없이 잘 지낸다는 이론은 썩 잘 맞지 않는 가설이다. 더군다나 노인이 되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줄 역할이 필요하다.

 

어제는 참 이상한 날이었다. 집사람이 아들 집에 간 사이에 내가 주전자에 물을 끓이다가 깜빡, 한참을 밖에서 일을 하다 화재 직전에 발견했다. 주전자가 시커멓게 타가고 있었고 쇠붙이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열에 취약한 목조주택을 하마터면 태울 뻔 했다. 내가 주방에서 사고를 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니 그만큼 부엌살림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집사람이 가끔 냄비를 태우는 것을 보고 집사람이 정신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니올시다’ 이다.

 

또 하나 어제 저녁을 아들 집에서 먹고 혼자 집에 왔는데 집에 들어와서 핸드폰을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내가 왜 이러지. 칠십이 코앞이니 이제 서서히 혼 줄을 놓고 있는가?” 곧바로 이웃집으로 가서 아들집에 잠간 가 있는 집사람에게 핸드폰 놓고 왔다고 대신 전화를 부탁했다. 내일 찾아가겠다고. 평소에는 어디에 물건을 깜박 놓고 올 때, 대부분 출발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생각이 나는데 어제는 집에 와서야 생각이 떠올랐다. 나에게도 어쩔 수 없는 노화가 찾아왔다.

 

어제는 비교적 걱정에 둔감한 나에게 ‘대책 없는 낙관론자’는 사고유발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자각하게 했다. 노년에는 가급적 부부가 함께 할 것. 꺼진 불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필 것. 대충대충 얼렁뚱땅 살지 말 것.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는 날이었다.

 

(202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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