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

김훈 / ‘자전거 여행1’중에서

송담(松潭) 2019. 11. 18. 07:25

 

미천골에서 동해 쪽 첫 마을 면옥치

 

 

 아침 일찍 베이스캠프를 떠난 자전거는 오후 2시께 1,100미터 고지 마루턱에 당도했다. 오르막의 마지막 고비에서는 기어를 2단까지 풀어내리고도 허덕지덕하였다. 그 꼭대기에서 시설물 보수공사를 하던 근로자들이 무너질 듯이 비틀거리며 올라오는 자전거를 향해 박수를 쳐주었다. 고지의 바람은 찼고, 여러 골짜기를 훑어서 올라오는 바람의 풍향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거기서 커피를 끓여서 비스킷으로 점심을 먹었다. 여기서부터 저편 산 아래 첫 마을 면옥치까지는 바람을 가르고 빛 속을 달리는 3시간의 내리막이다. 내리막을 너무 기뻐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날이 저물어서 면옥치마을에 도착했다.

 

 면옥치는 미천골 1,100미터 고지에서 동해 쪽으로 내려오는 길의 첫 번째 마을이다. 여기는 맑은 땅이다. 푸성귀가 제 향기를 지니고 있고 공기가 맑아서 말소리가 또렷이 들린다. 연어 돌아오는 남대천의 맨 위쪽 물줄기가 마을 한가운데로 흐른다. 물가의 가을 나무들이 붉어서 그 밑을 흐르는 물도 붉다.

 

 다들 떠나고 20호가 남았다. 서종원씨는 이 마을의 맹인이다. 다섯 살 때 시력을 잃었다. 맹인은 마을을 떠날 수도 없다.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해 질 무렵의 붉은 물가를 더듬거린다. 그는 이 아름다운 마을이 "어떻게 생긴 줄 모른다라고 한다. 눈뜬 사람들은 자꾸 떠났다. 팔 땅이 없는 사람은 마을을 떠나지 않는다. 이 마을 전동석씨도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땅이 없어서 남의 땅에서 일해준다. 전동석씨와 맹인은 오랜 친구다. 그들의 생애는 서로 구별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는 맹인 친구를 데리고 마을 어귀까지 바람을 쏘여주고 술도 먹여준다.

 

 아이들이 없어서 분교는 문을 닫았다. 문 닫은 분교의 교훈은 '푸른 내일의 꿈을 키우자'였다. 교훈을 새긴 돌비석은 빈 운동장 한가운데 서 있다. 아이들이 쓰던 책상과 걸상 몇 개가 마을에 흩어졌다. 아이들 엉덩이에 반들반들 닮아서 아직도 윤이 난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돈 많은 외지인이 굴착기를 끌고 와서 외국풍 별장을 짓고 있다. 맹인은 한나절씩 이 공사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구경하지만 어떤 모양의 집이 들어서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 마을 농부 김순갑씨에게는 몸으로 문질러서 지켜낸 희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직도 남아 있다. 양양에서 중학교를 마친 그는 목수일을 배웠다. 젊었을 때, 도회지에서 살아보려고 고향을 떠났다. 경기도 성남에 가서 이른바 '딱지(1960년대의 철거민 입주권)'를 사서 집을 장만했다. 그 시절의 성남은 끔찍한 곳이었다. 민란에 가까운 폭동이 일어났다. 그는 다 버리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아내와 둘이서 2,000평 밭을 갈아서 연 이천삼백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나는 그래도 고향에서 기반을 잡았다"라고 그는 말했다. 3년은 감자를 심고 1년은 약초를 심는다. 약초를 심는 해에는 수입이 늘지만 약초는 땅심을 너무 빨아내서 매년 심지 못한다.

 

 올해는 당귀를 심어서 거두어놓고 말리는 중이다. 그는 노는 햇볕을 아까워했다. 도회지 도매상들이 몰려와서 이리저리 트집을 잡아 한 근에 팔백원을 주겠다고 해서 팔지 않았다. 잘 말려서 내년 봄에 더 받아야겠는데, 상인들이 값을 제대로 쳐줄지 모르겠다고 그는 걱정했다. "작물을 보고 농사를 지어야 할 텐데 상인들을 보고 농사를 짓는 판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 마을 어린이는 그가 키우고 있는 손자 두 명이 전부다.

 

 면옥치는 산맥 속에 박힌 별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꺼질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산골마을의 밤은 이르고, 맹인이 지팡이를 더듬거려 집으로 돌아갈 무렵에 떠나지 않은 사람들의 흐릿한 등불 몇 개가 피어났다.

 

 김훈 / ‘자전거 여행1’중에서

 

 

  < 2 >

 

 

 

 

 

 

여수 돌산도 남쪽 군내리의 마늘밭

 

늙은 여인네는 하루 종일 마늘밭에서

김을 매면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개가 마늘밭에 따라와 앉아서 주인을 바라보고 있다.

개는 주인을 돕지 못한다.

 

개와 주인은 닮아 있다.

 

 

 

  < 3 >

 

 11월의 태백산맥 7부 능선 위쪽은 이미 겨울이다. 잎 지는 산맥은 위쪽에서부터 허연 뼈를 드러내고, 나무들은 그 몸속에 잠재해 있던 모든 빛깔들을 몸 밖으로 밀어내면서 타오른다. 온 산맥의 계곡과 능선에 한 움큼씩의 가을빛을 실은 나뭇잎들은 폭설처럼 쏟아져내리고, 나뭇잎에 실린 빛들도 땅으로 스러지지만, 빛들이 스러진 자리에 새 빛들은 막무가내로 쏟아져 내렸다.

 

 아득한 신화의 시절부터 산은 물리적 고지일 뿐 아니라 관념적 자연이었다. 산은 높고 깊고 멀고 험해서, 그 시원성(始原性)은 훼손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의 원형인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현세의 질곡 속에서 끝없이 배반당하는 인간의 모든 꿈은 산에 의탁되었는데, 배반당한 꿈들이 빚어내는 관념의 산은 인간의 원근법어 따라서 멀거나 가깝다.

 

 

  < 4 >

 

노루목 김삿갓 옛집

 

 의풍리(충북 단양군 영춘면)에서 노루목까지는 산길을 자전거로 천천히 저어서 40분 거리다. 여기는 강원도 영월 땅이다. 이 깊은 산속에 김삿갓(金炳淵, 1807-1863)의 옛집이 있다. 이 집은 1972년까지 무너진 안채가 남아 있었고 바깥채는 온전해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20세 무렵에 방랑길에 올랐다. 산천의 아름다움이 그를 떠돌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사의 더러움이 그를 떠돌게 했다. 그의 조부 김익순은 선천부사였는데 홍경래에게 투항했다.

 

 그는 '역적 김익순의 죄를 하늘에 사무치게 통탄하는 글'로 장원급제했다. 어렸을 때 멸족을 피해서 노루목에 숨어서 자란 그는 조부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의 운명은 충과 효를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다.

 

 김삿갓은 충도 아니고 효도 아닌 길을 찾아서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버린 시대의 벌판을 떠돌았다. 그리고 그는 그 길을 찾지 못한다. 입금강소은 그가 금강산으로 들어가면서 쓴 시다. 이 시는 무섭고도 단호한 세상 버림의 노래다.

 

 글 읽어 백발이요, 칼에도 날 저무니

 하늘 땅 그지없는 한 가닥 한은 길어

 장안사의 술 한 말 기어이 다 마시곤

 갈바람에 삿갓 쓰고 금강으로 드노라

 

 충·효가 인간에게 무의미하듯이, 글과 칼도 다 필요없는 것이다. 이 무의미한 세상에서 천지에 사무치는 한만이 깊다. ''금강으로 드노라'‘'들 입()’자 한 개로 그 무궁한 원한과 단호한 작별을 통합하고 있다.

 

 소백산 너머 부석사 안양루에도 그의 시 한 편이 걸려 있다. 그는 백발이 다 되어서 고향 가까운 부석사까지 왔지만 마구령 너머 고향집에는 가지 않았다. 그는 전라도 동복땅에서 행려병자의 모습으로 죽었다. 한평생 길로 떠돌던 그는 길바닥에서 죽음으로써 길 없는 세상에서의 생애를 완성했다. 그의 시신은 아들의 등에 업혀 마구령을 넘어서 살던 터로 돌아와 묻혔다. 여기도 그의 고향은 아니다. 그의 생애를 떠올릴 때 노루목에 이르는 자전거 길은 한없이 멀어 보였다.

 

 

김훈

/ ‘자전거 여행1’중에서

'김훈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중에서  (1) 2022.09.15
박정희와 비틀스  (0) 2019.05.28
김훈 / ‘연필로 쓰기’중에서  (0) 2019.05.26
밥과 똥  (0) 2019.05.19
공터에서  (0) 2017.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