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

밥과 똥

송담(松潭) 2019. 5. 19. 14:44

 

밥과 똥

 

 

 

사진출처 : leeesann.tistory.com

 

 

 

 허준許浚(1539~1615)은 인간의 똥오줌을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해서 동의보감에 적었다. 그 책 대변大便편에 이르기를, 음식이 삭지 않고 그대로 나오는 똥은 날것의 더러운 냄새(성예腥穢)'가 난다고 했으니, 내가 말한 똥을 진단하는 것이지 싶다. 똥은 허준이 인간의 질병을 판단하는 중요한 준거였다. 그가 병든 똥을 진단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똥의 색깔을 기준으로 한다면, 푸른 똥, 붉은 똥, 노란 똥, 검은 똥, 휜 똥이 모두 병든 똥이다. 몸속에 열이 많을 때는 검은 똥, 한기寒氣가 많을 때는 오리똥처럼 생긴 흰 똥, 습기가 많을 때는 검은 물똥. 풍기風氣가 많을 때는 푸른 똥이 나온다.

 

 또 설사의 원인이나 설사똥이 창자 속에서 요동칠 때의 몸상태, 설사똥이 항문에서 뿜어져나오는 모양새를 기준으로 똥의 병을 진단하면 설사는 대략 13종의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이것을 일일이 다 옮겨 적지는 않겠다. 이 모든 똥의 문제는 외부에서 '사악한 기운邪氣이 몸을 침범했기 때문이라고 허준은 썼다.

 

 인간의 질병은 단순히 병리적이고 생리적인 원인뿐 아니라 그의 시대, 직업, 작업환경, 성장지, 거주지, 상종하는 무리, 사회계급, 출생신분 같은 정치사회적 조건에 의해 더 크게 영향받는 것이므로, 허준이 말한 사악한 외부의 기운이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념일 터이고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한 똥의 참상이다.

 

 이질에 걸려서 설사를 계속하다가 똥물 없이 피만 계속 싸면 죽고, 항문이 대나무통처럼 벌어져서 오므라지지 않으면 죽는다고 동의보감에 적혀 있다. 이로써 똥병의 무서움을 알 수 있다.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그의 저술 민보의民堡議에서 사람의 똥을 전쟁무기로 활용하는 방안을 소상히 밝혔다. 민보의는 외적의 침입이 잦은 접경지역의 향토방위 전술전략을 연구한 저술이다. 정약용은 접경지역의 요새와 진지에 똥독을 묻어놓고 똥을 모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남녀의 뒷간을 따로 하되, 모든 똥을 모아서 물을 섞고 휘저어놓았다가 이 똥물을 대나무통에 넣어서 적이 다가오면 얼굴에 쏘라고 말했다. 똥물을 바가지로 퍼서 끼얹으면 조준이 정확하지 않고 똥물을 낭비하게 되니까 대나무에 넣어서 쏘라고 정약용은 말했다. 정약용은 이 장치를 분포糞砲'*라고 이름 지었는데, 분포를 쏘는 자는 기름 먹인 옷을 입어야 하고 전투가 끝나면 몸을 깨끗이 씻으라고 말했다. (* 대나무통 안에 피스톤을 넣어서 똥물을 전방으로 쏘아내는 장치인 것으로 보인다.) 정약용이 발명한 이 분포가 실전에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똥은 평등하다. 신분이나 계급을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성인은 하루에 200-300그램의 똥을, 1.2~1.5리터의 오줌을 눈다. 이것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나온다. 이것은 다시 집어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반드시 가져다 버려야 한다. 반드시 나오는 것을 반드시 가져다 버려야 하는데, 이 사태가 수백만 명이 사는 대도시에서 벌어질 때, 어찌 기막힌 일이 아니겠는가.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똥을 퍼다 버리는 작업이 이틀이나 사흘 지연되면 마을은 똥에 잠기고 닷새쯤 지연되면 도시가 마비된다. 나는 인분수거 작업자들이 일 못하겠다고 집단으로 아우성칠 때가 가장 무섭다. 이 것은 국가안보의 문제이고 정권의 존망에 관한 문제이다.

 

 나의 소년기에, 대책 없이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은 밥 세끼와 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한편, 매일매일 나오는 똥과 싸웠다. 똥과의 싸움은 밥 먹기 싸움에 못지않았다. 밥이 없는 시절에 똥은 골목마다 넘쳐흘렀다. 중학교 다닐 때 나는 우리집 뒷간을 칠 때면 옆에 붙어 있다가 지게가 오가는 횟수를 세었고 지게에 똥이 가득차는지를 감시했다. 똥이 덜 차서 내가 잔소리를 하면 똥 푸는 아저씨는 일부러 똥을 흘렸다. 나는 똥 흘린 자리에 연탄재를 뿌리고 삽으로 비벼서 갖다버렸다. 나뿐 아니라 우리 동네 아이들이 다 그렇게 했다. 똥 푸는 아저씨들은 새벽에 나타나서 변소 치어, 변소 치어라고 외쳤지만 어떤 아저씨들은 똥 퍼! 똥 퍼!”라고 외치기도 했는데 외치지 않아도 냄새만 맡고도 똥차가 온 줄을 다들 알았다.

 

 김훈 / ‘연필로 쓰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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