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중에서

송담(松潭) 2022. 9. 15. 21:37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중에서

 

 

 

 

 

< 1 >

 

메이지는 1852년 임자생으로 만 열네 살에 황위에 올라서 재위 사십 년을 넘기고 있었다.

 

성인이 남면해서 천하의 소리를 듣고 聖人南面而聽天下

밝음을 향해 나아가며 다스린다 嚮明而治

 

라는 중국의 <역경(易經)>에서 명치 두 글자를 따서 치세의 연호로 삼았는데 사람들은 '밝음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으로 천황을 호칭했다. 메이지의 치세는 힘을 향해 나아갔다. 그의 시대에 밝음은 힘을 따라오는 것처럼 보였고, 시대는 그 힘을 믿었다. 천황의 군대는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이겼다. 천황의 무위(武威)는 세계에 떨쳤고, 아시아의 산과 바다에 시체가 쌓였다.

 

이토는 대한제국 황제 고종을 위협해서 퇴위시키고 차남 이척을 그 자리에 세웠다. 이척은 순종이고 황태자 이은은 순종의 이복동생이나 태황제로 밀려난 고종이 살아 있으므로 이은은 황태제(皇太弟)가 아닌 황태자(皇太子)의 자리로 나아갔다.

 

순종은 황위에 오른 뒤 국내 정치에 관하여 통감의 지도를 받기로 협약했다.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협약에 도장을 찍었다. 순종은 황태자 이은을 일본 유학을 명분으로 인질로 삼으려는 이토의 강요에 저항하지 못했다. 이은을 보내면서 순종은 조서를 내렸다.

 

황제는 말한다. 우리 황태자는 영특하고 슬기로워서 (...생략..) 통감 공작 이토 히로부미로 하여금 일본에 데리고 가서 도와주고 깨우쳐주게 하며 모든 것을 대일본 제국 대황제에게 의지해서 성취하려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처음 있는 일이며, 우리나라가 끝없이 경사롭게 되는 시초이다.

 

 

< 2 >

 

 

이토는 서울에 처음 부임했을 때 똥냄새에 질겁을 했다. 어른과 아이들이 길바닥에서 엉덩이를 까고 앉아 똥을 누었고, 집집에서 아침마다 요강을 길바닥에 쏟았다. 장마 때는 변소가 넘쳐서 똥덩이가 떠다녔다. 똥냄새는 마을 골목마다 깊이 배어 있었고 남대문 거리, 정동 거리에도 똥 무더기가 널려 있었다. 통감부 직원들이 발길을 돌아다니다가 똥을 밟고 미끄러졌다는 얘기를 이토는 요정에서 술 마시다가 기생들한테서 들었다.

 

이토는 통감부와 조선 조정을 거듭 다그쳤으나 거리는 여전히 똥바다였다. 똥은 틀어막을 수가 없었고, 먹고 누는 일을 금할 수가 없었다. 통감부를 떠나면서 이토는 서울 도심에 공중변소를 늘리고 분뇨를 길에 버리는 자들을 엄단하라고 거듭 지시를 내렸다. 목숨의 안쪽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똥이란 당하기 어렵다...... 라고 이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날마다 새 똥이 거리에 널려 있었다.

 

 

< 3 >

 

 

지금, 조선의 병통(病痛)은 고루한 유생의 세력이 황실과 밀착하고 군중을 선동해서 소요를 일으키는 사태이다. 이 유생들은 대대로 산림에 칩거하면서 유수(流水)와 부운(浮雲)을 바라보면서 공맹의 치교(治敎)를 뇌까리며 사물을 외면하고 인간의 성리(性理)를 갑론을박하면서 음풍농월과 공리공론으로 허송세월해온 무리이다. 이들은 사리에 우원(迂遠)하고 시무에 오활하다. 조선 유림의 사표로 일컬어지는 최익현의 고루함을 보라. 그가 이 세계의 물성에 관하여 무엇을 아는가. 그가 역사의 층위와 발전 원리에 관해서 무엇을 알고, 시대의 전개 방향에 대해서 무엇을 아는가. 그가 힘의 작동 원리를 아는가. 그가 웅장하고 허망한 언사를 설파함으로써 약동하는 세계의 풍운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무리에게 시운을 기탁한다면 조선은 스스로 보전할 수 없다. 스스로 독립할 힘이 없는 자는 적대하는 여러 방면의 힘을 끌어들여서 그 완충의 자리에서 홀로 설 수 없다. 여러 힘들이 조선 반도에서 부딪치면 평화는 기약할 수 없다. 조선이 평화와 독립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길은 제국의 틀 안으로 순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조선의 독립이고 동양의 평화이다.

 

이토는 이 글이 사세를 조리 있고 알기 쉽게 설명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토는 계속 써내려가서 연설문 원고를 끝냈다.

 

 

< 4 >

 

 

두만강을 건너와서 안중근은 정주 하지 않았다. 안중근은 간도와 러시아령의 내륙 산간 마을들이나 연해주의 바닷가를 다니면서 한인들이 사는 꼴을 살폈다. 안중근은 하바롭스크에서 기선을 타고 아무르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강변의 선착장에 내려서 눈에 묻힌 마을에서 묵었다. 안중근은 마을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용건 없고 연고 없는 마을들이었으나, 눈으로 보고 말로 디뎌야 할 자리처럼 여겨졌다. 거기까지 이주해온 한인들이 서너 집씩 모여 있었다. 집들은 납작했다. 진흙과 돌을 섞어서 지은 집들이 담을 서로 기대고 있었다. 집집마다 여름 푸성귀를 새끼줄로 엮어서 처마밑 토담에 걸어놓았고, 사내들이 언 강에 구멍을 뚫고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들은 이동 중에 내려앉은 야생 조류들처럼 보였다.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제 고장 말투를 지니고 있었다. 함경도 사람들은 함경도 말을 썼고 평안도 사람들은 평안도 말을 썼다. 전라도 말투도 있었다. 안중근이 한국어로 말을 걸면 우선 고향을 물어왔고, 그 다음으로 행선지를 물었다. 안중근과 동향인 황해도 사람들은 쌀밥에 조껍데기술을 내놓았다. 울타리 밖에서 강물이 철썩거렸다. 아무르강은 넓어서 건너편이 보이지 않았고 흐린 하늘 아래서 강은 늘 검었다.

 

 

< 5 >

 

 

러시아령 연추는 두만강의 끝이다. 백두산에서 거기까지 흘러온 두만강이 동해와 만나는 어귀에 녹둔도가 들어앉아 있었다. 강 건너편 경흥 땅에는 강가에 작은 포구 마을들이 몇 개 들어서있었는데, 러시아령 쪽으로는 인기척이 없었다. 삼백여 년 전에 조선의 장군 이순신이 녹둔도에 쳐들어온 여진족을 물리쳐서 그 전승비가 남아 있었고, 녹둔도 앞 서수라 마을의 우암 봉수는 동북면 봉수의 시발점으로 봉수는 두만강을 거슬러올라갔다가 다시 동해안으로 내려가 안변에서 반도를 가로질러 서울 남산에 닿았다.

 

조선의 자취는 거기까지였고 강을 건너서 러시아령으로 들어가면 거기서부터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무인지경의 벌판이 펼쳐지는데 흉년에 거덜나고 탐학에 뿌리 뽑힌 조선의 세민들이 오래전부터 강을 건너와서 마을을 이루었다. 조선 이주민들은 낮은 땅에 물을 가두어 벼를 심었고 물을 댈 수 없는 땅은 돌을 골라내고 콩을 심었다. 러시아의 지방정부는 악착스럽게 일하는 한인들의 이주를 막지 않았다. 연추에서 안중근은 한인들의 집에 기식하거나 여관에 묵었다.

 

 

< 6 >

 

- 이걸 좀 봐.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군.

 

이강주필이 일본 신문 한 장을 안중근 앞으로 내밀었다. 기사는 일본 내각의 공식 발표를 인용하고 있었다. 이토는 10월 하순께 하얼빈에서 러시아 재무장관 코콥초프와 회담할 예정이었다. 신문은 이토의 만주 방문은 개인 자격의 여행인데, 유람중에 남만주철도를 시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신문 1면 상단에 이토의 인물 사진이 실려 있었다.

 

이토의 얼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안중근은 숨이 막혔다. 이토의 얼굴은 차가운 평면의 느낌이었다. 턱수염이 무성했다.

 

- 이것이 이토의 이목구비로구나. 보통 사람과 아무 차이 없구나……

 

남만주철도를 시찰한다면 이토는 시모노세키에서 기선 편으로 대련에 와서, 열차를 타고 봉천, 장춘을 거쳐서 하얼빈으로 올 것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가려면 만주의 내륙을 서북쪽으로 관통해야 한다. 여러 산맥과 강들과 산골 마을의 정거장들을 지나는 철도가 안중근의 눈앞에 펼쳐졌다. 철도는 눈과 어둠 속으로 뻗어 있었다. 그 먼 끝에서 이토가 오고 있었다. 멀리서 반딧불처럼 깜박이는 작은 빛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빛이라기보다는, 거역할 수 없이 강렬한 끌림 같은 것이었다. 두박자로 쿵쾅거리는 열차의 리듬에 실려서 그것은 다가오고 있었다.

 

 

 

< 7 >

 

이토의 마차 행렬은 대련시 중심부를 통과했다. 도독부 민정장관, 만주철도 총재, 비서관들이 동승했고, 그 뒤로 수행원들이 탄 마차가 따랐다. 기마헌병대가 대열의 선두를 인도했다. 행렬의 양옆에는 서양식 고층 건물 사이로 중국식 건물, 러시아풍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네거리에 대형 일장기가 교차 게양되어 있었다. 프록코트와 기모노를 차려입은 일본인들이 거리에 나와서 일장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이토의 행렬은 시내의 간선도로를 동서로 지나가고 남북으로 지나가고 외곽으로 돌면서 환영을 받았다.

 

점심시간에 이토는 공립학교를 시찰했다. 교장과 교직원들이 일장기를 들고 정문에 도열해서 이토를 맞았다. 교장실에 군복을 입은 메이지의 어진이 걸려 있었다. 이토는 교직원들과 함께 어진에 배례했다. 학교장이 설명판을 세워놓고 학교의 연혁과 현황을 보고했다. 이토는 교직원들에게 훈시했다.

 

-본국에서 멀리 떨어져서 이국인들 틈에서 자라나고 있으니, 생도들의 정서가 퇴폐와 방종으로 흐르지 않도록 교육하라.

 

교장이 전교생 이백여 명을 운동장에 집합시켰다. 이토와 교장은 구령대 위에 차일을 치고 앉았다. 일동이 음악 교사의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기미가요를 합창했다. 이토는 일어서서 함께 불렀다.

 

임의 시대는

천년만년 동안

자갈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필 때까지

 

체육 교사의 지도로 생도들이 체조를 펼쳤다. 타격 동작을 율동으로 바꾼 격술 체조였다. 교사의 호루라기에 맞추어서 오와 열이 전개되었다. 체조가 끝나고, 이토가 또 생도들에게 훈시했다.

 

- 제군들의 용모가 단정하고 동작이 절도 있고 규칙이 엄정함을 알겠다. 강인한 정신은 반듯한 외양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몸을 바르게 하라. 지금 처해 있는 자리가 인간의 근본이다. 제군들의 자리는 학교이고 가정이고 마음이고 국가이다. 그래서 제군들은 국가에 속해서 혼연일체이다. 이것이 수신의 요체다.

 

생도들이 박수 쳤다. 생도대장이 대표로 감사의 말씀을 올렸다. 이토는 전교생에게 기념품으로 연필과 센베이를 주었고, 성적이 우수한 세 명에게 특별상으로 영어 사진을 주었다.

 

환영연은 공회당에서 열렸다. 공회당 마당에 만국기가 걸렸고 정문에 'welcome'이라고 적힌 간판의 전등이 켜졌다. 이토가 중앙 테이블에 앉고 청국 공사, 러시아 공사와 그 부인들이 옆에 앉았다. 도독부 고등관, 대련시 관리들이 섞여서 앉았고 군복을 입은 무관들도 보였다. 사내들의 기름 바른 머리가 번들거렸고 여자들의 화장품 냄새가 자욱했다. 시내 유명 요정에서 선발된 게이샤들이 테이블을 돌며 포도주를 따랐다.

 

대련 시장이 이토에게 기념 연설을 부탁했다. 이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얻어서 풍류 여행에 나섰는데, 러시아와 청국에서 여러 고관들이 이처럼 나를 맞아주시니, 여러 나라가 문명의 혜택을 공유하기를 원하고 있음을 알겠다. 이제, 동양에 있어서 고래의 모든 역사는 물러가고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있다. 문명의 길에서는 앞선 자가 선의로써 뒤처진 자를 개발 유도할 책무가 있다. 나는 이 책무를 수행함으로써 동양의 평화를 이루고자 한다.

 

일본인 관리들이 연설 중간중간에 박수 쳤다. 이토가 손짓으로 박수를 제어했다. 러시아와 청나라 외교관들이 머뭇거리면서 박수 쳤다. 예기(藝妓)들이 샤미센 반주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 8 >

 

이토를 기다리면서 안중근은 우덕순을 데리고 하얼빈 시내를 돌아다녔다. 하얼빈은 크고 낯선 도시였다. 정복을 입은 러시아 경찰들이 거리를 순찰하고 있었다. 안중근은 혹시라도 가두 검문에 걸리지 않도록, 세상을 엿보듯이 조심해서 걸었다.

 

시내 중심가에 러시아정교회 교회당의 돔이 높이 솟아 있었다. 정장 차림의 러시아 귀부인들이 지체 높은 남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마차에 올랐고, 중국인 노인들이 추운 거리에서 숯불 담은 깡통을 끼고 앉아 마작을 두고 있었다. 저녁밥을 준비하는 여자들이 야채와 생선, 두부가 담긴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술집들이 저녁 장사를 준비하면서 생선 굽는 연기를 거리로 내보냈다. 퇴근하는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오자 담배팔이들이 몰려들었다.

 

짐마차 마부들이 일거리를 기다리면서 길에서 선술을 마셨고,짐을 실은 마부들이 채찍을 휘둘러서 어두워지는 거리의 저쪽으로 달려갔다.

 

'신천지'라는 요정이 교토 출신 미녀 다섯 명을 엄선해서 데려다놓았다는 광고를 가로수에 붙였고, 그 아래쪽에는 새로 수입한 매독 특효약과 은단 광고가 붙어 있었다. 덩치가 크고 털이긴 러시아 개들이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행인들을 쳐다보았고 까마귀들이 저무는 숲으로 날아갔다.

 

안중근은 전혀 모르던 세상을 보는 사람의 놀라움으로 저물어가는 하얼빈 거리를 구석구석 바라보았다. 거리는 안중근의 망막에 사진 찍히듯 각인되었다. 거듭되는 전쟁의 결과에 따라서 하얼빈을 둘러싼 패권은 엎치락뒤치락했으나, 지금 하얼빈의 저녁은 고요해 보였다. 우덕순은 말없이 안중근의 뒤를 따라서 걸었다.

 

새로 산 옷을 싸 들고, 안중근은 우덕순을 이발소로 데려갔다.

 

- 머리를 깎자. 잡힐 때 깔끔한 게 좋겠다. 새 옷도 입고.

- 그렇겠구나.

 

이발소 거울에 하얼빈 거리가 비쳤다. 거울 속에서 마차가 지나가고 러시아 사람, 청나라 사람들이 지나갔다. 거울 속에서 안중근과 우덕순이 마주보며 웃었다. 이발사가 의자를 뒤로 젖히고 더운 물수건을 안중근의 얼굴에 덮었다. 안중근은 따스한 습기를 빨아들였다. 우덕순은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기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귀밑에서 이발사의 가위 소리가 사각거렸다. 이발사는 머리카락을 아래서부터 위쪽으로 다듬어 올라갔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가자 목덜미가 서늘하고 이목구비가 선명히 드러나는것 같았다. 안중근은 거울 속의 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저것이 나로구나....... 내가 살아서 이토를 쏘는구나……

 

이발을 마치고 안중근은 우덕순을 데리고 사진관으로 갔다.-사진을 찍자.

 

- 돈이 모자랄 텐데………

- 겨우 된다.

 

- 지금 찍으면 찾을 수가 있겠나!

 

- 없다. 그래도 찍어두면 남는다. 새로 산 옷을 입고 찍자.

 

- 오늘 호강하는구나.

 

둘은 사진관 의자에 앉았다. 사진사가 카메라 뒤에서 러시아 말로 뭐라고 소리치더니 셔터를 눌렀다. 새 옷을 입은 두 사람의 몸 매무새와 이발을 한 이목구비가 사진에 찍혔다. 안중근은 사진값으로 이 루블을 냈다. 러시아인 사진사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이며 닷새 후에 와서 사진을 찾아가라고 말했다. 닷새 후에 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안중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 9 >

 

 

안중근은 총을 쥔 오른팔을 앞으로 뻗었다. 아직은 나타나지 않은 표적을 향해서 안중근은 조준선을 정렬했다. 눈동자, 가늠자, 가늠쇠로 이어지는 일직선 위에서 시선이 떨렸다.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가늠쇠 너머에 표적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표적으로 시력을 집중할수록 표적은 희미해졌다. 표적에 닿지 못하는 한줄기 시선이 가늠쇠 너머에서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보이는 조준선과 보이지 않는 표적 사이에서 총구는 늘 흔들렸고,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방아쇠를 거머쥐고 머뭇거렸다.

 

방아쇠를 당기고 나면 실탄이 총구를 떠나는 순간 조준선은 지워졌고 총의 반동이 손바닥과 어깨에 걸렸다. 비틀린 조준을 다시 회복하고 나면 표적은 다시 안개 속에 묻혔다.

 

저것이 이토로구나...... 저 작고 괴죄죄한 늙은이가...... 저 오종종한 것이……

 

안중근은 러시아 군인들 틈새로 조준선을 열었다. 이토의 주변에서 키 큰 러시아인들이 서성거려서 표적은 가려졌다. 러시아인과 일본인들 틈에 섞여서 이토는 이동하고 있었다. 이토는 가물거렸다.

 

안중근의 귀에는 더 이상 주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러시아인들 틈새로 이토가 보였다. 이토는 조준선 위에 올라와 있었다.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가 방아쇠를 직후방으로 당겼다. 손가락은 저절로 움직였다.

 

총의 반동을 손아귀로 제어하면서 다시 쏘고, 또 쏠 때, 안중근은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 가늠쇠 너머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이토의 모습이 꿈속처럼 보였다. 하얼빈역은 적막했다.

 

탄창에 네 발이 남았을 때, 안중근은 적막에서 깨어났다. 나는 이토를 본 적이 없다………… 저것이 이토가 아닐 수도 있다…………

 

안중근은 다시 조준했다. 안중근은 고요히 집중했다. 손바닥에 총의 반동이 가득찰 때 안중근은 총알이 총구를 떠난 것을 알았다. 이토 주변에 서 있던 일본인 세 명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을 몸으로 덮쳤다. 안중근은 외쳤다.

- 코레아 후라

 

안중근은 쓰러지면서 총을 떨어뜨렸다. 탄창 안에 쏘지 못한 한 발이 남아 있었다.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의 몸을 무릎으로 눌렀다. 안중근은 하얼빈역 철도 가에서 묶였다.

 

궁내성 비서관과 시위들이 쓰러진 이토를 객차 안으로 옮겼다. 주치의가 이토의 외투를 벗기고 몸을 살폈다. 이토의 몸안으로 들어온 총알은 탄도가 교란되어서 파행했다. 총알은 이토의 몸속을 휘저은 후 추진력이 다해서 흉곽 안에 박혀 있었다.

 

이토는 숨을 몰아쉬었다. 비서관이 범인은 조선인이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고 보고했다. 이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 바보 같은 놈

 

이토는 곧 죽었다. 이토는 하얼빈역 철로 위에서 죽었다.

 

 

< 10 >

 

 

순종은 메이지에게 위로의 전문을 보냈다.

 

- 오늘 이토 공작이 하얼빈에서 흉악한 역도에게 화를 당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통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삼가위로를 보냅니다.

 

순종은 황실의 모든 잔치를 폐했고, 서울에 사흘 동안 가무음곡을 금했다. 순종은 도쿄에서 이토의 영결식이 열리는 시간에 서울 장충단에서 거국적 관민추도회를 열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순종은 이토에게 문충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순종은 대신과 관리들과 민간인 대표들을 거느리고 통감부로 가서 이토의 빈소에 조문하고 조위금 십만원을 전했다. 문은 덕을 널리 펼침이고 충은 국가에 헌신한다는 뜻이라고 순종은 이토에게 내린 시호의 뜻을 한국 통감 소네에게 설명했다. 소네는 듣고, 말하지 않았다.

 

이토의 시신을 실은 장송열차는 지체 없이 하얼빈을 떠났다.

 

대한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 고위 관리들을 데리고 서둘러 대련으로 왔다. 대련항에 정박중이던 군함 아키쓰시마가 이토의 시신을 싣고 일본 요코스카항으로 떠났다. 군함이 출항하기 직전에 이완용 일행이 군함에 올라와서 이토의 시신에 분향하고 절했다.

 

 

< 11 >

 

 

뮈텔 일행은 짐꾼 다섯 명을 거느리고 해주로 향했다. 동학의 세력은 힘을 잃었지만 난리통에 마을이 흩어져서 장이 서지 않았다. 여인숙들은 문을 닫았고 불탄 마을들은 재가 되어 주저앉았다. 동학군이 마을을 약탈하고 지나가면 관군이 들어와서 동학군에게 식량을 내준 백성들을 잡아갔다. 동학군이 관아를 불지르고 아전들을 죽이면 아전의 아내가 동학군의 은신처를 밀고했고, 끌려가서 죽임을 당한 동학군의 아들이 밀고자를 죽였다. 삼 년쯤 전에 이 지역에서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이 포수와 청년들을 모아서 군사 조직을 갖추고 마을을 위협하는 동학군을 쳐부수었는데, 그때 열여섯 살 난 안중근이 그 선봉의 역할을 했다고 빌렘은 뮈텔에게 말해주었다. 뮈텔은 안중근의 골격을 바라보면서 족히 그럴 만한 위인이라고 생각했다. 안중근은 키가 작고 다부졌고, 땅을 힘주어 디디고 걸었다.

 

안중근은 또 말했다.

 

- 주교님께서는 서울 한복판에 이런 거대한 성당을 이룩하셨으니, 뜻을 정하시면 대학교를 세우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뮈텔은 말했다.

 

- 교회는 하느님께서 세우신다. 세속의 일을 교회의 일에 빗대어 말하지 마라. 아름답지 않다.

 

안중근은 뮈텔을 찾아온 것을 후회했다. 안중근은 주교관 창밖으로 대성당의 종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종탑이 저녁노을에 빛났다.

 

뮈텔이 말했다.

 

- 조선에 대학교는 가당치 않다. 조선인은 우선 교회 안으로들어와야 한다. 조선인이 학문을 배우면 신심을 해치게 된다. 좋지 않다. 다시는 이런 말을 꺼내지 마라.

 

안중근은 뭐라고 더 할 말을 참는 듯하다가 돌아갔다. 뮈텔은안중근을 데리고 황해도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빌렘을 나무라고 싶었다. 뮈텔은 돌아가는 안중근의 뒷모습에서 불손한 기운을 느꼈다. 그후로 안중근은 소식이 없었다.

 

범인이 안중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뮈텔은 황해도 산골에서길을 안내하던 안중근과 대학교를 세워달라고 들이대던 안중근을 떠올렸다. 이토가 죽은 뒤에 안중근이 천주교인인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뮈텔은 안중근이 이미 천주교인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총으로 쏘아 죽이는 방식으로 증오를 표출한 천주교인의 죄악에 뮈텔은 상심했다. 백 년이 넘는 박해의 세월을 견디면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는 순교의 피 위에 세속의 거점을 경우 확보한 조선 교회가 또다시 세속 권력과 충돌한다면 교회의 틀이 위태로워질 것을 뮈텔은 걱정했다. 뮈텔은 자신의 걱정을 신부와 신도들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안중근은 사제를 능멸했고 교회의 가르침을 배반했으며, 교회 밖으로 나가서 살인의 대죄를 저질렀으므로, 그가 비록 영세를 받았다 해도 더 이상 교회의 자식이 아니라고 뮈텔은 하느님께 고했다. 하느님은 세속의 일에 관하여 대답하지 않았다.

 

 

< 12 >

 

 

열차는 단조로운 리듬으로 흔들리면서 대륙을 건너갔다. 먼 산들이 크게 돌면서 흘러갔고, 열차를 따라오던 강들이 저무는 산맥의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대륙은 아무의 땅도 아닌 것처럼 허허로웠는데, 사람들의 불빛이 흩어져 있었다.

 

큰아들 분도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고 젖냄새는 기억난다. 둘째 아들 준생은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준생은 지금 젖을 떼었는가. 아내는 준생에게 마음을 먹이면서 평양에서 하얼빈까지 왔겠구나…………

 

열차는 남쪽으로 달렸다. 안중근은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고 눈꺼풀 안쪽에 붉은 반점들이 떠다녔다.

 

거기에, 비틀거리는 이토의 모습이 떠올랐다. 총알 세 발이 명중한 것은 확실했다. 이토의 몸속에 총알이 박힐 때, 총알이 안중근의 몸에 신호를 보내오는 듯했다. 안중근은 그 신호를 믿었다. 그리고 조준선 너머에서 이토가 비틀거렸고, 키 작은 일본인이 이토를 부축했다. 그때 머릿속이 하얗게 뒤집혔다. 저것이 이토가 맞는가 싶어서 그 옆의 인물들도 쏘아서 맞혔다.

 

장춘을 지나자 산맥들이 멀어지고 강폭이 넓어졌다. 대륙은 바다를 향해서 내려앉고 있었다. 11월의 대륙은 비어서 휑했다. 한참을 달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먼 능선에서 눈이 회오리쳤고 가까운 숲이 흔들렸다. 대륙은 말라서 버스럭거렸다.

 

열차는 이토가 대련에서 하얼빈으로 온 철도를 거꾸로 달려서, 하얼빈에서 대련으로 향했다. 안중근은 이틀째 자지 못했다. 몸이 열차의 리듬에 감겨서 졸음이 쏟아졌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가본 적 없는 대련이 안중근의 마음에 떠올랐다.

 

이토의 나라는 대련을 쳐부수어서 차지했고, 대련을 발판으로 하얼빈으로 진출했다. 하얼빈역 플랫폼은 내가 이토를 쏘기에 알맞은 자리고, 이토가 죽기에 알맞은 자리다.

 

호송열차는 11월 3일 오후에 대련에 도착했다. 안중근은 관동도독부 여순감옥에 갇혔다. 마차에 실려서 감옥으로 가면서 안중근은 커튼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방파제 너머로 여러 나라에서 온 기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대련은 번창한 항구였다. 접안한 배에서 인부들이 등짐을 지어서 화물을 내렸고, 화물 마차 수십 대가 부두에 대기하고 있었다. 항구는 바빠 보였다. 시가지에는 붉은 벽돌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고 옥상에서 깃발이 펄럭였다.

 

감옥은 백옥산 아래 있었다.

 

 

< 13 >

 

- 이토 공의 수행원에게도 쏘았는가?

- 누가 이토인지 몰랐기 때문에 이토의 오른쪽으로도 쏘았고 그다음에 왼쪽으로 쏘았다.

 

- 성공하면 자살할 생각이었는가?

- 아니다. 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서는 단지 이토를 죽인 것만으로는 죽을 수 없다.

 

- 그런 원대한 계획이었다면 범행 후 체포당하지 않으려 했을 텐데, 도주할 계획을 세웠는가?

- 아니다. 나쁜 일을 한 것이 아니므로 도주할 생각은 없었다.

 

질문이 답변을 누르지 못했다. 질문과 답변이 부딪쳐서 부서졌고, 사건의 내용을 일정한 방향으로 엮어나가지 못했다. 답변이 질문 위에 올라탈 기세였다. 피고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힘주어 말했다. 진술은 유불리를 떠나 있었다.

 

마나베는 더 이상 재판을 공개하면 공공의 안녕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다고 선언하고 방청객에게 퇴정을 지시했다. 변호사가 마나베에게 안중근의 의견을 서면으로 접수해달라고 요청했다.

 

마나베가 안중근에게 말했다.

- 그대의 정치적 의견을 서면으로 제출하면 어떤가?

- 나는 말하기 좋아서 여러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거사는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다. 공개를 금지한 이상 진술할 필요는 없다.

 

- 앞으로도 진술하지 않겠는가?

- 방청객이 없으면 진술하지 않겠다. -

 

- 그렇다면 앞으로 진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바를 지금 진술하라.

 

- 나의 목적은 동양 평화이다. 무릇 세상에는 작은 벌레라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 된 자는 이것을 위해서 진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토는 통감으로 한국에 온 이래 태황제를 폐위시키고 현 황제 자기 부하처럼 부렸다. 또 타국민을 죽이는 것을 영웅으로 알고 한국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십수만 한국 인민을 파리 죽이듯이 죽였다. 이토, 이자는 영웅이 아니다. 기회를 기다려 없애버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하얼빈에서 기회를 얻었으므로 죽였다.

 

- 필요한 몇 가지를 말하겠다. 내가 이토를 죽인 까닭은 이토를 죽인 이유를 발표하기 위해서다. 오늘 기회를 얻었으므로 말하겠다. 나는 한국 독립전쟁의 의병 참모중장 자격으로 하얼빈에서 이토를 죽였다. 그러므로 이 법정에 끌려 나온 것은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객으로서 신문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이토가 한국 통감이 된 이래 무력으로 한국 황제를 협박하여 을사년 5개 조약, 정미년 7개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한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서 싸우고 있고 일본 군대가 진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일본과 한국의 전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렇게 깊이 나간다면 공개를 제지할 수밖에 없다. 방청인들은 모두 퇴정......

 

진술을 제지하고 방청객들을 내보낼 때마다 마나베는 위기를 느꼈다. 사실관계를 파고들수록 정치성이 드러나고 있었고, 외국 언론들의 관심은 높아졌다. 마나베는 서둘러서 모든 일을 끝냈다. 공판은 1910년 2월 7일, 8일, 9일, 10일, 12일, 14일에 열렸다. 재판 절차는 일주일 만에 모두 끝났다. 넷째 날에 검찰관 미조부치가 의견 진술 후 구형했고, 다섯째 날에 일본인 국선변호인들이 변론했고, 여섯째 날인 14일에 재판장 마나베가 선고했다.

 

재판장 마나베는 판결문을 건조하게 쓰기로 방침을 정했다. 일한 협약 1조에 따라서 일본 정부는 외국에 있는 한국인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므로 이 범죄에는 한국 형법이 아니라 일본 형법을 적용한다고 마나베는 재판의 법적 근원을 밝혔다. 공모와 실행 과정의 사실관계는 검찰 신문조서대로 인정했다.

 

마나베는 안중근이 이토를 살해한 죄에 사형을 선고하고, 이미 사형을 결정했으므로 안중근이 이토의 수행원에 대해 저지른 세 건의 살인미수죄에 대해서는 형을 과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또 우덕순에게는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비교적 가벼운 삼년 형에 처한다고 선고했다. 수사와 재판은 모두 끝났다.

 

간수가 안중근과 우덕순에게 용수를 씌우고 마차에 실어서 여순감옥으로 끌고 갔다. 마차가 법원 마당을 떠날 때 방청객들이 몰려와서 구경했고, 기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 14 >

 

 

황해도 산골 마을에서, 겨울이 오는 소리는 가랑잎이 바람에 몰려가는 소리와 밤중에 어둠 속을 울리는 다듬이 소리였다. 차가운 공기가 팽팽해서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 가랑잎은 메마른 소리로 버스럭거렸고, 다듬이 소리는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어져나갔다. 마을 끝에서 잦아들던 다듬이 소리는 어느 집에서인지 다시 살아나서 이웃집의 소리를 끌어가며 마을 안으로 들어왔고, 흘러나갔다. 개들도 소리를 이어나갔다. 덩치 큰 개들의 소리가 깊게 울렸고 작은 개들은 높고 가파른 소리로 짖었다.

 

저녁기도를 드리면서 빌렘은 청계동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리와 겨울이 오는 소리를 들었다. 크고 깊은 울림으로 짖는 개는 저녁 산책할 때 저수지 둑방에서 마주친 개가 아닌가 싶었다. 누런 개는 혀를 빼물고 나무꾼 소년을 따라가고 있었다. 마을에서 자주보는 개였다. 조선의 개들은 사람의 표정을 닮아 있었다.

 

빌렘은 다듬이질하는 여인들과 그 여인의 남편들, 마을 개들의 친구인 아이들의 영혼의 평안과 죄의 사함을 위해 기도했다. 빌렘은 다듬이 소리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전해지는 사람의 기척이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이기를 기도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성령이 인도해서 이 가엾은 나라에 살육이 멎고 평화가 깃들기를 빌렘은 기도했다.

 

 

< 15 >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전보를 받고, 뮈텔은 백 년 전에 처형당한 천주교인 황사영의 죽음을 생각했다. 황사영은 박해를 피해 달아나다가 캄캄한 산골의 옹기굴 속으로 숨어들어가서 북경 주교 구베아에게 보내는 문서를 썼다. 황사영은 비단 보자기 한 장에 일만 삼천여 자를 썼다. 황사영은 순교와 박해의 실상을 소상히 기록하고 서양 나라의 선박 수백 척과 군사와 대포로 조선 조정을 협박해서 천주교인을 죽인 죄를 물어야 한다고 구베아 주교에게 호소했다. 훗날 이 글은 백서帛書라고 불렸다.

 

황사영은 토굴에서 체포되었다. 황사영은 몸이 여섯 토막으로 잘려서 거리에 버려졌고, 일족은 멸문되었다. 황사영은 스물일곱 살에 죽었다.

 

뮈텔은 조선 조정의 문서 창고를 뒤져서 황사영의 보자기글 원문을 찾아내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본국으로 보냈다. 황사영의 글을 번역하면서 뮈텔은 이 천둥벌거숭이의 몽매함에 한숨 쉬었고 순수한 신앙의 열정에 목이 메었다.

 

안중근은 자신에게 영세를 베푼 사제를 향해서 '국가 앞에서는 종교도 없다'는 황잡한 말을 하고 교회 밖으로 나가서 이토를 죽였는데, 황사영은 서양 군함을 몰고 와서 국가를 징벌해달라고 북경의 주교에게 빌고 있었다. 두 젊은이는 양극단에서 마주서서, 각자의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황사영은 국가를 제거하려다가 죽임을 당했고 안중근은 국가를 회복하려고 남을 죽이고 저도 죽게 되었는데, 뮈텔은 이 젊은이들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를 가엾이 여겼다. 황사영에서 안중근에 이르는 백 년 동안 두 젊은이의 국가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갔다. 황사영은 서양의 군함을 부르다가 몸이 토막나서 죽었는데, 황사영이 죽임을 당한 후에 프랑스 신부 아홉 명이 또 죽임을 당했고, 천주교인을 길라잡이로 세운 프랑스 군함이 한강을 거슬러 서강西江까지 올라와서 국가를 겁박하고 강화도를 약탈했으니,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헤아리기 어려웠다.

 

뮈텔은 신앙과 문명을 군함에 실어서 세계에 전하는 조국 프랑스와 프랑스 왕과 프랑스 군대와 프랑스 교회를 위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은 후에도 뮈텔의 날들은 경건했다.

 

 

< 16 >

 

 

사형선고를 받고 사흘 후에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했다. 재판과정에서 검찰관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을 들으면서 안중근은 항소는 쓸데없는 짓이 될 것임을 알았다. 이 세상의 배운 자들이 구사하는 지배적 언어는 헛되고 또 헛되었지만 말쑥한 논리를 갖추어서 세상의 질서를 이루고 있었다. 검찰관과 변호사는 한나절씩 번갈아가며 길게 말했다. 신문기자들이 그 말들을 받아적고 있었다. 안중근은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자리의 우덕순도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었다.

 

안중근은 고등법원장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항소 포기의 뜻을 밝혔다. 안중근은 죽기 전에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니, 형의 집행을 3월 25일까지 연기해달라고 고등법원장에게 탄원했다. 달력을 보니까 3월 27일이 부활절이었다. 3월 26일은 부활 성야를 맞는 신성한 날이므로 죽기에 합당치 않았다. 부활절에 죽을 수는 없었고 부활절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죽어 있어야 부활의 은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그래서 3월25일은 죽기에 합당한 날들 중에서 맨 마지막 날이었다. 고등법원장은 안중근의 탄원에 대답하지 않았다.

 

< 17 >

 

 

빌렘 신부와 면회를 허락한다는 통보를 받고 안중근은 집행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안중근은 『안응칠 역사』를 쓰기를 서둘렀다. 글은 재판이 시작되는 대목까지 나아가 있었다.

 

면회 날에 막냇동생 안공근이 빌렘을 모시고 왔다. 우리가 안중근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허리를 포승으로 묶어서 면회실로 데려왔다. 면회실에는 구리하라 전옥이 통역관을 데리고 입회해 있었다.

 

안중근과 빌렘은 대면하는 인사도 없이 자리에 마주앉았다. 안공근이 옆자리에 앉았다. 빌렘은 자리에 앉아서 성호를 그었다. 안중근이 먼저 안공근에게 말했다.

 

- 오늘 네가 잘 왔다.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하얼빈에 묻어라. 하얼빈은 내가 이토를 죽인 자리이므로 거기는 우선 내가 묻힐 자리다. 한국이 독립된 후에 내 뼈를 한국으로 옮겨라. 그전까지 나는 하얼빈에 묻혀 있겠다. 이것은 나의 유언이다. 내 뜻에 따라다오.

 

 

< 18 >

 

 

아침에 옥리들이 감방에 새 옷을 넣어주었다. 안중근은 집행절차가 시작되었음을 알았다. 고향에서 어머니가 보내온 명주두루마기와 바지가 개어져 있었다. 두루마기는 흰색이고 바지는검은색이었다. 안중근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흰 두루마기 아래로 검은 바지 자락이 드러났다. 명주 두루마기는 부드럽고 포근했다. 새 옷의 향기가 몸에 스몄다.

 

옥리 네 명이 안중근을 앞뒤로 감시해서 사형장으로 갔다. 사형장은 감옥 구내 북쪽 모퉁이에 있었다. 아침에 안개비가 내렸다. 사형장으로 가면서 안중근은 안개를 들이마셨다. 안개에 바다의 냄새가 스며 있었다. 안중근은 몸속으로 펼쳐지는 바다를 느꼈다.

 

사형장에는 미조치 검찰관, 구리하라 전옥이 통역과 서기를 데리고 미리 와 있었다. 안중근이 중앙에 앉고, 미조부치 일행은연극의 관객처럼 빙 둘러앉았다.

 

구리하라 전옥이 집행을 선언하고 나서 안중근에게 말했다.

- 할말이 더 있는가?

 

안중근이 대답했다.

- 없다. 다만 동양 평화 만세를 세 번 부르게 해다오.

 

구리하라가 말했다.

- 허락하지 않는다.

 

옥리들이 안중근의 머리에 흰 종이를 씌웠다. 안중근은 종이가 버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옥리가 안중근의 겨드랑을 팔에 끼고 계단 위로 올라갔다. 옥리가 안중근의 목에 밧줄을 걸고, 교수대 바닥을 밟았다. 바닥이 꺼졌고, 안중근의 몸이 허공에 매달려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십일 분 후에 검시의 檢屍醫가 절명을 확인했다. 안정근, 안공근이 감옥 문 앞에 와서 시신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구리하라가 옥리를 보내서

 

- 불가하다.

라고 통보했다.

안정근, 안공근은 땅을 치며 울었다.

 

옥리들이 안중근의 몸을 마차에 싣고 가서 감옥 공동묘지에묻었다. 하관 때 가는 비가 내렸고, 문상객은 없었다. 관동도독부는 집행 날짜를 25일로 정해놓고 있었으나 서울의 통감부가25일은 한국 황제의 생일이므로 날짜를 바꾸어야 한다고 여순감옥에 전보로 알렸다. 집행은 하루 연기되었다. 안중근은 3월26일에 죽었다.

 

 

< 19 >

 

후기

 

소설이 감당하지 못한 일들을 후기에 적는다. 여기서부터는 소설이 아니고 안중근의 거사 이후 그의 직계가족과 문중의 인물들이 겪어야 했던 박해와 시련과 굴욕, 유랑과 이산과 사별에관한 이야기다.

 

안중근 1879~1910

 

안중근의 거사 이후 팔십 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는 공식적으로 안중근의 행위를 역사 속에서 정당화하지 않았고 교리상으로 용납하지 않았다. 안중근은 1910년의 뮈텔 주교의 판단에 따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한 '죄인'으로 남아 있었다.

 

1993년 8월 21일 서울 대교구장인 김수환 추기경은 안중근 추모 미사를 집전했다. 이 미사는 한국 천주교회가 안중근을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최초의 미사였다. 김 추기경은 이날 미사의 강론에서

 

- 일제 치하의 당시 한국 교회를 대표하던 어른들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대해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릇된 판단을 내림으로써 여러 가지 과오를 범한 데 대해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연대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안중근의 행위는 '정당방위'이고 '국권회복을 위한 전쟁 수행으로서 타당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2000년 12월 3일 한국 천주교회는 대희년을 맞아서 ‘쇄신과 화해'라는 제목의 문건을 발표하고 한국 교회가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이름으로 발표된 이 문건은 한국 교회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안중근현양 사업을 선도적으로 전개해왔다.

 

1945년 광복 직후에 김구는 여순감옥 공동묘지에 묻힌 안중근의 유해를 발굴해서 봉환하려는 노력을 시작했고, 그후로 정부와 민간의 유해 발굴 노력은 계속되어왔다. 2006년 남북한이 합동으로 발굴단을 구성해 조사를 실시했으나 성과가 없었고, 그후로 유해의 행방에 관한 유의미한 정보는 없다.

 

1946년 3월 26일 안중근 순국 36주기를 맞아 서울운동장에서십만 군중이 모인 가운데 기념식이 열렸다. 1946년 7월에 김구의 주도하에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 묘가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으로 이장되었다. 이봉창 묘 옆자리에 안중근의 가묘가 마련되어서 유해가 봉환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우덕순 禹德淳, 1879~1950

 

우덕순은 출감 후 만주로 가서 대종교에 참여해서 항일운동을계속했다. 우덕순은 광복 후 귀국해서 대한국민당 최고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안중근 현양 사업을 펼쳤다. 우덕순은 1950년 서울에서 사망했다.

 

 

< 20 >

 

작가의 말

포수, 무직, 담배팔이

 

 

안중근은 체포된 후 일본인 검찰관이 진행한 첫 신문에서 자신의 직업이 '포수'라고 말했다. 기소된 후 재판정에서는 '무직'이라고 말했다. 안중근의 동지이며 공범인 우덕순은 직업이 '담배팔이'라고 일관되게 말했다.

 

포수, 무직, 담배팔이, 이 세 단어의 순수성이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등대처럼 나를 인도해주었다. 이 세 단어는 생명의 육질로 살아 있었고, 세상의 그 어떤 위력에도 기대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청춘의 언어였다. 이 청년들의 청춘은 그다음 단계에서의 완성을 도모하는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폭발했다.

 

이 청년들의 생애에서, 그리고 체포된 후의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세 단어는 다른 많은 말들을 흔들어 깨워서 시대의 악과 맞서는 힘의 대열을 이루었다. 깨어난 말들은 관념과 추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날것의 힘으로 일어서서 말들끼리 끌고 당기며 흘러가는 장관을 보여주었는데, 저 남루한 세 단어가 그 선두를 이끌고 있었다.

 

이 대하(大河)의 흐름은 일본인 법관들이 작성한 신문조서와 공판 기록 속에서 출렁거리고 있다. 적들의 공문서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말들이 악의 구조를 머리통으로 들이받아서, 강과 약의 이항대립으로 구성되는 이 세계의 벽을 부수고 있다.

 

( ...생략...)

 

한국의 근대는 문명개화의 꿈에 매혹되었고 제국주의의 폭력에 짓밟혔다. 이 문명개화는 곧 서구화였고, 한국인이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이미 이룩한 문명은 개화의 추동력에 합류할 수 없었다. 20세기 초의 한반도에서 과거는 미래를 감당할 힘을 상실했고 억압과 수탈을 위장한 문명개화는 약육강식의 쓰나미로 다가왔다.

 

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 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 실탄 일곱 발이 쟁여진 탄창 한 개, 그리고 '강제로 빌린(혹은 빼앗은)'여비 백 루블이 전부였다. 그때 그는 서른한 살의 청춘이었다.

 

( ...생략...)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 '무직'이며 '포수'인 안중근은 약육강식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

 

2022년 여름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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