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이해인
귀로 듣고
몸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고
전인적인 들음만이
사랑입니다
모든 불행은
듣지 않음에서 시작됨을
모르지 않으면서
잘 듣지 않고
말만 많이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네요
아침에 일어나면
나에게 외칩니다
들어라
들어라
들어라
하루의 문을 닫는
한밤중에
나에게 외칩니다
들었니?
들었니?
들었니?
- 시집 <작은 기도>에서
시를 쓰는 사람은 감성이 예민하여 종종 외로움을 탈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저는 어린 시절과 달리 수녀원에 와서 오히려 활달하고 명랑한 쪽으로 성격이 바뀌었고, 그래서 ‘외롭다’는 말을 좀체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도 어느 순간 가장 외로움을 느끼느냐고 누가 제게 묻는다면 기껏 마음먹고 무슨 말을 시작했는데 그 아무도 주의 깊이 들어주지 않을 때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여럿이 모여 대화하는 자리에서도 말하는 이에게 끝까지 정성을 다하기보다는 사이사이 끼어들어 원래 말하려는 이보다 더 길게 말하고, 누가 스마트폰을 들고 나가면(양해를 구했더라도) 이내 관심이 흩어지기도 해서 말하는 이를 힘 빠지게 만드는 일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대화를 할 적엔 말하는 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주의 깊게 듣기, 부탁받은 심부름을 좀 더 정확히 하기 위해 반복해서 되물어보기, 잊어버리지 않도록 메모하기, 미사 중의 강론이나 식당에서의 공동독서를 딴생각하지 않고 귀담아듣기 등등 몇 가지의 결심을 다시 해보는 오늘, ‘경청은 절제이며 겸손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경청의 태도는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중 하나이다’라는 격언을 되새겨 봅니다.
(2019.7.22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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