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 이해인
오늘은
맨발로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한번은 하느님의 통곡으로
한번은 당신의 울음으로 들렸습니다
삶이 피곤하고
기댈 데가 없는 섬이라고
우리가 한번씩 푸념할 적마다
쓸쓸함의 해초도
더 깊이 자라는 걸 보았습니다
밀물이 들어오며 하는 말
감당 못할 열정으로
삶을 끌어안아 보십시오
썰물이 나가면서 하는 말
놓아 버릴 욕심들을
미루지 말고 버리십시오
바다가 모래 위에 엎질러 놓은
많은 말을 다 전할 순 없어도
마음에 출렁이는 푸른 그리움을
당신께 선물로 드릴게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슬픔이 없는 바닷가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로 춤추는 물새로
만나는 꿈을 꾸며
큰 바다를 번쩍 들고 왔습니다
- 시집 <작은 기쁨>에서
바다는 오늘도 나에게 친구처럼 어머니처럼 스승처럼 많은 이야기를 건네옵니다. 꿈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원한 바다, 넉넉한 바다, 그리움의 바다를 곁에 두고 사는 저는 오늘도 바다에 나가지 않고도 바다를 들고 와서 마음이 답답하고 좁아지려 할 적마다 바다를 꺼내 끌어안는 바다의 연인입니다.
어느 날 쓴 바다 시 한 편을 다시 읽어보며, 행복한 여름 아침!
“내가 눈이 맑은 어린이들과/ 바닷가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꿈을 꾸고 난/ 행복한 아침/ 오래 된 친구와 같이/ 바닷가에 나갔더니/ 물새들이 달려와 반겨줍니다/ 흰 모래 위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사랑을 고백하는 행복/ 이 사랑은 하도 깊고 넓어서/ 고백의 말이 끝나질 않네요/ 기다리다 못해/ 푸른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며/ 끝도 없는 내 마음/ 대신 고백해 줍니다.”
(2019.8.19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