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어머니의 그륵

송담(松潭) 2019. 10. 20. 20:47

 

 

어머니의 그륵

 

정일근

 

  투박한 그릇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록, 그륵 중얼거려 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럽다

 

 

 

 

오늘 그대가 한 일들을 떠올려 보라

 

조지 엘리엇

 

명상 일러스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해가 기울고 하루가 저물면 가만히 앉아

 오늘 그대가 한 일들을 떠올려 보라

 누군가의 마음을 달래 줄 따뜻한 말 한마디

 세심한 배려의 행동

 햇살 같은 친절한 눈빛이 있었는지를

 그랬다면 그대는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고 생각해도 좋으리라

 

 하지만 하루가 다 지나도록

 누구에게도 작은 기쁨을 주지 않았다면

 온종일 그 긴 시간에도

 누군가의 얼굴에 햇살을 비춘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친 영혼을 달래 준 아주 사소한 일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날은 차라리 없는 것보다 더 나쁜 날이었다고 하리라

 

 

 

내가 이제 깨달은 것은

작가 미상

 

 

 사랑 일러스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내가 이제 깨달은 것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은 정말 일어난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숨길 수 없다는 것

 '하룻밤 사이의 성공'은 보통 15년이 걸린다는 것

 어렸을 때 여름날 밤 아버지와 함께

 동네를 걷던 추억은 일생의 버팀돌이 된다는 것

 삶은 두루마리 화장지 같아서 끝으로 갈수록 더욱 빨리 사라진다는 것

 돈으로 인간의 품격을 살 수 없다는 것

 삶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작은 일들 때문이라는 것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

 

 

나이

 

김재진

 

이별 일러스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나이가 든다는 것은 용서할 일보다

 용서받을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보고 싶은 사람보다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다리고 있던 슬픔을 순서대로 만나는 것이다.

 세월은 말을 타고 가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침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도 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안도현

 

게 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게는 이 세상이 질척질척해서

 진흙 뻘에 산다

 진흙 뻘이 늘 부드러워서

 게는 등껍질이 딱딱하다

 그게 붉은 투구처럼 보이는 것은

 이 세상이 바로 싸움터이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설 줄 모르고

 게가 납작하게 엎드린 것은

 살아 남고 싶다는 뜻이다

 끝끝내

 

 그래도 붙잡히면?

 까짓것, 집게발 하나쯤 몸에서 떼어주고 가는 것이다

 언젠가는 새살이 상처 위에

 자신도 모르게 몽개몽개 돋아날 테니까

 

 

눈 내리는 풍경 일러스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공기가 무겁다. 커튼을 열자 눈발이 날린다. 첫눈이다. 부탄에서는 첫눈 오는 날이 국경일이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는 우정과 사랑의 약속처럼, 부탄 정부와 국민이 한 약속이다. 고산의 건조한 땅에 눈은 귀한 물이 된다. 식수가 되고 농수가 된다. 눈이 오면 농부들은 싱싱한 채소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한다. 그처럼 농부들의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뜻에서 국경일로 정했다. 경제 총생산량보다 행복 총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부탄이란 나라의 목표이다.

 

 큰돈 들이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들, 눈이 그렇다. 눈이 내리면 시간은 따스하고 느리게 흐른다. 그리고 누구나 눈에 얽힌 에피소드 몇 개쯤은 갖고 있다. 설담(雪談)이다. 교육 사업을 하는 Y대표가 이야기가 있다.

 

 Y대표는 최전방에서 군 생활을 했다. 그에게 가장 힘든 일은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한겨울 새벽에 서는 경계 근무였다. 맹렬한 추위에 11초라도 교대 시간이 빨리 오기만을 바라지만 기다림은 시간을 더디 흐르게 한다. 그러나 군대에서 시간을 빠르게 흐르게 하는 방법 또한 기다림밖에 없다. 두툼한 하얀 이불을 덮은 듯 정지된 풍경 속에 유일하게 움직이는 건 함께 근무를 서는 동료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는 어느 순간 동료와 등을 딱 붙이고 서 있었다. 마주한 등에서 동료의 체온이 전해졌다. '따뜻한가요?'라고 굳이 묻지 않아도 되었다. 혹한의 추위를 견디는 데 그 작은 미열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충분하다는 것은 단지 많음이 아니다. 무르익기 위한 축적의 시간일 수도 있고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조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순간이라도 우리가 기뻐하고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이미 모든 것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아닌 어떤 상태, 추위 속에서 동료의 체온이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 주는 것처럼.

 

 무수한 말보다 따스한 한마디로 위로를 받고, 많은 수의 친구보다 마음을 오롯이 나눌 수 있는 한 명이라도 있으면 우리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충분하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 나만의 기쁨을 만들어 가는 조건들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울 수 있지 않을까.

 

 알래스카 원주민 이누이트 족의 토착어에는 훌륭한이란 단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훌륭한 사냥꾼도 없고 훌륭한 남자도 없고 훌륭한 여자도, 훌륭한 인간도 없다. 우리는 존재하므로 살아간다. 그러니 시시한 인생도 훌륭한 인생도 없다. 세상은 지금 나의 존재만으로 충분하다.

 

 지나치게 훌륭해지려는 노력들이 우리를 상심에 빠트리고 아프게 한다. 나 자신과 타인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더 이상 훌륭해지려고 너무 애쓰지 말라. 그럼에도 자꾸만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면 틱낫한 스님의 말을 기억하라.

 

 “한 송이 꽃은 남에게 봉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 오직 꽃이기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 사람의 존재는 만일 그가 진정한 인간이라면 온 세상을 기쁘게 하기에 충분하다.”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는 말, 참 멋지지 않은가.

 

  푸른하늘 일러스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사십대

 

고정희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인생은 아름다워

쥘 르나르

  편안 일러스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매일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이렇게 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

 눈이 보인다

 귀가 들린다

 몸이 움직인다

 기분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고맙다!

 인생은 아름다워

 

 김선경/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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