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로부터
복효근
푸른 수액을 빨며 매미 울움꽃 피우는 한낮이면
꿈에 젖은 듯 반쯤은 졸고 있는 느티나무
울퉁불퉁, 나무의 발등
혹은 발가락이 땅 위로 불거져나왔다
군데군데 굳은 살에 옹이가 박혔다
먼 길 걸어왔던 뜻이리라
화급이 바빠야 할 일은 없어도 나도
그 위에 앉아 신발을 벗는다
그렇게 너와 나와는
참 멀리 왔구나 어디서 왔느냐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느냐
어디로 가는 길이냐 물으며 하늘은 보는데
무엇이 그리 무거웠을까 부러진 가지
껍질 그 안쪽으로
속살이 썩어 몸통이 비어가는데
그 속에 뿌리를 묻고 풀 몇 포기가 꽃을 피워
잠시 느티나무의 내생을 보여준다
돌아보면
삶은 커다란 상처 혹은 구멍인데
그것은 또 그 무엇의 자궁일지 알겠는가
그러니 섣불리
치유를 꿈꾸거나 덮으려 하지 않아도 좋겠다
때 아닌 낮 모기 한 마리
내 발등에 앉아 배에 피꽃을 피운다
잡지 않는다
남은 길이 조금은 덜 외로우리라
다시 신발끈을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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