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박용래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이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외양간 처마 밑에 걸어둔 마른 시래기에
싸락눈 들이치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다 떠난 적막한 고향 마을 밤 깊도록
잠 못 들고 계실 어머님의 기침소리가 들린다.
눈이라도 오면 문 열고 나가
‘뭔놈의 눈이 이리 밤새 퍼붓는다냐’시며
고무신에 쌓인 눈을 터실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슬프고도 애잔한, 그러나 진정한 시인의
삶을 살고 간 사람 박용래.
그는 충청도 시골의
울음 많은 시인이었다.
엄마
정채봉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히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 사나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 ‘엄마’를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다. 그가 말을 배우기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 사나이가 어느 날 운주사 와불을 찾아가서 신을 벗고, 양말도 벗고, 커다란 와불 팔을 베고 겨드랑이를 파고들며 이 세상 처음으로 가만히 엄마를 불러본다. 이 사나이는 바로 정채봉 선생이 아닐까? 늘 불러도 처음 같은 말 “엄마!” 하얀 눈이 오는 이 겨울, 그가 눈송이를 따라 엄마 곁으로 갔다. 엄마를 부르러.
김용택 / ‘시가 내게로 왔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