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겨울밤

송담(松潭) 2019. 12. 6. 06:07

 

 

 

겨울밤

                                                박용래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이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외양간 처마 밑에 걸어둔 마른 시래기에

 

싸락눈 들이치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다 떠난 적막한 고향 마을 밤 깊도록

 

잠 못 들고 계실 어머님의 기침소리가 들린다.

 

 

눈이라도 오면 문 열고 나가

 

뭔놈의 눈이 이리 밤새 퍼붓는다냐시며

 

고무신에 쌓인 눈을 터실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슬프고도 애잔한, 그러나 진정한 시인의

삶을 살고 간 사람 박용래.

그는 충청도 시골의

울음 많은 시인이었다.

 

 

 

 

 

 

 

엄마

                     정채봉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히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 사나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 엄마를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다. 그가 말을 배우기도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 사나이가 어느 날 운주사 와불을 찾아가서 신을 벗고, 양말도 벗고, 커다란 와불 팔을 베고 겨드랑이를 파고들며 이 세상 처음으로 가만히 엄마를 불러본다. 이 사나이는 바로 정채봉 선생이 아닐까? 늘 불러도 처음 같은 말 엄마!” 하얀 눈이 오는 이 겨울, 그가 눈송이를 따라 엄마 곁으로 갔다. 엄마를 부르러.

 

 

김용택 / ‘시가 내게로 왔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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