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느티나무로부터

송담(松潭) 2019. 10. 28. 22:15

 

 

 

 

느티나무로부터

복효근

 

 

 

 

 

 

 

 

 

 

푸른 수액을 빨며 매미 울움꽃 피우는 한낮이면

꿈에 젖은 듯 반쯤은 졸고 있는 느티나무

울퉁불퉁, 나무의 발등

혹은 발가락이 땅 위로 불거져나왔다

군데군데 굳은 살에 옹이가 박혔다

먼 길 걸어왔던 뜻이리라

화급이 바빠야 할 일은 없어도 나도

그 위에 앉아 신발을 벗는다

 

그렇게 너와 나와는

참 멀리 왔구나 어디서 왔느냐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느냐

어디로 가는 길이냐 물으며 하늘은 보는데

무엇이 그리 무거웠을까 부러진 가지

껍질 그 안쪽으로

속살이 썩어 몸통이 비어가는데

그 속에 뿌리를 묻고 풀 몇 포기가 꽃을 피워

잠시 느티나무의 내생을 보여준다

 

돌아보면

삶은 커다란 상처 혹은 구멍인데

그것은 또 그 무엇의 자궁일지 알겠는가

그러니 섣불리

치유를 꿈꾸거나 덮으려 하지 않아도 좋겠다

 

때 아닌 낮 모기 한 마리

내 발등에 앉아 배에 피꽃을 피운다

잡지 않는다

남은 길이 조금은 덜 외로우리라

다시 신발끈을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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