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안수정등(岸樹井藤)/허업가(虛業家)의 꿀맛

송담(松潭) 2008. 1. 15. 11:32
 

 

허업가(虛業家)의 꿀맛



 원래 권력(權力)이라고 할 때, '권(權)'자의 옥편적(玉篇的) 의미는 '저울의 추'를 가리킨다. 저울의 추가 있어야 어떤 물건의 무게를 잴 수 있다. 그러므로 '추'라고 하는 것은 기준, 평가, 균형의 기능을 지닌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마오쩌둥의 권력에 대한 정의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였다. 매우 추상적인 개념을 아주 단순하게 정리한 경우이다. 경험을 해 본 사람은 복잡한 현상을 매우 단순화시키는 힘이 있다. 이 정의에 의하면 권력은 총을 잡은 사람이 갖는 힘이다. 아프리카의 독재자 이디 아민은 '정치권력은 곧 지배하는 것을 말하고, 지배의 본질은 폭력이다'라고 설파하였다.


'권력은 바로 폭력'이라는 말이다. 매우 원색적인 설파가 아닐 수 없다. 소설가 이병주에 의하면 '정치권력은 난로와 같아서 가까이 가면 화상을 입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춥다'고 했다. 권력에 당하기도 해 보고, 너무 소외되어서 춥고 배고파 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YS, DJ와 함께 40년이 넘는 '정치 삼국지' 스토리를 써 온 JP가 한 말도 대단하다. '정치는 허업(虛業)을 쌓는 일이다'.


 한국 현대사의 정치권력의 파란만장을 겪어 본 JP의 말이다. 실업(實業)의 반대가 허업 아닌가! 나는 JP의 말을 듣고 이 세상에 허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치가는 실업가의 반대인 허업가(虛業家)인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허업이 되고 마는 것을 왜 하는가? 왜 '허업가'의 길을 굳이 가는 것인가? 명리학자의 입장에서는 '팔자 때문에 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선가(禪家)의 화두 가운데 안수정등(岸樹井藤) 화두가 있다. 어떤 사람이 코끼리에 쫓겨 정신없이 도망을 치다가 나무에 걸려 있는 칡 덩굴을 잡고 매달렸다. 그 아래에는 깊은 우물이 있었고, 우물 속에는 큰 뱀 세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검은 쥐와 흰쥐는 매달려 있는 이 칡 덩굴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데, 칡 덩굴 사이에 있는 벌집에서는 꿀이 한두 방울씩 그 사람의 입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허업가는 '꿀이 달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조용헌/2008.1.15 조선일보

 

 

 안수정등(岸樹井藤)

 

안수(岸樹 강기슭의 나무)란, 강가에 겨우 서 있기는 하지만 만일 폭풍을 만나면 견디지 못하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큰 나무와 같이 위태롭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정등(井藤)은 '우물속의 등나무'라는 말이다.

 

한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무서운 코끼리가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코끼리를 피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사 네마리가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둘러보니 작은뱀들이 혀를 낼름거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아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자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지려고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흰쥐와 검은쥐 두마리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아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만일 쥐가 쏠아서 등나무 넝쿨이 끊어지거나, 두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사들에게 잡아먹히는 수밖에 없는 신세다.

 

그 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꿀을 받아먹는 동안엔 자기의 위태로운 처지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코끼리는 무상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의미하고,

등나무 넝쿨은 생명을, 검은쥐와 흰쥐는 밤과 낮을 의미한다.

작은 뱀들은 가끔씩 몸이 아픈 것이고, 독사는 죽음을 의미한다.

달콤한 꿀물방울은 인간의 오욕락(五慾樂)

 - 재물, 이성, 음식, 명예, 편안함에의 욕망이다.

급박한 상황에 놓여있으면서도 그 꿀 한 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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