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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公無渡河)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공무도하(公無渡河)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화면 속의 가을은 늦가을이었다. 저수지 뒤쪽 오리나무숲이 헐거웠고 갈수기의 수면은 낮았다. 울타리 위로 감이 익었고 하루의 밭일을 마친 늙은 부부가 경운기를 몰아서 저수지 뚝방길을 건너가고 있었다. 군청색 함석지붕과 녹슨 붉은색 지붕들이 격렬한 부조화를 이루었고, 그 위에 햇빛이 부딪혔다. 녹신 지붕들이 햇빛을 튕겨내면서 막무가내로 색을 뿜어냈고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오리나무숲은 고요했다. 녹으로 삭아가는 함석지붕은 풍화의 시간 속에서 신생의 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팔레트에서 배합할 수 없는 낯선 색이었다. 저녁을 맞는 작은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뛰어오른 물고기들의 몸통이 석양에 반짝 빛났고, 물고기들이 다시 물에 잠기면 동그라미로 주름지는..

김훈 소설 2009.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