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권력의 노예인가
니체는 인간은 권력의 노예라고, 헤겔은 세계사는 권력의 투쟁사라고 주장하였다.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상들이 너무도 많다. 인간의 역사는 피로 쓰인 역사이다. 인간이 흘린 피는 권력 싸움에, 투쟁에 바친 피였다.
스탈린은 집권하는 동안 2,000만 명을 숙청하였고 권력투쟁에 패배하여 멕시코로 망명간 볼세비키를 암살하였다. 미남청년을 첩자로 보내 볼세비키 여비서의 연인이 되게 하여 볼세비키의 환심을 산 후 자연스럽게 볼세비키의 거처를 방문하곤 하였다. 어느 날 미남청년은 볼세비키의 집을 방문하여 집필 중에 있는 볼세비키의 뒤통수를 망치로 쳐서 암살하였다.
히틀러는 2차 대전 때 스탈린글라드에서 독일군 20만 명을 희생시켰다. 2차 대전에 동원되었던 소련, 항가리, 폴란드의 100만 대군은 전선에서 희생당하거나 동사당하고, 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간 병사는 6,500명 이었다고 한다.
모택동은 장개석과의 마지막 전투인 1946년 8월의 싸움에서 장개석 군 50만 명을 거의 전멸시켰다. 그리고 1949년 10월 1일 붉은 깃발을 천안문 광장에 꽂았다. 그의 집권 말기에는 중국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한 해에 3,000만 명씩이나 나온 적이 있었다. 그의 정권연장을 위한 문화혁명 때는 1,500만 명이 숙청당하였다. 그리고도 그는 중국의 영웅으로 지금도 불러진다.
고대 로마의 카르타고와의 싸움에서 로마군은 17일 동안이나 카르타고 사람들을 살육하였다. 그 때 카르타고 사람들은 거의 전멸하였다고 한다.
인간의 역사는 살육의 역사였다. 함께 평화롭게 살 수는 없을까? 토플러의 연구에 의하면 2차 대전 후 총소리 없는 날은 불과 3주였으며 군인은 720만명이 사망하였고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도 3,300만 명에서 4,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1차 대전 때 군사망자는 840만 명이었고 2차 대전시 군 사망자는 1,500만 명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모습인가?
김종재/ 인간관계론(박영사, 2003, p312)
<참고>
6.25 전쟁 당시 한국군 및 UN 군 피해상황 (단위 : 명) | ||||||
|
구분 |
계 |
사망/전사 |
부상 |
실종/포로 |
|
|
계 |
776,360 |
178,569 |
555,022 |
42,769 |
|
|
한 국 군 |
621,479 |
137,899 |
450,742 |
32,838 |
|
|
U N 군 |
154,881 |
40,670 |
104,280 |
9,931 |
|
6.25 전쟁 당시 남측, 북측 민간인 피해상황 (단위 : 명) | |||||||
|
합 계 |
남 한 민 간 인 |
북한민간인 |
| |||
|
계 |
사망/학살 |
부상 |
납치/행불 |
| ||
|
2,490,968 |
990,968 |
373,599 |
229,625 |
387,744 |
1,500,000 |
|
6.25 전쟁 당시 북측 공산군 피해상황 - 추정 (단위 : 명) | ||||||
|
구 분 |
전투 손실 |
비전투 손실 |
계 |
| |
|
인 민 군 |
520,000 |
? |
? |
| |
|
중 공 군 |
900,000 |
? |
? |
| |
|
계 |
1,420,000 |
46,000 |
1.455.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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