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소수와 희생적 소수
윤 석 철 / 서울대 교수
토인비(Toynbee)는 도전(挑戰, challenge)과 응전(應戰, response)이라는 개념으로 역사 속의 흥망을 설명했다. 가혹한 자연환경이나 외적의 침입 등 어느 문명권의 존속을 위협하는 문제의 발생을 토인비는 도전으로 정의했다. 이러한 도전에 대하여 이들 문명권이 응전에 성공하면 그 문명권은 계속 존속.발전할 수 있고, 실패하면 소멸해 간다는 것이 토인비의 역사이론이다.
도전을 적시에 인식하고 그에 성공적으로 응전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가진 주체를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라고 불렀다. 역사 속을 살아가는 어떤 조직이 소멸하지 않고 존속.발전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창조적 소수의 지속적 탄생 여하에 있을 것이고, 창조적 소수가 고갈된 조직은 결국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 즉 국가, 민족, 기업, 심지어는 가계(家計)까지도 소위 무한경쟁 속에서 그 존속을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보면, 과연 창조적 소수만으로 우리가 이 어려운 세계를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래서 생존의 본질을 간직하고 있는 자연 생태계 속의 기본 원리에서 답을 찾아보자. 우리가 먹는 식물성 식품은 식물이 태양 에너지를 광합성(光合成)하여 만들어낸 것이고, 육류나 생선 같은 동물성 식품도 먹이사슬을 따라가 보면 동물이 식물을 먹고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석탄이나 석유같은 에너지 자원도 광합성의 산물인 동식물이 땅에 묻혀서 탄화된 것들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생명의 근원은 태양에너지에서 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태양에너지 자체는 어디서 오는가? 태양 속에서는 수소(hydrogen)가 융합하여 헬륨(helium)이 되는 화학반응이 계속 일어난다. 이 때 반응전후 질량의 총합이 일치하지 않는 신비로운 현상이 발견된다. 반응 전 수소 질량의 0.6%가 어디로 소실(消失)되는 것이다. 이 소실된 만큼의 질량(M)이 E=MC2에 해당하는 에너지로 변환되고 이것이 태양에너지이다.(아인슈타인 발견) 다시 말하면 수소의 0.6%가 자신을 소실(희생)시켜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태양에너지가 된 것이다.
인간사회에서도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공동체 구성원 일부의 자기희생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 1960년대 미국의 경제원조가 중단되면서 우리나라는 외환부족 위기에 빠졌고, 우리 정부는 서독에 약 3천만 달러의 차관을 요청했다. 한국정부의 상환능력을 의심한 서독정부는 한국의 간호원, 광부들을 다수 서독에 파견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이 서독에서 받는 급료는 서독의 은행에 예치될 것이고, (한국이 차관을 못 갚을 경우 이 예금을 동결하면) 이것이 한국에 준 차관의 담보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서독정부는 예상한 것이다.
당시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300달러를 넘지 못한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에 많은 간호원, 광부들이 서독행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들이 서독에서 받는 급료는 서독 은행에 머물지 않고 받는 즉시 80% 이상이 한국으로 송금됨으로서 서독 정부의 예상을 빗나가게 했다.
자기희생적으로 열심히 일한 간호원, 광부들 덕분에 대학을 졸업한 동생, 오빠. 아들, 딸들이 한국 경제건설의 주역이 되었고, 서독 정부가 염려했던 차관상환은(이들이 예치한 예금에서가 아니라) 이들로부터 송금 받아 공부한 가족들이 이룩한 경제성장 덕분에 문제없이 해결되었다.
인간은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고, 국가나 기업, 공공단체는 가정도 물론 공동체이다. 이들 공동체가 발전하려면 공동체를 위해 자기희생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헌신적 선구자들을 우리는 희생적 소수(self-sacrificing minority)라고 부르자. (토인비가 말하는) 창조적 소수에 못지않게 희생적 소수 역시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절대 필요한 존재이다. 이들이 계속 배출되는 가정이나 기업, 국가는 발전을 거듭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집단은 쇠퇴해 갈 것이다.
김종재 교수님은 광주, 전남 지역에서 교육에 헌신하시면서, 많은 학습조직(learning organization)을 창설하여 이 지역의 지적(知的), 정신적, 문화적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하셨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겪으신 희생에 대한 보상도 사절하셨다. 김종재 교수님이야말로 한국 근대사 속의 창조적 소수이며, 동시에 희생적 소수이다.
- 滿江에 배 띄우고/용봉인적자원연구회편, 전남대학교 출판부(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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