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일본 역사의 시대구분

송담(松潭) 2009. 12. 10. 11:49

 

일본 역사의 시대구분

 

 

일본의 역사는 나라를 다스리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4단계로 나눌 수 있고, 나라를 다스리는 주체가 자리잡은 지역이 어디냐에 따라 다시 11개의 시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4단계는 1)국가 형태이전(BC1만년~AD3세기), 2)천황통치시대(4세기~1192년), 3)막부시대(1192~1868년), 4)메이지 유신 이후(1868~현재)로 나눌 수 있다. 국가 형태 이전은 글자 그대로 아직 국가 형태를 이루기 전으로 AD3세기 무렵까지다. 섬나라인 탓에 대륙으로부터 문화의 전래도 늦었고 이웃 국가와의 다툴 일도 없었던 만큼 국가 형성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단계는 천황통치시대다. 여느 다른 국가와 같이 한명의 절대 군주가 다스리는 군주정치시대다. 4세기 무렵부터 가마쿠라 막부시대가 시작되는 1192년까지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일본만의 특수한 정치형태인 막부(幕府)시대다. 이 막부시대는 천황은 명목상의 군주일 뿐 실제 권력은 쇼군(將軍)이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 막부시대를 유럽의 봉건시대와 비유한다. 유럽과 같은 역사 과정을 밟아왔다는 논리적 근거다. 막부시대는 일본 근대화의 게기인 1868년 메이지 유신 때까지 이어진다.

 

네 번째 단계는 메이지 유신부터 현재까지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 외국에 문호를 열기 시작한 일본이 1868년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메이지 유신과 함께 국가 통치권은 막부 쇼군의 손에서 천황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1945년 2차 대전(일본에서는 태평양전쟁이라고 한다.)에서 패하고 난 뒤 천황은 자신은 신이 아닌 인간임을 선언한다. 천황은 과거 막부시대처럼 상징적인 위치로 돌아가고 국가 통치권은 주권재민에 따라 국민에게 주어진다.

 

막부시대는 가마쿠라시대, 무로마치시대, 전국(戰國)시대, 아즈치 모모야마시대, 그리고 에도(江戶)시대 5단계로 구분된다. 전국시대는 1573년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 다이묘들을 제압하고 쇼군 요시아키를 추방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전국시대는 106년(1467~1573년)간 진행되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전국 통일로 시작된 아즈치 모모야마시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이어 권력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넘어가는 1603년까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시작된 에도시대는 1603년부터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는 1868년까지 265년간 진행된다. 쇼군은 지금의 도쿄인 에도에서 전국을 통치한다. 그리고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천황제로 돌아갔다가 77년 뒤 2차 대전에서 패하면서 오늘날의 입헌군주국이 된다.

 

신동기 / ‘희망, 인문학에게 묻다’중에서

 

 

 

< 2 >

 

일본의 3대 영웅

 

 시대적 배경

 

근세 일본의 역사를 바꿔놓은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 : 15341582),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 15371598),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 15421616) 이들 3인은 일본의 영웅으로 손꼽히는 인물로 같은 시대에 태어나 패권을 다투는 경쟁관계에 있기도 했지만 힘의 균형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주군과 신하로서 주종관계를 형성하며 정권을 대물림했다.

 

 1467년 무로마치 막부 이후 혼란한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는데 이들 세 사람은 모두가 오와리(尾張) , 현재의 아이치현(愛知県) 출신이었다.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는 노부나가를 섬기고, 그 후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에게 복종해 기묘하기 이를 데 없는 연속 제휴 게임에 의한 바톤 터치로 인해 얽히고설킨 일본이 통일되었다.

 

 개성이 다른 3대 영웅의 성격 및 업적 비교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영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다혈질의 성격으로 격정적이며 용맹스럽고 잔인한 반면 결단력과 과단성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장기간에 걸친 전국전란의 시대에 통일의 한 획을 그어준 전제무장 (專制武將)으로써 여러 정책을 과감하게 실시하였다. 구체제구관습의 타파와 인제등용, 은 광산의 경영, 화폐의 주조, 도로교량의 정비, 관소(關所)의 폐지 등 혁신적인 정책으로 새 시대의 도래에 대응하였다 

 1543년 일본에 처음으로 전래된 화승총을 누구보다도 먼저 입수하여 대량 생산하고, 일본에 처음으로 도착한 포루투갈 선교사를 재빨리 고문으로 맞아 총을 이용한 서양식 전술, 즉 집단전법과 기습전법을 도입함으로써 재래식 무기와 전법으로 대항하는 주변의 무장들을 차례로 격파하여 마침내 정치, 경제의 중심부인 교토와 긴키(近畿) 지역을 재패했다. 그러나 서일본을 공략하던 중 1582년 자신의 심복 부하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에게 기습적으로 일격을 당한 '혼노지(本能寺)의 변()'으로 허무하게 할복자살하고 말았다.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당시에는 신분 차별이 엄격했기 때문에 감히 무사계급에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미천한 신분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발한 아이디어와 적극적인 행동으로 노부나가의 눈에 들기 시작하면서 승승장구하며 출세가도를 달렸다. 히데요시는 꾀가 많은 지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전법은 정공법보다는 간접적인 공격, 즉 수공(水攻), 화공(火攻), 아사(餓死), 지연작전 등의 전략을 구사하여 자기편의 손실은 최소화하면서 상대편의 항복을 이끌어 낸 예가 많다. 전공을 세우고 승승장구하여 노부나가의 아들 노부카츠(織田信雄)를 굴복시킴으로써 정권을 장악하여 명실공이 제1인자가 된 후 8년에 걸쳐 일본 전국을 통일했다.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영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12년간이나 인질로 붙잡혀 있어야 했다. 인질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힘이 약했기 때문에 자신이 어른으로 성장하고 본국이 강해질 때까지 온갖 수모를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참지 못하고 반항하거나 탈출을 기도했다면 그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그는 국력 신장을 위해 아들 낳기에 힘쓴 결과 무려 11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이 아들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함으로써 막부 정권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다목적으로 활용했다. 히데요시의 사후 그의 아들 히데요리를 할복케 하고, 히데요시의 미완의 통일을 완전히 이루어 냈다. 그는 에도에 무사들의 집단인 막부를 세우고, 임진왜란으로 단절된 조선과의 무역을 재개 하였다. 그의 지배력은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막부가 소멸될 때까지 260여년을 갔으므로, 실로 인간승리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3대 영웅에 대한 일화와 교훈

 

이와 같이 개성이 다른 무장 3인의 성격을 적절히 묘사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손 안에 있는 새가 울지 않는 상황'에서 각각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다혈질에 성미가 급하기 때문에 과단성 있는 결단력을 발휘하여 울지 않으면 새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즉시 죽여 버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꾀가 많고 적극적인 성격에 자존심도 강하기 때문에 새에게 자극을 주든가 놀라게 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새를 기어코 울게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이 새를 쥐고 있는 한 도망가지는 못할 것이니 죽지 않도록 새에게 먹이를 주고 보호하면서 '언젠가 울 때까지 느긋하게 기디린다'.

 

 세 사람의 인생도 오다(織田) 49, 도요토미(豊臣) 62, 도쿠가와(德川) 75세로 그들의 성격과 우연히도 일치하여 성질이 급한 순서대로 죽었다.

 

 한편 이들의 성격과 행동 양식은 오늘날 기업의 경영 전략에 있어서도 경영자의 스타일과 관련하여 경영 서적이나 잡지에 자주 비유인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건설업이 극심한 불황으로 경영 위기를 맞게 되었을 경우 오다의 경우에는 사업을 즉시 폐업한 후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해 버리고, 도요토미의 경우에는 구조 조정에 착수하여 사업 구조를 재편성하고 종업원을 감축하거나 새로운 거래처를 개척하는 등 어떻게 해서든 난국을 타개하려 안간힘을 쓰며, 도쿠가와의 경우에는 때를 기다리면 다시 호황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당장은 적자를 감수하면서 꾸준히 경영해 나가는 스타일로 비유되고 있다.

 

 경영 환경과 업종에 따라서 장단점이 있겠지만 변화의 시대에 신속한 의사 결정으로 때를 놓치지 않는 오다형, 적극적이고 공격적 경영을 이끄는 도요토미형, 시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대기만성의 도쿠가와형으로 곧잘 비유되고 있다.

 

 

전국시대의 통일 - 오다가 떡살을 찧고, 도요토미가 반죽하여 맛을 낸 천하(天下)라는 떡을 힘 안들이고 먹은 것은 도쿠가와이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0) 2017.01.30
건국절 제정이 필요 없는 이유  (0) 2016.09.27
세계사 메모  (0) 2009.01.19
인간은 권력의 노예인가  (0) 2006.09.09
창조적 소수와 희생적 소수  (0) 200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