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절 제정이 필요 없는 이유
여당에서 ‘건국절’ 제정을 추진한다고 한다. 1948년 8월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새로 ‘건국절’을 제정한다는 것이다. 건국절 제정은 이명박 정부 때 시도한 일이 있었다. ‘광복절’이란 국경일을 없애고, 그 대신에 ‘건국절’로 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이를 다시 추진하려는 것이다.
실현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역사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1948년 8월15일은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1919년 4월11일 중국 상해에서 건립됐다. 같은 해 3월1일 ‘독립국’임을 선언한 독립선언이 발표된 후, 상해에서 독립국의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다.
다시 ‘건국절’ 제정을 추진하려고 하지만,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미 ‘건국’을 기념하는 국경일이 있다는 점이다. ‘개천절’이 그것이다.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12월 국무회의에서 국경일 제정을 논의했고, 국회 역할을 하던 임시의정원의 결의를 거쳐 3·1절(3월1일), 헌법발포일(4월11일), 개천절(음력 10월3일)을 국경일로 정했다. 3·1절은 독립을 선언한 날, 헌법발포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을 공포한 날, 개천절은 단군이 건국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1919년 4월11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하였지만 이를 ‘건국’이라 표현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대한민국’을 건립했다고 해서 이를 건국이라고 한다면, 남들은 한국민족이 1919년에 처음 국가를 세운 것으로 알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한 데도 이유가 있었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 전에 이미 국가를 건립해 조직적 정치생활을 해 온 문화민족이라는 것을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매년 음력 10월3일에 기념식을 거행했고, 그때마다 독립신문에서는 개천절의 의미를 ‘건국기념일’ 또는 ‘건국기원절’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정부도 국경일을 제정했다. 1949년 10월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법률 제53호)을 통해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을 국경일로 공포한 것이다. 이 중 제헌절과 광복절은 새롭게 제정한 것이고, 3·1절과 개천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제정한 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알아두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건국절’을 제정하려고 하지만, 이는 이미 기념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복절이 바로 그것이다. 광복절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1945년 8월15일의 해방, 1948년 8월15일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동시에 기념하고 있는 것이 광복절이다.
1948년 9월 국무회의에서 국경일을 제정할 때, 8월15일을 기념하는 명칭은 ‘독립기념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해 자주독립을 이루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8월15일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날이기도 하고, 1945년에 해방된 날이기도 했다. 그 이전에 즉 1946년과 1947년에도 8월15일에 기념식을 가졌는데, 그 명칭은 ‘해방기념일’이었다. 8월15일이 가지고 있는 ‘해방’과 ‘정부 수립’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을 수 있는 용어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빛을 되찾다’ ‘잃었던 주권을 되찾다’는 뜻의 ‘광복절’이란 명칭으로 바꾼 것이다.
역사적 사실도 아니고, 더욱이 이미 기념하고 있는 국경일이 있다. 건국절 제정, 불필요한 일이다. 대한민국을 건립했지만, 이를 건국이라 하지 않고, 단군이 건국한 것으로 ‘건국기념일’을 정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들의 지혜와 정신이 그리워진다.
한시준 | 단국대 사학과 교수·동양학연구원장
(2016.9.27 경향신문)
교육부, 역사교과서 건국론 강행하나
교육부가 중·고교생이 사용하는 역사부도의 편수용어 가운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1948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꿀 것을 출판사들에 요구했다고 한다. 역사부도는 지도와 그래픽 위주로 만든 역사교과서 부교재를 말한다. 교육부는 출판사들이 “저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하자 공문을 보내겠다고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장 올해 말 새 역사부도의 검·인정 심사를 받아야 하는 출판사들 입장에서는 이만한 압박도 드물 터이다. 교육부의 이런 태도는 검정체제인 역사부도의 내용을 국정 체제인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대한민국 건국 개념과 시점을 송두리째 바꾸려는 중대사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건국을 1919년 수립된 상해임시정부가 아니라 1948년 이승만 정부 수립으로 규정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 법통을 상해임시정부로 규정한 헌법을 무시하는 처사이자 3·1운동과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을 나라 없는 개인의 행위로 깎아내리는 일이다. 정부가 지난해 다수 시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할 당시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결정 이후 집필진은 물론 편수기준마저 일절 공개하지 않아 ‘깜깜이 집필’ 논란을 자초했다. 정부는 집필진과 편수기준을 공개하면 집필에 방해될 것이라고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정치공작하듯이 밀실에서 진행하는 국정 역사교과서가 역사적 진실을 담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국정 역사교과서에 건국절 왜곡 외에 친일 행각과 군사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 같은 비밀 집필은 제대로 된 감수가 어려워 교과서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부실 교과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인 내년에 박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역사교과서를 보고 싶어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소망 때문에 졸속 교과서 제작을 강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는 역사부도에 대한 반역사적 수정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 역시 즉시 철회하는 게 맞다. 다양성이 생명인 역사교과서에 대통령과 뉴라이트의 편향된 역사관을 담는다면 시민들로부터 거센 역풍을 맞을 것이다.
(2016.9.27 경향신문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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