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때로는 죽음도 희망이 된다

송담(松潭) 2021. 1. 29. 15:33

때로는 죽음도 희망이 된다

 

 

잠자듯, 소풍에서 돌아오듯

 

그러나 아직도 죽음은 나에게 희망이다. 그 못할 노릇을 겪고 나서 한참 힘들 때, 특히 아침나절이 고통스러웠다. 하루를 살아낼 일이 아득하여 숨이 찼다. 그러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는 하루를 살아낸 만큼 내 아들과 가까워졌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저만치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 죽음과 내 아들과의 동일시 때문에 죽음을 생각하면 요새도 가슴이 설렌다. 가톨릭 신자지만 사후 세계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을 내 아들의 마중을 받으면서 넘으리라는 건 확실하게 믿고 있다. 그다음에 우리가 살아낸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해답으로서의 사후 세계가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없다고 해도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후의 단잠 같은 휴식은 있을 게 아닌가. 또한 육신이 흙이 되어 풀이나 들꽃으로 피어나고 가장 비천한 땅속 벌레의 살이 될 생각을 하는 것도 황홀하다.

 

그렇다고 나는 죽음이 조금도 안 무섭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 될 것 갈다. 육신의 고통을 심하게 받다 죽는 사람을 보면 앞으로 죽을 일이 무서워진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선하고 열심히 산 사람도 고통스럽고 험하게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다. 하여 내가 기도 끝에 빠트리지 않는 간청은, 남들이 아깝다 할 나이에, 이 세상 사람이 보기엔 잠자듯, 저세상에서 보기엔 소풍에서 돌아오듯 그렇게 선종(임종 시 성사를 받아서 죄가 거의 없는 상태로 죽는다는 가톨릭 언어. 편집자 주)하게 해 달라는 소리이다. 하느님 들으시기엔 큰 부자나 절대 권력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보다 훨씬 외람되고 욕심 사나운 소리로 들릴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응석을 부려본다.

 

그러나 너무 고통받다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죽음도 있다. 노망들어 아무것도 모르다가 죽는 것이다. 요새는 어쩐 일인지 죽기 전에 노망이 드는 노인네가 많다. 아마 수명의 인위적인 연장 때문에 정신은 천수를 다했는데 육신은 살아 있어서 그런 현상이 생기지 않나 싶다. 평소의 인격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나타내거나 유아기로 돌아가 가족들이나 친지를 힘들고 황당하게 만든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특히 제 자식은 똥도 예뻐한다. 그러나 제 부모가 어린애가 되어버린 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똥이라도 싸게 되면 그 노인이 자신의 똥까지 예뻐하면서 길러준 부모라는 걸 부정하고 싶도록 정이 떨어진다. 그야말로 부모자식간의 최악의 파국이다. 그런 죽음은 육신의 고통을 모면할 수 있다고 해도 육신의 고통과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그게 훨씬 더 무섭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안 죽는 것이다. 이 세상에 안 죽는 사람은 없다지만 너무 안 죽고 오래 살아 혈육이나 친구 중 자기보다 젊은 사람이 죽는 걸 보아야 하는, 순서가 바뀐 죽음처럼 무서운 건 없다. 한 번 겪어보아 그 고통이 얼마나 무섭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래 살면 행여 또 그런 일을 당할까 봐 그래서 어서 죽고 싶은 것이다. 사람이 나이 순서대로 죽게 되어 있다면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을까도 싶지만, 그렇게 되면 산다는 것이 죽음 앞에 늘어선 무력하고 긴 줄서기하고 무엇이 다를까. 오늘 살 줄만 알고 내일 죽을 줄 모르는 인간의 한계성이야말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만약 인간이 안 죽게 창조됐다고 가정하면 생명의 존엄성은 물론 인간으로 하여금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모든 창조적인 노력도 있을 필요가 없게 된다. 자식을 창조할 필요도 없다면 사랑의 기쁨인들 있었으랴. 추(醜)가 없으면 미(美)도 없듯이, 슬픔이 있으니까 기쁨이 있듯이, 죽음이 없다면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것인가.

때로는 나에게 죽음도 희망이 되는 것은 희망이 없이는 살아 있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2 >

 

10여 년 전 고 정주영 회장이 소 떼를 몰고 최초로 휴전선을 넘어 고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역사적인 장관에 크게 감동했지만 될 수 있으면 흥분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정 회장은 정 회장답게 고향에 갔지만 나는 내 식으로 고향에 가고 싶다. 완행열차를 타고 개성역에 내리고 싶다. 나 홀로 고개를 넘고, 넓은 벌을 쉬엄쉬엄 걷다가 운수 좋으면 지나가는 달구지라도 얻어 타고 싶다.

 

아무의 환영도, 주목도 받지 않고 초라하지도 유난스럽지도 않게 표표히 동구 밖을 들어서고 싶다. 계절은 어느 계절이어도 상관없지만 일몰 무렵이었으면 참 좋겠다.

 

내 주름살의 깊은 골짜기로 산산함 대신 우수가 흐르고, 달라지고 퇴락한 사물들을 잔인하게 드러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

 

내 기억 속의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해도 어느 조촐한 툇마루, 깨끗하게 늙은 노인의 얼굴에서 내 어릴 적 동무들의 이름을 되살려낼 수 있으면 나는 족하리라.

 

박완서 에세이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