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내게 준 희망
추워서 눈을 떴다. 다행이었다. 세 시간 후면 해가 뜬다. 전기밥통의 밥을 비우고 물을 부어 끓였다. 천장에 매달린 백열전등빛의 열기와 끓인 물 한 밥통의 온기로 밤을 견뎠다. 잠결에 너무 추워 밥통을 이불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래도 추우면 어찌할 것인가. 밥통을 이불 밖에 다시 내놓았다. 한 가지 희망이라도 남겨놓지 않으면 얼어 죽을 것만 같은 밤이었다.
2001년 겨울 추위는 영하 15도까지 내려갔고 유난히 길었다. 나는 지금 따뜻한 옥 매트에 누워 그해의 추웠던 기록을 떠들쳐보며 무릎을 폈다 구부렸다 해본다. 뼈 부딪치는 소리가 사라지고 관절의 통증도 가셨다. 내 통증을 치료해준 '옥'이라는 동글납작한 광물질을 만져본다. 일 년 동안 신통치 않은 내 수업을 들어 준 '김포문예대학' 분들이 관절에 물이 차 절룩거리는 나를 보고 옥 매트를 구해줬다. 옥보다는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의 약효가 더 컸을 것이다. 또 홍화씨 가루와 오가피나무가 든 약을 구해주었던 '인삼센터' 아줌마, 뼈에 이롭다고 생선회를 썰어준 동네 형님, 그외 여러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관절도 감동을 했었나 보다.
IMF 시절. 원고료 들어온 데가 없나 통장을 찍어보았다. 내역을 알 수 없는 돈 사십만 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입금자는 '신농백초한의'였다. 내 통장 번호를 알고 있는 출판사로 연락을 해보았다. 다행히도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통장 번호를 불러주었다고 했다. 전화를 걸었다.
"신문에 난 함 시인 기사를 보고 같이 일하는 한의원 식구들이 뜻을 모았으니 너무 부담감 갖지는 마세요."
1998년 문화관광부에서 주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고 문학 담당 기자와 술을 먹었다. IMF 시대라 상금이 없어졌고 하여 동(銅)으로 된 조각품을 부상으로 주었는데, "쌀로 한 서 말 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내가 중얼거린 말이 기사화되었었다. 그 기사를 보고 쌀 세 가마니 살 수 있는 돈을 보내주셨던 신농백초한의원 님들 덕분에 보일러에 기름 두 드럼 넣고 한겨울을 따뜻하게 보냈던 일이 떠오른다.
세상에 고마워할 일이 이렇게 많구나. 갑자기 찾아온 통증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을 되새겨주며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마저 일깨워주니 통증도 희망이다.
함민복 /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중에서
< 2 >
제방에 올라선다. 훅 갯내음이 난다.
언 뺄이 빛나던 겨울 바다가 아니다.
콧구멍에 힘을 주고 갯내음을 맡는다.
냄새의 스펙트럼.
도시에서의 냄새는 비슷비슷하다.
타이어 타는 냄새와 음식물들 냄새가
어디를 가나 엇비슷하다.
시골은 그렇지 않다.
논을 지나면 지푸라기 타는 냄새,
고개를 넘으면 찔레꽃 향기,
소 울음소리 들리면 소똥 냄새.
죽 이어지는 냄새의 스펙트럼,
달리는 버스 창을 열고
입을 아 벌리고 맡아 보는 봄 냄새들.
그 신나는 냄새의 사열.
< 3 >
얼었던 땅이 녹아 질척거린다.
사방에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어린 시절 고향이 떠오른다.
이맘때쯤이면 이랴 - 워 - 어떠떠떠 -
밭갈며 소 모는 소리
온 동네에 쩡쩡 울려 퍼지지 않았던가.
밭에 낸 두엄 냄새가 낮게 깔리고
굴렁쇠를 굴리고 논둑길을 달리다가 멈춰 서면
어지럽게 피어오르던 온 세상 아지랑이, 아지랑이.
함민복 /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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