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마지막 4중주

송담(松潭) 2019. 1. 12. 21:35

 

마지막 4중주

 

 

 

 

 

 미국의 영화감독 야론 질버만의 <마지막 사중주>는 근년에 나온 음악 영화들 중 손에 꼽을 만큼 감정의 예리함과 철학적 깊이가 남다른 수작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세계적인 현악사중주단 푸가의 단원들입니다. 영화의 시작에서 그들은 창단 25주년을 축하하는 기쁨의 자리에 모였다가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모두의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인 피터가 자신이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는 것을 밝히기 때문이지요. 영화는 사중주단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가 애증과 상이한 음악적 견해, 자기애 그리고 애정 관계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묘사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인간의 약점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악보에 담긴 위대한 곡 하나를 높은 수준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음악가들의 헌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피터의 은퇴연주회를 위해 고도의 연주력과 해석력을 요구하는 <현악 사중주 제14>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이 곡은 베토벤의 후기 현악 사중주곡 중 하나로 매우 높은 난이도를 가진 곡입니다. 사실 영화의 원제 ‘A Late Quartet’마지막이란 뜻이 아니라 베토벤의 후기 사중주곡을 의미합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연주해야 하는 이 난곡을 최고의 수준으로 연주하기 위한 연습과정에서 주인공들은 더 이상 자존심이나 위선으로 감출 수 없는 과거의 상처들과 대면합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상처와 치부를 다시 헤집어내고 경멸감과 미움을 폭발시키고, 이제 연주회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까지 다다릅니다. 영화는 이 음악가들이 음악을 향한 헌신과 음악적 스승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각자가 안고 가야하는 인간적 약점에 대한 연민과 존중을 통해서 삶의 또 다른 통찰을 얻게 되는 과정을 현악 사중주 연주가 완성되어 가는 것과 교차시키며 그려냅니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음악에 대한 이들의 성취는 관객들에게 마치 지속되는 삶의 여정처럼 보입니다. 마침내 피터가 자신의 병약함을 관객에게 고백하고, 음악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자신의 시대를 마감하되 새로운 세대를 위한 시간을 열어주는 마지막 장면은 깊은 여운과 감동을 남깁니다.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사용되는 <현악 사중주 제14>은 베토벤이 생애의 가장 마지막 시기에 남긴 6개의 후기 현악 사중주 중 하나입니다. 이 곡들은 베토벤의 가장 내밀한 심정과 심오한 정신세계를 담고 있는 고독하고 위대한 곡이며, 아마도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범접하기 어려운 곡들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내심과 집중력으로 이 곡들을 진지하게 만난다면, 음악이 감각적 기쁨만이 아니라 정신성을 조형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이자 교양과 인문정신의 모범을 보여 주였던 팔레스타인의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는 백혈병으로 투병하면서도 생애 마지막까지 베토벤을 비롯한 거장들의 만년의 양식에 대해 지속적으로 깊은 성찰을 하였고, 이를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라는 유작에 담았습니다.

 

 에드워드 사이드와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말하듯 베토벤의 마지막 사중주들은 생의 마지막에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파편성과 비극성을 더 없이 진실하게 인정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단편적으로나마 우리는 그 안에서 감사와 위안의 증언을 만나는 것은 분명합니다.

 

 깊은 사유와 밀도 있는 감정을 담고 있는 후기 현악 사중주 곡들은 처음 들으면 그 유아적 밀도 때문에 추상적으로까지 느껴지지만, 사실 풍요한 이야기의 보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 사중주곡인 <현악 사중주 제16>의 마지막 학장에 붙은 어렵게 내린 결정Der Schwergefasste Entschluss'이라는 부제가 이 곡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유독 깊은 인상을 주는 것도 후기 현악 사중주곡들의 독보적인 무게 때문일 것입니다.

 

베토벤은 이 부제와 함께 마지막 악장 도입부의 악보 여백에 그래야 하는가 Muss es sein?"라고 묻고, 이어서 "그래야 한다. 그래야 한다 Es muss sein, Es muss sein!"라고 스스로 답하는 메모를 적어두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현악 사중주 제16>에 얽힌 이러한 일화를 실존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베토벤이 인간의 삶을 진정 가치 있게 만드는 것으로 무거움과 필연성을 꼽았다고 말합니다. 베토벤은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가 마치 하늘을 지고 있는 것처럼 인간을 각기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존재로 보았다는 것이지요.

 

 사실 여러 음악사가들이나 베토벤의 전기작가들은 이 메모가 실존적인 비장한 결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재무관계에 얽힌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 소설을 계속 읽어보면 밀란 쿤데라 역시 이런 정황을 모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오히려 일상의 작은 일화가 어느 사이엔가 심오하고 실존적이고 존재론적인 사건이 되어버린 것 자체가 소설의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쿤데라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 존재하는 아이러니야말로 인간 존재와 인간의 삶을 관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베토벤의 이 일화는 이러한 철학적 인식을 위한 탁월한 예입니다.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베토벤이 자신의 마지막 걸작과 함께 남긴 수수께끼 같은 메모는 음악사가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진지한 삶의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한편 <현악 사중주 제15>을 들으면 또 다른 각별한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이 곡의 세 번째 악장에는 병고에서 회복된 이가 하느님께 바치는 거룩한 감사의 노래라는 인상적인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아마 교향곡 제9>의 세 번째 악장,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인 <피아노 소나타 제32>의 느린 악장인 아리에타Arietta’와 함께 말년의 베토벤이 후세에 선사한 가장 숭고한 선율이라 할 만합니다. 베토벤의 실제 체험이 담겼다고 하는현악 사중주 제15>3악장을 듣노라면, 결국은 미완성으로 남을 인간의 삶이지만 그 안에는 놀랍게도 부드러운 빛과 따뜻한 희망이 담겨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곡들, 특히 후기의 곡들은 현악사중주단의 음악적 역량에 대한 가장 엄정한 시험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만큼 우열을 가리기 힘든 수많은 명연주들이 개성을 뽑냅니다. 부슈 현악 사중주단이나 부다페스트 현악 사중주단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기념비 적인 연주들과 함께 오늘날에도 많은 새로운 세대의 현악 사중주단이 뛰어난 녹음기술에 힘입어 생생하고 참신한 연주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곡에 입문하기 위해서나, 그리고 여러 연주를 섭렵한 후 결국 다시 듣게 되는 것도 오스트리아의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의 연주라 하겠습니다. 그들은 현대 베토벤 현악사중주 연주의 표준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2008년 긴 연주 경력을 마치고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그들의 수많은 녹음은 귀중한 유산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들의 연주로 <베토벤 현악 사중주 제15>을 들으며 위대한 음악가가 신에게 느꼈던 숭고한 감사의 마음을 음미해봅니다.

 

 

 최대환 /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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