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하라! 기록하라! 감응하라!
접속의 기예
여행은 관념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몸으로, 발로 움직여야 한다. 여행지에 가서 모텔이나 여관에 머물러 게임이나 인터넷을 한다면? 그건 정말 변태다! 하지만 그건 예외적인 경우고, 누구든 여행지에 가면 움직이게 되어 있다. 보고 듣고 말하고 온몸을 두루 활용할 수밖에 없다. 익숙한 것을 떠난다는 건 닫혀 있던 신체적 감각을 일깨우는 것, 다시 말해 감각의 배치와 분포도를 바꾸는 것임을 환기하라. 그래서 미각과 시각에 탐닉해서는 곤란하다. 미각과 시각에서 청각과 촉각, 후각 등으로의 전환 혹은 확장, 여행의 성패는 거기에 달려 있다. 그래야 사건과 스토리를 창안할 수 있으므로.
첫 번째 행동 지침, 관찰하라! 풍경이건 기술이건 사람이건,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것들은 다 호기심을 야기한다.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자 비전이다. 바다의 심연에서 저 하늘의 별까지 앎의 영역에 포함되는 건 이 호기심이라는 본능 때문이다. 호기심이 살아 움직이려면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아야 한다. 궁금해 하고 알려고 하라! 그러면 걷고 움직이고 말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스토리가 탄생한다.
둘째는 기록이다. 인생도 무상하지만, 여행지에선 무상함이 가속화된다. 나도 움직이고, 마주치는 대상도 움직이고, 그에 따라 감각과 마음도 무상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이 절실하다. 사진도 기록의 하나지만 더 중요한 건 언어다. 언어는 파동이다. 순식간에 흘러왔다 순식간에 흘러가는 탓에 다시 복원하기 어렵다. 연암은 쉬지 않고 기록했다. 《열하일기》 속 〈일신수필(馹迅隨筆)>이라는 장은 달리는 말 위에서 휙휙 지나가는 상념을 적은 것이다.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는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기록한 것이고、<판첸라마 대소동>은 조선 사신단의 시트콤 같은 대소동을, <환희기(幻戲記)>는 열하의 시장통에서 펼쳐지는 23가지의 요술 장면을 생생하게 기록한 것이다. 마치 눈에 보일 듯 손에 잡힐 듯 세밀하고 리얼하다. 그야말로 디테일이 살아 있다. 다 기록의 힘이다. 관찰이 깊어질수록 기록도 생생해지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관찰과 기록은 특정 감각이 아니라 몸 전체를 써야 한다. 몸을 쓰려면 마음을 내야 한다. 몸과 마음의 어울림과 맞섬! 그 리듬을 타는 것이 감응이다. 감응한다는 건 나를 비워 타지를 들이는 행위다. 신체가 열리고 마음이 오가면서 오장육부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감응이다. 그걸 어떻게 감지하느냐고? 간단하다. 대상과 나 사이에 ‘케미’ 가 일어나면 그 순간 뇌의 회로가 바뀐다. 생각의 길이 바뀐다는 뜻이다. 또 뇌가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면 입에 침이 고인다. 침샘이 자극되는 것. 그 순간 언어의 회로가 열린다. 그때 유머와 역설이 터져 나온다. 타자와 접속하면 서사가 탄생한다고 했다. 서사에는 윤활유가 필요하다. 자동차가 달리려면 엔진을 움직이는 기름이 필요하듯이 그게 바로 유머와 역설이다. 둘 다 시선과 통념의 전복을 야기하지만 유머가 부드러운 뒤집기라면, 역설은 파격적 전복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렇게 생각이 뒤집히고 언어가 터지면 결정적으로 관계가 달라진다. 동행들과의 관계, 낯선 풍경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 길 위로 나선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열하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스토리텔링과 유머의 기예 때문이다. 여행의 초입, 요동 벌판에 들어섰을 때다. 갑자기 눈앞에 하늘과 땅만이 우주를 가르는 아득한 공간이 펼쳐졌다.
“멋진 울음터로구나, 크게 한번 울어볼 만 하도다!”
동행자들이 묻는다. 이 넓은 데 와서 웬 통곡? 연암은 답한다.
“사람들은 다만 칠정(七情) 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 뿐, 칠정 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모르지. 기쁨(喜)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노여움僽)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슬픔 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樂)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랑함(愛)이 사무쳐도 울게되고, 미움(惡)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欲)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이야.
근심으로 답답한 걸 풀어버리는 데에는 소리보다 더 효과가 빠른 게 없지.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일세. 지극한 정(情)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저절로 이치에 딱 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에 다르겠는가?”
- 박지원 저, 고미숙 길진숙 김풍기 역,<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상>, 130쪽
갓난아기는 왜 울음을 터뜨리는가? 태어난 것을 후회해서? 살아갈 날들이 아득해서? 모두 아니다. “갓난아기의 본래 정이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야,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에는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탁 트이고 훤한 곳으로 나와서 손도 펴보고 발도 펴보니 마음이 시원했겠지. 어찌 참된 소리를 내어 자기 마음을 한번 펼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저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만하고, 장연의 금모래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이”
광대함에서 통곡의 매트릭스로, 다시 탄생의 환희로, 이렇게 해서 <열하일기>의 명문장く호곡장론(好哭場論)>이 완성되었다. 이 문장에는 특별한 개념이나 수사적 장치가 따로 없다. 그저 본 대로 느낀 대로 풀어냈을 뿐이다. 관찰과 기록과 감응의 삼중주!
이건 시작에 불과하고, 이후 2,700리의 여정 동안 연암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접속의 기예를 구사한다. 때론 장중하게, 때론 경쾌하게, 때론 비장하게 이 유연한 변주야말로 우리 시대 백수들에게 꼭 필요한 여행의 기술이다. 연암은 그런 점에서 진정 21세기 백수의 멘토이자 길벗이다.
고미숙 / ‘조선에서 백수로 살아가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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