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미지 출처 : 굿뉴스데일리
나는 무신론자이다. 현재까지는...
아들이 기독교인의 길을 가는 초창기에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신은 인간의 창조물이며, 인간은 아무도 검증할 수 없는 신의 존재를 스스로 자기최면을 걸어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이다.”라고. 그런데 이러한 무신론자도 몸에 병이 들거나 죽음이 가까워지면 그때는 신을 향해 손을 내밀 가능성이 크다.
한편, 나는 인간의 영혼은 죽음과 동시에 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 극락으로 간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에 불과하고 육체는 소멸과 동시에 흙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조상도 마찬가지다. 제사나 추도식은 살아있는 후손들이 추모하고 기념하는 날이지 조상이 죽어서도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성으로 모시는 의식(儀式)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묘소를 장엄하고 화려하게 꾸미는 것은 살아있는 후손들의 자기만족이나 자기과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영혼은 불멸이 아니라 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무지(無知)요, 앞 못 보는 장애일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종교인들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신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나보다 신을 믿는 종교인들을 축복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신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보다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세상을 살아간다는 점을 긍정한다. 나의 경우 아들이 독실한 기독교인의 길을 가는 것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지원해 주는 것도 아들이 참되고 진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나처럼 방황과 고뇌와 낭비의 시간이 아들에겐 적을 것이다.
오래 전 아들이 갓난아이 때 한 달 정도 입원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함께 있던 병실에 우리아이와 비슷한 질환으로 입원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부모들은 입원실에 도착하면 아이 옆에서 기도부터 먼저 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와는 달리 나는 밤에 술에 취해 입원실에 들리기도 했다.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자식 앞에서 기도하는 부모와 술에 취해 있는 부모 중, 과연 누가 진실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는 자명하다.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 그지없고 아들에게 미안하다. 지금도 기도하는 그들 부부의 성실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두고두고 가슴에 남아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기도하는 자세로 사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물론 기도하는 것이 꼭 종교를 통해서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명상을 통해서도 가능한 일이다. 아직은 교회에 나가고 있지 않지만(아들의 심리지원을 위해 가끔 교회에 나가기도 한다.) 아들의 직장과 결혼 문제를 위해서라도 부모로서 정성을 드려야 할 것 같다. 집사람은 신앙심이 깊어서라기보다 이러한 연유로 일요일엔 교회에 나간다.옛날 어머니들이 자식 잘 되라고 정화수 길러놓고 기도했듯 엄마의 마음은 많이 다르다.
꼭 자식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도 세상의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자세인가. 이제 나도 새벽에 일어나면 두 손을 모으고 누군가를 향해 기도를 드리고 싶다. 그렇다. 세상에 완전한 무신론자는 없다.
(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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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이 아닐 겁니다.
먹을 것이 족하고 목을 적실 물이 넘쳐나도
그리고 또 추위를 막아주는 단단한 벽이 있어도
어디엔가 나처럼 무거운 쌀자루를 내려놓고
빈방에 앉아서 몰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무신론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체, 강한 체 오기를 부리다가도
누가 옆에서 조금만 보고 싶다, 사랑한다고 손을 내밀면
금시라도 울음을 터뜨릴 그런 사람들.
그렇지요. 무신론자이기에 그 기도는
더욱 절실하고 더욱 높게 울릴 수 있지요
이어령 / ‘지성에서 영성으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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