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의 형벌’과 나의 삶
이미지 출처 : 미다스 터치
그리스 신화에 나온 시지프스는 여러 신들과 싸우다가 신들로부터 형벌을 받는데 그것은 높은 바위산 위로 거대한 바위를 계곡으로부터 밀어 올리는 것이었고 온 힘을 다해 정상에 올려놓으면 바로 그 순간 제 무게로 인해 다시 반대편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어 매번 처음부터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을 영원히 계속해야만 하는 가혹한 형벌이었다. 그래서 카뮈는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마치 기계의 부속품처럼 같은 생활을 반복하며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통을 시지프의 형벌에 비유했다.
‘시지프의 형벌’은 돌이 무거워서(고달픈 삶)라기보다 같은 일을 평생 반복하는데 따른 ‘무의미한 삶’에 방점을 두고 있다. 돌이켜보면 재직 중 바쁜 일상 중에도 내가 하는 일이나 역할이 거대한 기계의 미세한 하나의 부품에 불과하다는 것과 그런 역할이 너무 단순하고 초라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 은퇴 후의 생활이야 더 말할 나위없이 단조롭다.
그렇다면 우리같은 은퇴자들은 어떻게 해야 무의미한 삶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은퇴자를 위한 열정 프로그램은 넘치고 넘친다. 끝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거기에 몰입한다든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초원의 기마민족처럼 현대판 ‘로마드’의 삶도 좋을 것이다. 굳이 캠핑카를 타지 않더라도 여행을 자주 가는 것이나 자원봉사, 시민단체 참여, 종교활동 등도 좋은 대안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나는 스포츠, 바둑, 장기, 당구 등 잡기에 능하지 않고, 주변의 몇몇 친구들처럼 자격증을 딴다거나 자아실현을 위해 끝없는 열정을 토해내고 있지도 않다. 그저 지금의 주어진 현실에 안분지족하고 사는 것이 대안이라면 대안이다.
활기찬 생을 위해 ‘매일매일 밖으로 나가면 그곳에 기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기적은 밖으로 나가 누군가와 즐거운 놀이를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혼자 숲길을 거닐다 우연히 새소리를 듣고, 무심히 피어있는 들꽃을 보며 한참을 머물다 그 작은 곳에서 생명의 숨결을 느낄 때 우리는 기적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몸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 일체감을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몸과 마음이 정화(淨化)되는 순간이다.
생이 따분하고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면 지금의 삶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현대인들은 행복을 즐거움의 연속으로 착각하고 조금이라도 즐겁지 않은 상태가 오면 곧바로 우울해진다고 하는데 시지프의 형벌과도 같은 무의미한 일상이라 할지라도 매일매일 새날을 맞이하는 것만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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