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나의 글쓰기

송담(松潭) 2017. 10. 6. 08:15

 

나의 글쓰기

 

 

 오늘은 블로그에 올린 자작 글을 몇 편 읽어 보았다. 맑은 새벽이어서 그런지 제3자의 눈이 생기고 문제가 보였다. 문맥의 어색함은 물론이고 도대체 이 문장은 주어가 어디로 가버렸는가?” 누가 이런 글을 읽으면 오히려 민망한 마음이 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어를 생략할 수 있지만 학창시절 영어 공부하듯이 문법적으로 분석하면 매우 뒤틀린 문장이 많았다.

 

 고백하지만 나의 독서력은 글을 써서 공개할만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기 어려운 취약한 상태이다. 글쓰기의 패턴도 남의 글을 인용하여 끼워 넣는 경우가 많으며, 오만하게도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며 글쓰기 공부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나의 글쓰기는 무수한 독서로 체화된 어휘의 발현이 아닌, 남들의 옥() 같은 그것을 차용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끙끙대는 몸짓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설익은 과일을 공개하고 있는가. 정확히 말하면 일종의 자기과시이고 자기만족이며 고상하게 말하면 인정욕구이다. 사실 나의 글쓰기 동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20여년이 지나 대학원에 갔을 때부터이다. 당시 존경하는 전남대 경영대학원 김종재 교수님(조직.인사전공)께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내가 가는 인생의 길’, ‘나의 인생과 문화창조의 길이라는 참으로 막연한 주제로 글을 쓰라하셨는데,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듯 쓴 글이 동인이 되었다. 그 후 내가 가는 인생의 길은 내 블로그 수신제가의 부제(副題)가 되었다.

 

 무릇 글쓰기는 전문가나 지식인들의 경우 후진들에게 앎의 길잡이가 되고, 깨달음과 자기 성찰의 기회를 주며, 소설가의 경우는 무한한 상상력과 예리한 촉수로 감성을 자극하고 깊은 공감을 불러낸다. 이와는 달리 나의 글쓰기는 습작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자기검열을 함으로써 완전 솔직하다거나 자연스럽다고 할 수 없다. 진정으로 자기성찰을 위해 글을 쓰려면 내 친구 P처럼 일기를 쓰듯 남에게 나타내지 않아야 한다

 

 나에게 글쓰기의 단초를 제공해 주신 교수님이 계셨기에 내 인생에 '글쓰기'가 있게 되었다. 은퇴 후에도 심혈을 다하여 책을 쓰시고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앙가주망(engagement)의 길을 걷고 계시는 김종재교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 2017.10.6 새벽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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