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송담(松潭) 2015. 8. 19. 15:36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은퇴하고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친구들이나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요즘 뭐하고 지내느냐? 심심하지 않느냐?”. 도심을 떠난 생활이기에 전원생활의 적응을 걱정하는 물음이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아무런 불편이 없다. 수시로 마트에 가지 못해도 5일장이 있어 장날이 언제인지 기억한다. 물론 도시는 편리하고 흥미롭고 야경의 불빛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공해에 잠겨있고 콘크리트의 잿빛이며 사람들이 치열하게 움직이고 무질서하다

 

 하지만 전원은 눈앞에 늘 녹색이 가득하다. 나는 이 녹색을 보는 것 하나만으로 시골(또는 전원)이 좋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사는 이유는 편리한 생활과 교육, 의료 문제의 접근성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재산가치 면에서도 아파트는 시간이 지나도 집값을 물고 있지만 전원주택은 많은 돈을 들여 지어도 집을 팔 때 땅값만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손실이 발생한다. 전원주택에서 주거비 부담은 서울, 수도권 등 대도시의 경우 보다는 적겠지만 소도시의 그것 보다는 더 많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경제적 계산법에 의하여 전원에 오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전원생활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향유할 수 있다. 무더위가 최고점을 찍고 나니 오후에는 잠자리 때들이 나타나 뜰 안을 맴돌고, 고추는 빨갛게 익어간다. 머지않아 들녘의 코스모스는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하늘하늘 흔들릴 것이다. 저녁에 밖에 나오면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한여름 밤의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을 바라보니 별이 더욱 총총하다. 전원의 밤은 어둠 속에서 더 잔잔하고 고요하다. 전원은 도시와는 달리 흥있고 다이나믹하고 역동적이진 않지만 텅 빈 것 같은 한가로움은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이렇게 평온한 전원생활을 하면서 가끔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라는 자문을 해본다. 물론 공기 좋은 곳에서 잘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만 잘사는 이기적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른다. “나와 남 사이에는 거리만 있지만 나와 너 사이에는 관계가 있다.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나는 너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고. 다시 안녕을 서로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엄기호/대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2013.12.17. 경향신문)는 독서노트의 메모를 다시 보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과연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가까이는 형제자매의 고통과 지인들에 대한 안녕을 묻고 사는지 반성을 하게 된다. 무언가 부족하고 서운한 부분이 있는 삶이다. 더군다나 양로원이나 요양원 같은 곳에 가서 봉사활동도 하지 않고 시민사회 같은 곳에 참여하지도 않는다. 어디선가 니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면 그건 진정으로 잘사는 것이 아니다.”는 비웃음이 들린 듯하다. 전원에서의 평화로운 삶이 세상을 외면하면서 자신만을 위해 사는 부끄러운 삶으로 바꿔버렸다.

 

 은퇴하고 나니 망중한(忙中閑)’은 없고 주로 한중한(閑中閑)’이 계속된다. 이제 정원의 모습(주로 잔디)도 어느 정도 완성되었으니 이른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인지적 구두쇠란 어떤 생각을 깊게 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태함을 쫓아내기 위해 정신의 샘으로부터 늘 찬물을 끌어올려 수시로 각성(覺醒)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며, 마음의 평화는 유지하되 생각과 행동을 '자신만을 위하여'로부터 범위를 확장해 가야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은퇴 후에도 오래도록 세상에 대해 고뇌한 한 지성인의 삶을 접하며, 비록 '지성인에 미치지 못하는 나'이지만 지금의 내 삶에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맹자> ‘이루하편 28’에는 종신지우(終身之憂)’일조지환(一朝之患)’이라는

말이 있는데 회장님의 화병은 일조지환이 아니라 종신지우에 해당하는 것 같다.

종신지우는 일생에 걸친 근본적인 문제요,

일조지환은 일시적인 처지나 환경에서 일어나는 지엽적인 문제란다.

 

 사실 그것은 세상에 불의한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데 대한

회장님의 걱정과 통하는 것이었다.

 

당장 먹고 살기에 급급한 사람들은 일시적인 걱정이 많지만
이른바 지성인들은 자기의 일신상에 대한 걱정보다는

국가와 사회가 잘 되기를 걱정하고 봉사하는 것이 보람이기도하기 때문에

그것이 곧 종신의 걱정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였다.

 

지교헌 / ‘나는 토이푸들이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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