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해

송담(松潭) 2015. 4. 6. 19:36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229일 핵심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애국심을 강조하던 중 "최근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 국기배례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이 말 한 마디는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모 언론사 신임사장이 임직원을 모아놓고 뜬금없이 국기 게양식을 갖고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등을 하고 그는 이날의 행사에 대해 국가 기간 통신사로서 연합뉴스의 정체성과 위상을 구성원 모두가 재확인하는 자리라는 기사(2015.4.4 경향신문)를 읽었다. 대통령의 국기배례 한마디는 정치권력을 쫓는 야심가들에게는 더없는 기회의 행동지침이 되었고, 전 행정기관에서 이와 관련된 시책들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얼마 전 내가 살던 지역 면사무소 민원실에 갔더니 직원들 책상위에 조그마한 탁상용 태극기가 하나씩 세워져 있었다. 행정자치부에서 내린 발빠른 조치로 보이는데 어떤 머리 좋은 공무원이 발상하고 실행했는지 놀라웠다.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를 사랑하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할 기본자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혹자들은 이런 당연한 행동에 대해 민감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 옛날 정치학과목을 이수하면서 배운 이론을 떠올리며 내용을 다시 확인한 후 소개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촬스 메리엄(Merriam, 1874~1953)은 통치수단으로써 미란다(Miranda)크레덴다(Credenda)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미란다(Miranda)는 기념일을 만들거나 기념비·건축물·국기같은 상징물과, 애국가를 부르는 의식행위 등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여 충성심을 끌어내는 방법이다. 이러한 상징정치는 정치 엘리트들이 일반대중을 속이고 통제하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상징, 신화와 의식을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권력을 신성한 것과 연관시켜서 대단한 것처럼 보이게 미화시키는 도구로도 활용한다. 반면 크레덴다(Credenda)는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는 것으로 권력의 정당성과 합리성에 대해 이념과 논리로 설득하는 방법을 택한다. 권력에 의한 통치를 합법적으로 구현하고 국민으로 하여금 통치에 대한 존경심, 스스로 복종과 희생을 감수토록 하는 통치방법이다.

 

 우리가 메리엄(Merriam)미란다(Miranda)’라는 정치적 상징조작을 이해하고 있는 한, 태극기와 애국가를 이용한 통치방법은 이미 구시대의 산물이다. 더군다나 과거 독재정권의 잔재를 다시 재현시킨다는 거부감이 있는 것이다. 전 공무원의 책상 앞에 태극기를 내걸며  난리법석을 떠는 것은 예산낭비가 아닐 수 없다. 무엇을, 무슨 효과를 얼마나 얻겠다고 그런 정책을 재빨리 시행했는지 최초 기안자와 책임자들은 문책감이라 생각하는데 지금 그들은 자신들의 민첩한 행동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이런 영혼없는 공무원들’ 을 생각하니 허탈하기만 하다.

 

 과거 미국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가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 생각 하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라.”는 말을 했는데맞는 말이지만 이 말은 주인인 국민에게 먼저 충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권위적 발상이다. 그리고 이 말은 국가가 제 역할을 잘하고 있을 때를 전제한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오히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세월호 참사 발생과 그 후속처리의 과정을 보면 우리는 국가, 즉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자명하게 알 수 있다.

 

 또한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곧바로 애국심의 척도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했다. 화합하되 같지() 않다는 것인데, 여기서 ’은 자기중심으로 모든 것을 접근하려는 패권(覇權)을 내포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화합()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해 굳이 국가가 국민을 강요할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 국민들은 잠깐 외국에 머물다가도 태극기를 보거나 애국가를 들으면 가슴이 벅차고 눈물흘리는 국민이다. 이런 국민들에게 이제 와서 태극기를 내걸고 애국가를 불으라고 강요하지 마라. 우리는 더 이상 어리석은 국민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상징이나 이미지를 통해 대중을 조작하려는 정치기술에 몰두하지 말고,임시방편이 아닌 먼 장래를 내다보는 정책을 추진하기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직한 정권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다.

 

< 2015.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