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추억으로 남을 사랑의 온도

송담(松潭) 2017. 8. 26. 13:47

 

 

추억으로 남을 사랑의 온도

 

 

 

 

사진출처 : 일간스포츠 2012.11.9

 

 

 

 

 뒤돌아보면 아카시아 잎을 떼면서 사랑을 점치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철이 들어서는 사랑 때문에 천사가 되거나 악마가 된 적도 있을 것입니다. 아집이나 집착을 사랑인 줄 알고 원망하고 떼를 써보기도 했을 테고요.

 

 사랑에는 단계가 있어 그 계단을 밟아야 하고 한 계단마다 의미를 깨닫고 성숙해 가는 것 같습니다. 결코 내 욕망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랑할 때는 잘 모릅니다. 나를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는 걸 알지 못하는 게 젊은 날의 사랑입니다.

 

 상대는 내가 아니기에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걸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사랑의 경험이, 세월이 지나면서 그때와는 다른 새로운 안목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지나간 사랑과 소중한 추억은 내게 더 나은 사랑을 하라고, 더 나은 삶을 살라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사랑을 시작해도 결국 또다시 그때와 같은 실수도 하고 후회도 할 것 같습니다. 사랑이란 내가 사라지고 상대방만 남는 찬란한 무언가인지 모릅니다. 그런 연유인지 아직도 사랑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 실체는 만질 수도 없고 확실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의 전과자이기에 추억과 상처가 있기 마련이겠지요. 사랑이 고통스러워도 물러설 수 없는 것은 그 어딘가에 황홀함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상처를 추억으로 삼으면 향기가 되고 고통으로 여기면 후회만 남습니다.

 

 벼락같고 피뢰침같이 단번에 감전되는 사랑이 근사한 건 줄 알았는데 그 순간을 영혼의 창고에 쟁여두기 위해서는 사랑의 온도가 100도가 아니라 36.5도라야 한다는 걸 이제야 겨우 알아차렸습니다. 남녀 간의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한 관계도 결국은 휴머니즘으로 발전해야 그 아름다움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김홍신 / ‘바람으로 그린 그림중에서

 

 

* 위 글 제목 추억으로 남을 사랑의 온도는 독자가 임의로 정하였음.

 

 

 

< 2 >

 

 나는 어머니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내 방으로 들어갔다 이놈의 사랑은 호르몬의 농간으로 3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나를 위로했건만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내 영혼과 마음을 남김없이 통째로 그녀에게 주어버렸는데 내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한 그녀를 한때 배신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녀 때문에 내가 버린 것이 어디 한둘일까. 그녀를 사랑했기에 참으로 많은 걸 버렸고, 내 마음을 단속하느라고 수많은 욕망도 난도질해서 버리지 않았는가. 한때는 사랑을, 인연을, 추억을, 그리움을 뜨거워진 가슴을 청산하자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질긴 사슬을 끊을 만큼 강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노예였기 때문이다. 노예는 자유가 없는 결핍으로, 결핍을 채우고 자유롭기.위해 끊임없이 주인을 섬길 수밖에 없다. 

 내가 그랬다. 온통 그녀의 차지가 되어버린 영혼은 늘 끌려다녔고 언제나 복종했으며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크게 그려지곤 했다. 나는 사랑을 담보로 묶여 있는 노예였다.

 

< 3 >

 

 수천도 자주 만나지 못했다 녀석도 사법 고시를 준비하기 때문에 밤낮없이 도서관 붙박이 노릇을 했다. 나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도서관보다는 움직이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외로움이라는 짓궂은 병을 자주 앓았다. 아니 그리움이라는 병이었다. 문학반에서 비교적 말이 잘 통했던 여학생들이 있었지만 친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아르바이트하느라 시간 쪼개기가 어려웠다. 밥 한 번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내 궁색한 얘기를 털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이쯤이면 툴툴 털어버려도 그만일 모니카의 잔상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수천이 말마따나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아름다운 복수를 꿈꾸기 위해서라도, 모니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라도, 연애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여학생을 만나면 모니카가 어김없이 겹쳐 보이곤 했다. 그렇다 사랑이란 내가 사라지고 그대만 남는 찬란함인지 모른다. 수천이 소개해 준 여대생은 내가 생각해도 과분할 정도였지만 다가가기가 거북했다. 수천이 제발 바보짓 그만하고 네 인생을 찾으라고, 모니카를 떨쳐버리고 청춘을 맘껏 사용하라고, 사랑을 상처로 간직하면 불행이고 그 상처를 추억으로 바꾸면 사는 게 천당이라고 지껄여도 들어오지 않았다.

 

< 4 >

 

 그녀는 스스럼없이 반겨주었고 술잔을 부딪치거나 술을 따를 때도 편하게 대해 주었다. 막상 그녀가 친절하게 응대해 주자 묘한 느낌을 받았다. 잊을 만도 하련만, 모니카에게 왜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녀에게 인형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밝을 때는 태양이 별로 반갑지 않지만 어두울 때는 반딧불이가 매우 반가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한때 미대 갈 생각을 쪼끔 했어요."

 그녀는 소주잔을 내밀며 해맑게 웃었다.

 "그런데 왜 의대 갔어요?"

 “본래는 신학대학에 가려고 했어요."

 "목사님 되려고요?"

 “아뇨, 신부님요"

 “아 가톨릭 신부님, 그럼 결혼도 못 하고 사랑도 못 하잖아요.”

 “사랑하고 싶어서 신학대학은 포기했고요, 그림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할 자신이 없어서 의대를 선택했어요. 사랑을 해부해 보려고요.”

 “사랑을 해부해요? 나도 해부해 보고 싶어요. 알려주실래요?”

 의대에서 사랑을 해부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는 순간 이 여자와 뭔가 근사한 추억이 생길 것 같았다.

 “알려드리고말고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랑을 해부할 방법이 떠오른 건 아니었다. 그녀도 장난으로 여겼으리라.

 "해부학으로 봐서 사랑은 신체의 어느 쪽에 있는 거죠?"

 그녀가 이렇게 물었다 나는 그 순간 대답할 말이 떠올랐다. 마치 사랑의 위치를 관찰한 듯.

 “, , , , , 심장, 위장, 머리칼, 심지어 손발톱과 눈썹에도 있어요."

 아, 그래서 사랑하면 정신을 못 차리고 돌아버리는 거겠죠? 훌륭한 의사가 돼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처방해서 변치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의술을 발명하세요. 3년인가 흐르면 사랑하게 만드는 호르몬 작용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그때 약을 먹거나 주사 한 방으로 사랑이 재생되는 의술 말예요."

 나는 그런 약을 개발하면 그대에게 먼저 처방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하지만 이런 사랑도 있어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야>를 읽었는데, 주인공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해 떠날 때 주인공 남자가 그녀에게 하는 말이 감동적이에요. 들어볼래요?

 

 

 

                                                                                                       이미지 출처 : 에큐메니안

 

그대의 하늘이 언제나 청명하기를,

그대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언제나 밝고 행복하기를,

그대에게 언제나 축복이 함께하기를......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내 삶의 지극한 행복이여!

한 사람의 일생 중에 그런 순간을 잠시라도 가졌다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서로 전혀 모르던 남녀가 만나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관계가 영원히 유지되어야 성공이고 중간에 헤어진다고 실패가 아니잖아요. 세상의 모든 사랑은 전부 성공이에요

 

< 5 >

 

 또 한 가지 위급한 상황도 연상되었다. 시몬의 소식을 듣고 행여 아녜스가 절망하여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포개졌다. 누군가가 말했다, 사랑은 잘 벼린 칼날에 묻은 꿀일지도 모른다고,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에 무수한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죽었다. 시몬이 죽는다면 그 또한 사랑 때문에 죽는 게 아닌가. 나도 젊은 시절에 사랑 때문에 몇 번인가 죽고 싶었었다. 만약 사후 세계가 있다면, 사랑 때문에 죽은 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살까. 그리도 지독하게 사랑하다가 죽었는데, 사랑했던 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사후에 관찰하게 된다면 대성통곡을 할 수도 있고 죽기를 잘했다며 흐뭇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은 아름다운 꽃잎에 묻은 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6 >

 

천둥, 번개, 바람

 

천둥이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소리이고

번개란 내 영혼이 그녀에게 달려간 속도이며

바람이란 우리의 사랑이 자유롭기를 바라는 것.

 

DSC_9032.jpg

사진출처 : 울진사진벗들

 

 

김홍신 / ‘바람으로 그린 그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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