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전쟁과 에로스, 그 치명적 결탁

송담(松潭) 2017. 8. 27. 18:33

 

일리아스 / 호메로스

- 전쟁과 에로스, 그 치명적 결탁 -

 

 

 

 전쟁도 여행일까? 집과 고향, 고국을 떠나야 하고, 낯설고 이질적인 세계와 정면으로 대면해야 하고, 매순간 생사를 넘나들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여행 중에서도 고난도의 여행, 유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늘 타자들을 파괴해야 하고 돌아가기를 열망하고 생사의 긴장으로 분노만 항진시킨다면 이건 최악의 여행, 아니 정주와 고착의 또 다른 버전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전쟁이란 분명 길을 떠나는 것이지만 정주와 유목 사이를 격하게 오가는 여행이라 하겠다. 그래서인가? 전쟁은 새로운 문명을 눈부시게 열어젖히기도 했고, 유서 깊고 찬란한 문명을 여지없이 파괴하기도 했다.

 

 하여, 전쟁은 그 자체로 거대한 질문이고 화두다. 인간에 대한, 또 신에 대한! 여기 전쟁에 대한 가장 오래된 고전이 하나 있다. <일리아스>가 그것이다.<오뒷세이아>와 더불어 서양문명의 시원을 이루는 작품이다. 무려 만여 년 전의 역사이자 신화다. 장르로 따지자면 서사시다.

 

 막이 열리면 이미 전쟁이 시작된 지 10년째다. 그리스 연합군이 원정을 오고 수차례 전투를 치르고, 그러다보니 전쟁터가 곧 야영지면서 일상이 되어 버린 상태다. 일상이 지속되면 감정의 흐름은 뻔하다. 오해와 불신! 적을 앞에 두고도 이건 피할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리스 연합군의 수장인 아가멤논과 최고의 전사이자 지휘관인 아킬레우스 사이에 균열이 일어났다. 아가멤논은 탐욕을 부렸고 아킬레우스는 빈정이 상했다. 이유는 전리품으로 받은 아킬레우스의 여인을 아가멤논이 강탈했기 때문이다.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전투에서 빠져 버렸다. 이것이 <일리아스>의 서막이다. 젠장! 이걸 뭐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근육질에 복근에, 멋진 투구와 창으로 그려지는 청동기 시대의 영웅들이 고작 전리품 하나 때문에 이전투구를 벌이다니, 이게 영웅이고 리더인가? 라는 배신감에 젖는다.

 

 헌데, 그 진리품이 여인이다. 고작 여인 하나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참 심사가 복잡해진다. 여인에 대한 집착이 분노를 낳고 적대를 낳고 무지를 낳는다, 헌데, 그래서 최고의 전투력을 가진 장군이 전쟁을 방기한다? 이게 용서가 되나? 그뿐이 아니다. 트로이전생 자체가 한 여인으로 인해 벌어졌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우스의 아내 헬레네를 트로이의 파리스라는 인물이 훔쳐간 탓이다. 한 여인의 약탈이 이 기나긴 원정과 전쟁의 원인이다. 오마이 갓! 결국 이 죽일 넘의전쟁은 한 여인 때문에 벌어 졌고, 그리스 원정군은 십 년이 넘도록 전투를 벌이느라 고향을 잊을 지경이다. 그 와중에 다시 왕과 장군이 감정이 틀어져 아군을 위험에 빠뜨린다. 그것도 한 여자 때문에?

 

 그렇다. 전쟁에 이유가 없듯이, 에로스적 탐닉에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둘 다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죽고 죽이고 뺏고 빼앗는. 그러다 보면 문득, ‘대체 왜 이렇게 사는거지?'라는 의문이 드는 건 인지상정, 그리스인들이 찾은 해답은신들의 책략'이라는 것. 제우스와 헤라, 아프로디테 등 그 이름도 찬란한 올림포스 산의 신들이 인간의 마음과 자연을 멋대로 주무르기 때문이라는 것. 헬레네의 약탈로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 사이를 틀어지게 한 것도 다 신들의 조종 탓이다. 전쟁이 10년이나 지속된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연합군이 치고 들어오면 태양의 신 아폴론이 나서서 트로이를 분발시키고, 트로이가 승기를 잡으면 여신 헤라가 그리스를 물심양면으로 도와 준다. 제우스는 양다리를 걸친 채 양쪽의 저울을 맞추느라 분주하다.

 

 한마디로 좌충우돌에 중구난방이다. 하지만 이 카오스적 흐름이 바로 자연의 이치다. 우주는 움직인다. 아니, 움직이는 것이 우주다. 천지가 그렇고, 만물이 그러하다. 허니, 인간사야 말해 무엇하리, 애증이 순식간에 엇갈리고 길흉이 동시에 덮쳐 오며, 살고자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또 살게 되고 어찌하여 삶은 이토록 무상한가? 이런 질문들이 신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 대책 없이 요동치는 사건들의 이면에 어떤 법칙이 있긴 할 것이다. 헌데 도무지 알아차릴 방법이 없다. 그러니 저 불사의 신들이 저지르는 오묘한장난이라고 할 수밖에. 역시 어불성설!

 

 하지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세기에 들어 양차대전과 홀로코스트가 자행되었고,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말도 안 되는 테러가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테러는 바야흐로 일상이 되어 버렸다. 과연 거기에 이유가 있는가? 수많은 이유와 명분이 제시되긴 한다. 솔직히 그건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이슬람의 수니파와 시아파는 신의 이름으로 싸운다. 그럼 <일리아스>가 신의 책략으로 전쟁이 벌어진 것처럼 지금도 신이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건가? 또다시 어불성설! 결국 아무 이유 없다! 다만 전쟁을 하고 싶을 뿐이고, 시절이 전운을 몰고 왔을 따름이다.

 

 그것도 말도 안 된다고? 그런가? 하지만 묻고 싶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게임을 하고 야동을 탐하고 오디션과 배틀을 즐기는가? 게임과 경쟁이 아니면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신체들, 스릴과 서스펜스가 없으면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신체들, ''이 충만해야만 살맛이 난다고 느끼는 신체들, 이른바 '핫한' 열기가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신체들이 너무도 많다. 한마디로 현대인은 자신의 몸을 늘 격전지로 만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셈이다. 해서, 결론은 늘 전쟁이고, 또 에로스다! 대체 왜? 만 년 전 <일리아스>가 던진 이 질문은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고미숙 /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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