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 대하여
화장실 세면대를 붙잡고 거울 속에서 울고 있는 자신을 대면한 적이 있는가? 그 불쌍한 사람은 고독하고 적막한 공간에 던져져 혼자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세상은 녹록지 않다. 내 마음 같은 걸 신경 써주는 사람은 없다. 나라는 존재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다. 회사와 학교와 사회와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 속 하나의 구성원일 뿐, 나는 언제나 그 주변부에서 대중의 무리를 따라 발맞춰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사회는 우리를 다그친다. 대중으로 남아 있으라. TV 속의 주인공들에게 열광하고, 직장 내 높으신 분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시장의 고객들에게 고개를 숙여라.
그래서다. 연애를 한다는 것이 놀라운 까닭은 가슴이 무너진 날, 그 사람에게로 가자. 그의 얼굴과 맑은 눈동자와 나를 반기는 미소를 보자.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이 밤을 보내는 거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세계는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일상의 하찮음은 주변부로 사라진다. 사랑하는 이를 품에 안는다는 것은 그래서 그렇게도 놀라운 일이다.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 이것이 사랑하는 이를 만난다는 행위의 진정한 의미다. 이제 그의 지평은 나의 지평으로 침투해 들어와서 결국 나의 세계와 겹쳐진다. 나는 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기존의 세계에는 없던 신비하고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그의 향기, 그의 옷가지, 그의 가구들, 그의 취향, 그의 언어, 그의 습관들, 그의 세계관, 나는 그가 먹는 것을 먹고, 그가 하는 말을 따라 하며, 그의 세계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헤어진다는 것은 그렇게 슬픈 일이 아니다. 그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의 세계는 그대로 남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한동안 그가 그대로 놓고 간 세계를 이리저리 배회하게 될 것이다. 그의 물건들을 들춰보고 그의 생각의 파편들을 더듬을 것이다. 하지만 슬퍼할 필요는 없다. 사라진 것이 아니니까. 그의 세계는 나의 세계 위에 온전히 남는다. 나의 세계는 넓어지고 두터워지며 그렇게 나는 성숙해간다.
물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질 것이다. 적막 속에 던져질 것이며, 혼자의 힘으로 현실의 횡포를 견뎌 내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세상은 녹록지 않고, 내 마음 같은 걸 신경 써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게 사회는 우리를 다그칠 것이다. 대중으로 남아 있으라. 세상의 다른 주인공들에게 고개 숙여라.
하지만 우리는 또 다시 화장실 세면대를 붙잡고 거울 속에서 울고 있는 자신을 대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 다시 힘들겠지만, 그의 손을 잡고 세계의 중심이 되었던 기억이 우리를 보호할 테니까. 우리는 거울 속의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몇 번의 겨울과 몇 날의 밤을 보내고 다시 봄이 찾아온 어느 맑은 날, 우리는 또 다시 운명처럼 새로운 세계를 조우하게 될 것이다.
채사장 /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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